[김용택 칼럼] 근로자는 귀하고 노동자는 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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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근로자는 귀하고 노동자는 천한가?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1.05.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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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노동절인가, 근로절인가?

<노동부는 있어도 근로부는 없는 나라>

오늘은 131주년 세계노동절이다. 우리나라 노동자 중에는 같은 노동자인데 어떤 사람은 노동자요 또 어떤 사람은 근로자라고 한다. 노동절은 있어도 근로절은 없는 나라. 고용정책과 근로에 대한 사무를 총괄하는 정부관청은 고용노동부지만 근로자를 위한 근로부는 없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댓가로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다행히 오늘은 토요일이라 노동자도 근로자도 다 함께 쉬는 날이지만 평일이 노동절일 때는 노동자는 쉬는 날이지만 근로자는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사진 출처 : 국민TV
사진 출처 : 국민TV

<다음 중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택시기사, 의사, 교사, 교수, PC방 아르바이트, 건설일용직, 환경미화원, 농구코치, 공무원, 철도기관사, 아나운서, 소방관, 현장 실습생,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경찰… 위와 같은 지문을 주고 ’다음 중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이라고 물으면 아마 열명 중 열 사람은 ‘종합병원 의사나 교수, 혹은 교사, 공무원, 아나운서, 경찰’과 같은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는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근로자로 혹은 화이트 칼라로,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블루칼라로 분류한다.

블루칼라인 노동자는 못배우고 무식한 사람. 화이트 칼라인 근로자는 정신노동자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옛날 학교 교실 흑판 위에 걸려 있는 급훈에는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라는 액자까지 걸려 있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사실상 근로를 제공하는 취업근로자’로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대로라면 위에 제시한 ‘종합병원 의사나 교수, 혹은 교사, 공무원, 아나운서, 경찰...도 다 같은 노동자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어떻게 다른지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 노동자 (勞動者) :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 근로자 (勤勞者) :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과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 구별할 수 있는가? 영어로 노동자는 ‘laborer’라고 한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노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근로’라고 할 수도 있다. 아마 처음에는 ‘Laborer’ 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노동’이라고 번역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단의 비극은 언어를 비롯해 대부분의 우리의 전통 생활양식이나 문화에서조차 분단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은 좌익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북한에서 쓰는 ‘노동’이라는 말 대신 고상한 ‘근로’라는 말로 바꾼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노동절의 역사>

131년 전, 미국에서는 놀기만 하는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때,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장시간의 노동에 일주일에 7-8달러의 임금을 받으며 월 10-15달러 하는 허름한 판잣집의 방세 내기도 어려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1886년 5월 1일, 마침내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을 시작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고, 공장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도 보이지 않고 상가도 문을 닫고 운전수도 따라서 쉬었다. 경찰은 파업 농성 중인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를 발포 살해하게 되고, 다음 날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30만의 노동자, 시민이 참가한 헤이마켓 광장 평화 집회에서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폭탄이 터지고 경찰들이 미친듯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폭동죄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억울하게 폭동죄를 뒤집어 쓴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장기형 또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기록된 '헤이마키트 사건'이다. 1889년 7월,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1을 세계 노동절로 결정하게 된다.

그 후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게 된 것이다. 1890년 세계 노동자들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각국의 형편에 맞게 제1회 메이데이 대회를 치렀다. 그 후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정하여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육체노동자는 노동자, 정신노동자는 근로자...?>

노동자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생산수단이 없는 월급을 받는 사람은 모드 노동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동자를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로 구분했다. 블루칼라는 ‘청색 작업복을 입고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 화이트칼라는 ‘땀과 기름에 젖지 않은 간접 생산 부문 노동자가 과시하는 상징으로, 청결한 작업복 즉 흰 칼라의 셔츠이다. 작업복의 이미지로부터 온 간접 생산 부문의 노동자를 총칭하는 뜻이다.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총파업을 전개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한 날이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절(May Day)이다. 우리나라는 한국노총 설립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한바 있으나, 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절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 결과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육체만 일할 수 있는가?>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 정신은 집에 두고 육체만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대로 육체는 집에 두고 정신민 사무실에 나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근로라는 용어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을 강제노역에 동원하면서 ‘근로봉사대’,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 유신 정권에서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경제개발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근로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고도성장을 이루어 내는데 근로자를 앞세우면서 ‘근로자’라는 용어가 법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근로자’는 자본과 권력이 열심히 일을 시켜서 이윤착취의 도구나 기계부속 정도로 전락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개념은 사회의 주체이며 노동3권(「헌법」 제33조 제1항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근로자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종속적인 의미’로 부르는 것이고, 노동자란 ‘인격을 존중하는 수평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 노동 총연맹’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최초로 치렀으며, 그 이후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굽힘 없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해방을 맞은 1945년 결성된 조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는 1946년 20만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메이데이 기념식을 성대히 치루게 된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의 깃발아래 노동자들의 힘찬 함성이 울려 퍼지는 서울운동장 야구장 바로 옆, 육상경기장에서는 대한노총이 주최한 약 1,000여명의 우익청년과 노동자가 참석한 초라한 기념식이 치러졌다. 미군정과 대한노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폭력적인 '전평' 파괴로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되고 검거되었다. 게다가 미군정은 정부의 입맛에 맞는 대한노총을 껴안고 정치색을 띤 전평은 일체 정당한 단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마침내 전평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인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가?>

1989년. 전교조가 노동자라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가 1800여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5년 후 김영삼정부가 이들을 특별채용형식으로 복직은 시켰지만 지금도 연금조차 받지 못하고 ‘해직교사원상회복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교육부를 비롯해 전국 시도교육청 앞에서 1년 가까지 원상회복을 요구하면 1인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은 왜 아직도 노동자와 근로자조차 구별해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사는가?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못배우고 천한 인간’은 임금을 싸게 주고도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하는 사람‘을 원한다. 산업혁명으로 분업이 등장하면서 단순 노동은 판단이을 필요하지 않는 단순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노동절 하루 전날,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 보고회'에 참석해 "사람과 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면서 당장 내년부터 10년간 1조 원 수준의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해 차세대 반도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반도체 분야 국가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관련 학과를 신설해 전문 인력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동자단체행사에 가서는 ‘노동자도 사람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고 기업이 주관하는 행사에 가서는 ‘기업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재인대통령은 정말 노동자가 사람대접 받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가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사람은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131회 노동절을 맞아 잃어버린 이름 노동자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차별없는 평등세상은 불가능한 일일까?>

노동이 얼나나 소중한가는 일이 없이 무위도식해 본 사람은 안다. 시간에 쫓겨 일하나 모처럼 만나는 공휴일이 그렇게 반갑고 행복하지만 자고 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지는 일거리가 없는 사람만이 안다.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의사나 변호사 판·검사..와 같은 직업이지만 국민 모두가 그런 직업에 종사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버스나 기차는 누가 움직이는가? 환경미화원이 한달만 파업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도시와 농촌 그리고 학벌이나 직업에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까지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차별금지법을 제안했지만 차별금지법안 나오면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느니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 받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우리헌법 제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차별없는 세상, 평등세상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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