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착하기만 한 사람 길러내는 교육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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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착하기만 한 사람 길러내는 교육 이제 그만...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1.04.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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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가짐이 얌전하고 행동이 차분하여 일을 차근차근하고, 무슨 일이든 불평 없이 척척 해내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착한 사람’의 개념이 많이 달라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착한 사람’이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또 “주관이 없는 사람” 혹은 “남의 말을 잘 듣고, 주관이 없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학교가 이런 사람을 길러낸다면 교육을 잘하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본능에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회에 적응하는 사회화가 필요하다. 사회화란 구성원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가치, 기술, 지식, 규범 들을 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한 번의 사회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로써 가정생활, 군대에 가면 군인으로서, 그리고 취업하면 직장인으로서 적응하기 위해 사회화가 필요하다. 이렇게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생활 양식과 규범 등을 학습하는 과정을 재사회화라고 한다.

 

<사회화는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도의 불란드샤르에서 발견된 디나, 원숭이와 함께 자란 인도 소녀, 늑대에서 인간으로 변화를 시도한 마르코스, 프랑스 아베론 야생에서 발견된 빅터, 우간다의 원숭이 소년 존, 러시아의 들개들 수장이 된 이반, 우크라이나의 들개 소녀 옥사나,...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원숭이나 늑대, 들개...로 사회화된 것이다. 교육을 학교게서만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은 태어나면서 시작돼 평생동안 이어진다. 정서는 학교의 지식, 이해, 태도, 기능, 적응...교육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피부와 눈과 표정으로 좋고, 싫고, 기쁘고, 슬프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정서교육을 체화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

학교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교육부가 발족한 이래 일곱 번째로 개정된 수준별교육과정이다. 현행교육과정이 추구히는 인간상은 ‘지덕체를 겸비한 창의적 미래인재 육성’, ‘지성과 덕성을 갖춘 유능한 인재(人材)를 양성’, ‘문화 시민 의식을 기르고 굳센 뜻으로 자주 자립하는 애국 애족의 민족정신을 고취하여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인재양성’이다.

‘사람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보다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우선하겠다는 인간관이다. 요즈음 대학에서는 중고등학교와 인재양성(人材養成) 협약체결이 유행이다. 헌법 제 10조가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길러주는... 피교육자가 행복하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이 아니라 ‘누구에게 필요한 인간’이다. 국가가 필요한 인간, 회사가 필요한 인간, 자본이 필요한 인간이 인재(人材)다.

 

<수요자 중심의 7차교육과정>

정부가 지난 2000년부터 학생 중심의 ‘자율과 창의성’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한 교육은 수요자중심의 ‘제7차 교육과정’이다. 7차 교육과정의 주요 골자는 △교과서 암기위주의 교육에서 실험, 탐구, 토론 등 창의성과 문제해결력 신장 강조 △학생의 교과목 선택권 확대 등 수요자 중심 강조 △학교 단위 자율 프로그램을 위해 ‘재량활동’ 신설·확대 등이다. 겉으로 보면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행 7차교육과정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다.

수요와 공급은 상업용어다. 교육을 상품화하겠다는 폭탄선언이다. 성의 차이, 인종, 피부색, 학력, 능력...에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와는 다른 상업주의 논리로 교육을 제단하겠다는 교육관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나라>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는 이념에서 출발한다. 헌법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와 평등을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누리며 사는 국가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 10조가 지향하는 행복추구권과 “헌법 제119조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자본주의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다.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와 상업주의,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이윤의 극대화라는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다. 7차 교육과정은 헌법 10조가 추구하는 가치보다 헌법 119조가 추구하는 가치를 상위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소비자 주권 보장 못하는 수요자중심의 교육>

“안전할 권리,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선택권리, 의사를 반영시킬 권리, 보상을 받을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단체조직 및 활동할 권리, 쾌적한 환경에 살 권리” 소비자보호법이 보장하고 있는 소비자의 권리다. 교육이 상품화됐으면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공급자인 교육부와 학교에 소비자주권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학교는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그런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7차 교육과정을 만들 때 교육소비자들의 의사를 얼마나 반영했는가? 학교는 평생 노동자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사회화를 시키지 않고 있다. 화가가 꿈이 아니들에게 영어나 수학을 더 많이 가르치겠다는 것이 교육소비자들의 요구와 배치되지 않는가?

 

<경쟁교육은 폭력입니다>

학교교육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서를 체화해야 할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체득해야 할 정서교육을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에게 맡겨야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무리 유능한 유치원교사라도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정서교육, 엄마의 사랑을 대신해 줄 수 있는가?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어떤가? 유모차를 타고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는 아이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자라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 폭력영화를 보면서 폭력을 사회화한다. ‘적은 죽여야 한다’는 살인을 정당화하고, 살상무기인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상대방을 죽여야 살아남는 영화 <헝거 게임>이나 <베틀로얄>과 영화에서 폭력을 사회화한다.

중앙대 김누리교수는 “한국교육 100년 중 30년간 식민교육, 40년간 반공교육, 또 30년간은 인적자원교육이었다. 사람을 위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다운 교육을 해 본 일이 없다.”면서 “대한민국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반교육”이라고 단정한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교수는 “학벌주의, 능력주의는 승자를 찬양함으로서 오만하게 만들고, 패배를 본인의 책임으로 몰아가 좌절감을 갖도록 만든다.”고 질타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 김경일교수는 “학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만들어진 가면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빙충이들이다. 그들이 논문에 써내고 강의실에서 뱉어내는 말들은 아무 곳에서도 써먹을 수 없는 그들만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제나 끼리끼리 만나서 자리를 나누고, 적당히 등록금과 세금을 연구비나 학술 보조비 따위로 나누어 먹으며 히히덕거리지만 돌아서기가 무섭게 서로를 물고 뜯고 비방하는 저열한 인간들”이라고 했다. 누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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