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헌법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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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헌법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역사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1.04.0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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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조선 25대 고종 임금은 국제정세를 깊이 이해하고 일본과 수교하고 적극적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한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1881년 별기군을 창설’, ‘영세중립국’제안, 1897년부터 1907년까지 ‘광무개혁’,...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선포, 1905년 6월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07년 7월 22일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간에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은 일본제국에 통합된다.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을 발표하자 태황제(고종)가 다시 움직일 것을 우려하여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1919년 3월 1일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대여’가 떠나는 날, 경운궁 대한문 앞에 모인 백성들은 태황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손병희 선생을 위시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 선포를 시작으로, 조선 8도에 만세운동이 퍼져나가 독립운동을 시작한 날이 ‘3.1절’이다.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다>

1919년 4월 11일 임시헌장 제정...이라고 하면 겨우 한달만에...? 라고 의아해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한독립에 대한 열망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해 러시아 연해주의 대한국민회의, 국내의 한성정부 세 곳 등 국내외 각처에서 임시정부는 무려 8개에 달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민족의 열망은 우후죽순처럼 국내외 곳곳에 세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0일 저녁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준비위원회에서 신석우 위원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 우리나라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게 된다.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국민과 영토만 있다고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나라의 얼개를 그린 ‘헌법’이 있어야 한다. 헌법이란 국가의 기본 법칙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세우며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최고의 규범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사람의 나이로 치면 102세다. 1948년 4월 11일 임시헌장과 9월 11일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헌법에서 출발한 우리헌법은 임시정부에서 만 5차례, 1948년 정부수립 후 아홉 차례 개헌해 오늘날에 이르러고 있다.

 

<조선영토를 점령한 미군정의 헌법>

1945년 해방은 됐지만 38선으로 허리가 잘려 북쪽에는 치스차코프사령관이, 남쪽에는 맥아더 사령관이 지배하는 3년간의 군정시대를 보내야 했다,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당해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반항행위는 엄중히 처벌”당해야 하는 군정기가 있었다. 군정기의 헌법은 맥아더 사령관과 치스차코프사령관의 포고문이다. 

이름뿐인 해방은 남쪽에는 미군의 점령지로서 건국준비위원회는 물론, 심지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도 불인정하여 한국인의 자주적 통치활동을 부정한다. 한반도에서의 분단은 3년간의 군정기는 미군정이 친일파들을 대거 고용, 편입하였고, 한민당을 비롯한 우익세력을 지원해 친일파 청산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3년간의 군정기는 제주 4·3 사건 등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48년 7월 17일 제헌 헌법이 재정 공포된다.

 

<우리헌법에 담긴 삼균주의>

1941년 11월 공포된 건국강령에는 우리 민족이 지켜야 할 최고의 공리(公利), 즉 평등 세상을 염원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 철학이 담겨 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라고 하고 하면 수구세력들은 빨갱이 사상이라며 펄쩍 뛰겠지만 균등의 개념은 기회와 권리의 평등을 뜻한 것으로 공산주의 이론인 결과까지의 평등이 아니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각 개인의 균등한 생활 확보를 전제로 대생산기관·공리기업·대기업은 국유로, 중소기업은 사영(私營)으로 하며, 일제 및 부역자의 재산은 몰수해 국·공영 집단생산기관에 귀속시키도록 하는 내용으로 노동권, 건강권 및 토지분배에 대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법 계승성>

1948년 제헌국회에서 만든 제헌헌법의 체계는 1944년 임시정부가 만든 임시헌장의 체계와 거의 같다. 체계뿐만 아니라 기본이념과 내용의 측면에서도 양자의 헌법은 너무나 유사하다. 우선 헌법 전문에서 3·1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임시정부의 여러 헌법 전문과 같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제헌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1944 임시헌장’의 제1조와 제4조를 계승한 것이었다. 또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부분도 대체로 ‘1944 임시헌장’에 실린 국민의 기본권의 내용을 계승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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