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의회, 2021 새해 첫 임시회 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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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의회, 2021 새해 첫 임시회 개회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02.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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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회 기간 중 의원발의 조례안 4건을 비롯한 20건의 안건심사 및 2021년도 군정 주요업무계획 청취 예정
이원복 의원(5분발언) /조선 의병 - 장암 출신 이강 선생과 임천 출신 권각 선생 정려각정비 및 표석 설치 건의
박순화 의원(5분발언) /민원인을 어렵게 하는 부여군청 주차공간 해결방안 강구

부여군의회(의장 진광식)는 15일 오전 본회의장에서 2021년 첫 임시회인 제252회 부여군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개회하고 오는 24일까지 열흘간의 일정으로 2021년 새해 첫 임시회를 개의했다. 

진광식 의장은 "우리를 가장 긴장시키는 뉴스가 코로나19 확진자와 관련된 소식이라며 더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철저를 기해다라"면서 "2021년도 군정 주요업무계획 청취와 관련해 주요 정책이 내실있게 수립되었는지 추진 상에 문제점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펼서 우리군의 발전과 군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다양한 의견과 방안을 제시하여 군민들에게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신축년 한 해도 의회와 집행부는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여 참된 지방자치 실현과 군민이 바라는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번 임시회에서는 첫날 제1차 본회의에서 이원복 의원과 박순화 의원의 ‘금산칠백의사 권 각 선생’과 ‘군 청사 주차장 이용’에 대한 5분 발언을 시작으로 16일은 상임위원회에서 ‘부여군 정원문화 조성 및 진흥에 관한 조례안’ 등 의원발의 안건 4건을 포함한 총 20건의 안건을 심사하고 17일부터 23일까지 ‘2021년도 군정 주요업무계획’을 청취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원복 의원과 박순화 의원의 5분발언 전문이다.

[이원복 의원 5분발언]

저는 오늘 국가가 누란에 처해 있을 때 붓 대신 칼을 잡고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친 선비 한분을 개하고자 합니다. 그분은 임천면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금산성 전투에서 순국한 권각 선생입니다. 이분은 본래 명문가의 후손으로 고향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평범한 젊은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왜군이 쳐들어와 강토를 유린하고 백성을 살육하는 참변이 벌어지면서 평소 존경하는 스승인 중봉 조 헌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는 격문을 보내자 이에 분연히 일어나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선생은 20대 초반으로 젊은 아내와 강보에 싸인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옷소매를 붙잡고 매달리는 가족들을 뿌리치며 남긴 말이 우리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비록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는 아니지만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어찌 방관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헌 선생, 승병장 영 규 대사와 함께 청주성 탈환작전에 선봉으로 나서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으로 금산성 전투에 참전하게 됩니다. 이때 권각 선생은 조헌선생의 곁에서 군의 깃발과 군사의 조련을 맡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의병의 승전을 시기한 관군의 훼방으로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져 금산 연곤평에서는 조선의병 7백명과 왜군 정예병사 1만명이 건곤일척의 백병전을 벌리게 됩니다.

이때 산화한 7백의병 중에 부여출신이 두 분 계십니다. 바로 장암출신 이강 선생과 임천의 권각 선생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분들의 시신은 개별적으로 수습되지 못해 금산 칠백의 총에 합장하게 됐고 유품만으로 가묘를 조성하여 모셔왔습니다. 두분의 높은 공훈에 대해 조정에서는 충신정려를 내리고 벼슬을 중합니다.

우리 부여군에서는 이강 선생의 장려각과 묘는 2016년에 권각 선생의 정려각은 2019년에 부여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먼저 지정된 이강 선생의 유적은 예산을 들여 정비한바 있습니다.

우리 부여군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역사도시입니다. 백제국을 위해 헌신하신 계백장군을 비롯한 충신열사와 효자열녀를 현창하는 사업에 많은 예산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해부터는 전국 최초로 애국지사의 공훈과 명예를 선양코자 출신마을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금년에는 역사속에 살아있는 숨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훈‧포장을 신청하는 뜻깊은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런 시책들은 우리 부여군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올리고 우리 부여군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충절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아쉬운 것은 바로 서두에서 소개한 임진왜란 칠백의병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점입니다.

구한말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의병의 기원은 바로 금산성 전후에서 순국한 칠백의병입니다. 어떤 분은 금산성 전투와 부여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우선 금산성 전투에 참여한 의병의 출신지가 이고장 등 충청인이 대다수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비록 이 전투에서 패배 했지만 조선의병의 결사항쟁에 겁먹은 왜군이 호남진출을 포기하면서 부여를 비롯한 호서와 호남지역의 곡창이 보존되어 반격의 교두보가 된 것입니다. 지금 애국지사마을 표석은 현행 국가유공자 예우법에 의한 정부 포상자를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구한말 의병활동과 3. 1만세 운동 그리고 군자금 모집, 농촌계몽활동을 펼치다가 옥고를 치르거나 태형을 맞은 분들이지요.

물론 이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빛나는 구국투쟁은 널리 선양돼야 합니다. 그러나 항일투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칠백의병에 대한 선양사업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공훈과 희생에서도 금산순국의병과 구한말의병은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계백장군의 충혼을 기리고 유적을 성역화하는 것은 장군의 행적이 역사의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권각 선생의 우국충정과 순국과정도 조선왕조실록과 중봉집, 시남집 같은 유명인사의 문집, 옛 임천군지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법상 서훈대상자가 아니니 애국지사처럼 표석을 세울 수 없다고 한다면 충절과 역사의 고장으로 서는 인색하고 속 좁은 판단 아닐까요? 더구나 권각 선생의 충신정려는 1771년부터 1871년까지 무려 백년간에 걸친 긴 세월동안 임천의 유림과 백성들이 탄원에 의해 이루어낸 귀중한 결과입니다.

