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산지무전(散地無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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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산지무전(散地無戰)
  • 이정랑의 고전소통
  • 승인 2021.04.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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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손자병법’ ‘구지편’에 나오는 말이다. ‘산지(散地)’란 제후가 자기 영역 안에서 적과 작전할 때 위급하면 병사들이 쉽게 도망갈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그러나 ‘산지무전’이라 해서 절대 싸우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적이 쳐들어온다는 것은 적이 전력이나 기세 면에서 자신의 우세를 믿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비하는 쪽은 상대적 열세에 놓인다. 그렇기에 ‘산지’에서의 작전 책략은 지나치게 급한 결전을 피하고 수비 태세를 취하여 서서히 적의 역량을 소모 시키다가 기회를 엿보아 적을 섬멸시킬 것을 요구한다. 옛사람들은 ‘전(戰)’을 ‘공세’라 하고 ‘수(守)’를 ‘수세’라 했다. 따라서 ‘무전(無戰)‘은 공세를 취하지 않고 수세를 주된 작전 노선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오왕과 손자의 대화를 통해 ‘산지무전’의 계략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오왕: ‘산지’에서는 집이 가까워 병사들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기에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라고 했소. 그런데 만약 적이 우리 쪽의 작은 성을 공격하여 논밭을 약탈하고 땔감인 나무를 구하지 못하게 하고 중요한 길을 막아놓고는, 우리에게 빈틈이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해오면 어찌해야 하오?

손자 : 적이 우리 땅 깊숙이 들어오면 대체로 자신들의 성읍을 멀리 등지게 되므로 병사들은 군대를 자기 집으로 여기고 투지가 왕성해집니다. 반면에 우리 군은 나라 안에 있기에 마음이 느긋해지고 살겠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훈련을 시켜도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게 되어 싸워 이기기 힘듭니다.

이럴 때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곡식과 옷가지를 비축해 놓고 험한 곳을 택하여 성을 단단히 지키도록 준비한 다음, 날랜 병사들을 보내 적의 식량 운송로를 끊습니다. 도전을 해와도 받아주지 않고 물자가 운반되지 못하게 하며 들에서도 식량을 약탈할 수 없게 하면, 적은 굶주림 등으로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그들을 유인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야전을 치르고자 한다면 험준한 지세에 의지하여 매복을 설치해야 합니다. 험준하지 못하면 흐리거나 어두운 날 또는 안개가 낀 날을 택하여 불시에 적을 습격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위의 대화 내용으로 보면 손자가 말하는 ‘산지무전’이 결코 소극적으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방어 또는 ‘공세적 방어’ 계략임을 알 수 있다.

손자는 이와 함께 “산지에서는 장병들의 뜻이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적이 우리 땅 깊숙이 들어왔을 때 아군은 정치상 우세를 차지하여 백성들을 동원, 적개심을 불태우고 용감하게 적을 물리쳐 나라를 지켜야 함을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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