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성 판축성벽 조사결과 23일 온라인 공개
상태바
부여 부소산성 판축성벽 조사결과 23일 온라인 공개
  • 조성우
  • 승인 2021.02.23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문지와 주변 성벽 대상…백제 사비왕도 축성기술 실체 확인
▲ 부여 부소산성 판축성벽 조사결과 23일 온라인 공개

[충청메시지] 부여군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추진 중에 있는 부여 부소산성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성벽 관련 시설과 통일신라~고려시대에 걸쳐 거듭해서 쌓은 성벽을 확인했다.

이들 현장은 23일 오후 3시 부여군과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 부소산성은 부여지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핵심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백제 마지막 도읍으로 알려진 추정 사비 왕궁지의 북쪽 배후에 해당하기 때문에 왕실의 후원이자, 유사시 도피처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으므로 왕궁에 버금가는 시설을 겸비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1980~1990년대에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서는 동성벽과 북성벽 위주로 진행되어 서성벽과 서문지에 대해서는 추정만 될 뿐 정확한 범위와 축성의 실태를 알 수 없었다.

이에 20여 년 만에 재개된 이번 발굴조사는 백제 추정 서문지와 그 주변 성벽을 대상으로 실시해, 서성벽의 문지와 함께 부소산 전체를 아우르는 백제 포곡식 성의 정확한 동선을 파악했고 배수와 출입 관련 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소산의 남동쪽 정상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통일신라시대 테뫼식 성의 축조 방식과 시기마다 달라지는 부소산성 성벽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도 얻을 수 있었다.

부소산성의 백제 포곡식 성은 기본적으로 판축으로 축조됐고 이외에도 판축 외벽만을 석축하는 방식, 두 겹 이상 판축하는 방식, 내벽에 배수로를 부석하는 방식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조사된 서성벽 구간은 부소산성 성벽 중에 중심토루가 가장 견고하고 반듯한 상태로 확인됐다. 성벽의 판축층 너비는 약 4.8~4.9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최대 4.4m 정도로 훼손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거대했을 것이다.

또한, 성벽의 중심을 이루는 판축층의 내외벽은 모두 흙으로 보강했는데, 일부는 가공한 석재를 이용해 마무리한 특이한 양상도 확인됐다. 백제 포곡식 성은 통일신라시대에도 재차 보수작업을 거쳐 꾸준히 활용됐다. 그만큼 부소산성이 중요한 위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성벽 보수는 성 안쪽 벽면으로 와적층과 부석층을 조성해 보강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일부 구간에 한해 석렬이나 석축이 덧대지기도 했다.

추정 서문지 지점은 부소산 남록의 추정 사비 왕궁지에서 서복사지를 거쳐 성 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이곳은 원래 골짜기를 이루는 지점에 해당하며 조사결과 백제 성벽 판축층 위로 암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암거의 상부구조는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지만, 이 주변으로 문지공석, 원형 초석, 매우 잘 치석된 대형 가공석들이 산재해 있어 출입 목적의 구조물이 존재했다을 알 수 있다. 백제와 통일신라 성벽이 연접한 지점에서는 백제 성벽 위로 통일신라 테뫼식 성벽이 만들어졌다.

테뫼식 성의 외벽은 기존의 백제 성벽을 수축해 사용하였지만, 내벽은 백제 성벽 위에 기단석축을 부가해 축조했다. 성벽 시설층에서 축성과정 중 유입된 ‘회창7년’ 명문와가 출토되어 성벽의 조성 시기는 9세기 중반 이후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서성벽과 추정 서문지의 확인을 통해, 백제 사비왕도 내에서도 핵심에 해당하는 성벽의 실체와 그 축성 기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최근 한성기와 웅진기 왕성인 풍납토성, 몽촌토성, 공산성의 최근 발굴 성과와 함께 백제 중앙의 수준 높은 축성 기술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해에도 백제 서성벽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서문지의 존재 여부, 성벽 축조 공정 과정과 기법을 확인할 예정으로 앞으로 고대 토목기술의 복원과 유적 정비를 위한 귀중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