40여 차례에 상소한 문서에는 임천의 유림 685명의 이름이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 이고문서를 분석한 관련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고장 출신 충신의 정려포양을 위해 백년간 끈질기게 청원한 임천군민의 저력과 원동력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학술자료이며 당시 임천군수가 세워준 정려각은 문화자원 활용에 좋은 기초 자료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임천의 자랑스런 역사이며 부여역사의 산 증인들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임천 두곡리에 있는 정려각과 신도비에는 관련 학자와 연구가들의 답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연구자는 이 사례연구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정도입니다.

선생의 후손들인 안동권씨 참판공 종중에서는 방문객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낡은 정려각을 정비하기 위해 미관상 조잡한 시멘트 담장을 걷어내고 신도비를 옮기는 등 나름 정성을 들였지만 지붕의 기와수리나 내부단청 같은 전문적인 부분은 자금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중에서는 그동안 초촌면에 있던 권각 선생의 묘소를 부인이 안장된 임천면 두곡리 나르메 마을로 옮겨 이제 권각 선생의 유적은 한곳에 모여졌습니다. 권각 선생이 명문가의 후예로 일신의 안위가 보장된 선비의 길을 버리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붓을 꺾고 칼을 잡은 것은 학행일치의 표본입니다.

이제 선생의 보국헌신에 대해 우리가 답을 내놓을 때입니다. 부여에서는 거들떠보지 않은 선생의 행적과 관련유물이 외부 연구가들에 의해 그 진가가 밝혀진 점에 해당 지역구 의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민생을 살리는 것도 시급하고 세계유산을 정비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묻혀있는 역사 인물의 행적을 찾아내고 그분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사업도 활발히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칠백의병의 3대 정신은 조국수호, 신의단결, 그리고 학행일치입니다. 바로 오늘에 사는 우리 공직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본 의원은 칠백의병 중 한분인 권각 선생의 유허를 자라나는 세대들의 호국정신 교육장으로 활용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정려각도 충신의 유적답게 정비하고 지사의 행적을 소개하는 표석도 세워야겠습니다. 또한 공주역사박물관에 보관중인 포양관련 고문서도 부여로 이관토록 하여야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동료의원님과 관계관들, 그리고 임천의 유림들과 머리를 맞대고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리면서 다시 한 번의 말씀을 드립니다.

[박순화 의원 5분발언]

제가 5분 발언을 하는 이유는 대단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도 저 하나만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문민원인들이 항시 피부로 느끼고 “왜 해결되지 않을까” 라고 항상 의문을 삼고 있는 군 청사 주차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부여군은 박정현 군수님 이하 공직자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군청의 담장을 낮추고 많은 군민들의 의견을 몸소 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군민들께서 부여의 발전에 필요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하여 군청을 방문해 주시고 계십니다. 부여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많은 분들이 자가용을 이용하고 계십니다.

후에 대중교통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방안을 탐구해야 하지만 우선적으로 군민과 부여군청에서 일하는 동료 공무원들을 위한 방안을 주차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군청 방문시 문제점은 첫째, 주차공간의 부족입니다. 

현재 군청앞에는 65면의 주차공간이 있습니다. 일반주차 56대, 장애인주차 7대, 임산부주차 2대입니다. 장애인 주차와 임산부 주차를 제외한 56면의 주차공간이 있는데 왜 주차공간이 부족할까요?

물론 특수한 상황에선 56명 이상의 군민들께서 찾아 오실 수도 있지만 그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해도 자리가 부족합니다. 3만 3천여 가구가 있는 부여군을 대표하는 부여군청 앞 주차공간이 단지 56자리의 주차면만 확보하고 있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바로 장기주차 자가용에 대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여군청 공무처리용 차량으로 6여 자리를 제외하고라도 50여 자리는 항상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은 장기주차 차량이 대다수란 얘기일 것입니다. 바로 이 장기주차차량에 대한 관리의 필요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제시한 주차공간 확대문제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수반되므로 당장 논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주차 공간 확대” 이외에 “공간의 효율화”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좋은 예시를 우리 지역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안경매니저 사이의 “사비로 노상주차장”은 협소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요금 부과로 이용객들이 자신의 용무에 필요한 시간 이외에는 주차를 하지 않고 있어 주차공간의회전율이 높아 주차에 대한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군청에 주차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첫 번째 문제는 물론 두번째 문제까지 해결되어 시간과 비용면에서 주차에 대한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부여군청이 “사비로 노상주차장”과 똑같이 운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료 30분 주차, 30분이상 주차시 500원 이라도 요금부과, 30분 이상 소요되는 용무로 군청 방문 시 무료주차권 발급 등 여러 가지 옵션을 여러분들과 상의하여 좋은 의견을 낸다면 우리 군청의 주차문제는 원활한 방향으로 해결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원활한 방향으로 주차문제가 해결된다면 방문 민원들의 스트레스는 낮아지고, 이런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공무원분들의 업무 효율도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정의로운 부여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시는 박정현 군수님과 끝까지 본 의원의 발언을 경청해 주신 군민 여러분, 공직자 여러분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동료 의원 여러분, 방청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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