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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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1.02.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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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

【팩트TV-이기명칼럼】떡국을 먹었다. 아무도 오지 못 하게 했으니 아내와 단둘이서 설 떡국을 먹었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차례도 못 지냈다. 자식 노릇도 못 했다. 슬프다.

글을 쓰려니 부인이 ‘오늘 하루 쉬면 어디가 덧나느냐’ 꾸중이시다. 할 말 없지만 한두 번 들은 꾸중이냐. 쓰기 시작했다. 그만큼 언론 징벌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에 포함

1950년대 말 조셉 페브니 감독의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는 영화를 봤다. 제임스 카그니 주연이다.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는 있다. 배우가 아니다. 궁금하신가. 언론이다.

우리는 하루라도 언론을 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언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을 알 수 있다. 언론이 인간을 바보로도 만들고 현자로도 만든다. 나쁘게 말한다면 언론은 사람은 데리고 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특히 정치에서 그렇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에 우리 국민은 어떻게 살았는가. 바보처럼 살았다고 자괴감에 빠지는 국민이다. 그런가 하면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지 다들 알 것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자신이라고 난 믿는다. 그것이 옳든지 틀리든지 말이다. 다만 세월이 흐른 다음에 역사가 평가한다.

언론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다면 바보다. 언론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눈을 뜨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이럴 때 불을 밝혀주는 것이 언론이다. 기자다. 기자는 언론이라는 불을 켜고 사람이 갈 길을 인도한다. 이때 기자가 실수든 고의든 불을 꺼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가. 상상조차 두렵다.

(자료사진 - 신혁 기자)

■왜 징벌적 손해배상을 언론이

왜 언론을 ‘징벌적 손해배상’에 포함하느냐고 일부 언론이 따진다.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라면 ‘징벌이나 받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으냐’고 하는 수밖에 없다. 나이 먹은 게 자랑일 것은 없지만 언론이 가진 온갖 잘잘못을 모두 체험한 나는 말을 할 수가 있다. 언론도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언론이 모두 일어서 언론민주화를 외칠 때 조·중·동도 함께 했다. 그런데 왜 이제 그렇게 달라졌는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면 바로 그런 인식이 언론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조·중·동이 반민주 언론이 아니라고 반박할 용기가 있는가. 있으면 나하고 토론 한 판 붙자. 만용에 뜨거운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겠는가. 지난 9일 오마이뉴스가 의뢰해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4.4%p) 결과를 보면 언론까지 징벌적손해배상을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61.8%, 반대가 29.4%였다. 할 말 있는가.

■국민이 옳다면 옳은 것

지만 10일 더불어민주당 최고회의에서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분명하게 한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지만 고의적 가짜뉴스와 악의적 허위정보는 명백한 폭력이다.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영역이 아니다.”

“언론개혁법안들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미디어 민생법이자 국민의 권리와 명예, 사회의 신뢰와 안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언론 자신도 ‘징벌적손해배상’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찬성 61.8%, 반대 29.4%였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언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절벽 위에 서 있다. 언론이 바로 설 마지막 기회다. 한데 거짓말이겠지만 징벌 보상액이 1,500만 원이란 소문이 있다. 애들 장난하는 거냐. 등줄기가 휘도록 보상을 매겨야 한다.

‘징벌적손해배상’ 반대 세력을 안다. 가짜뉴스를 생산해서 재미를 보는 일부 유튜버와 지역주의에 편승한 반민주 세력들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 이제 언론은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기레기’란 오명은 진짜 기러기 등에 실어 멀리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자유당 시절 동아일보 기자가 대폿집 가면 청년들이 존경의 뜻으로 술잔을 권했다. 지금 어디 가서 조·중·동 기자란 이름으로 술 한 잔 대접 받는가. 그들도 가슴이 아플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기자들이다.

인간이 왜 다른 짐승들과 달리 존경을 받는가.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가슴을 펴고 존경받는 기자가 되어 거리를 활보하며 살아보자. 정월 초하루, 두 손을 모으며 쓴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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