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정치는 럭비에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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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정치는 럭비에서 배워라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1.01.19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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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트라이(득점)’였어

【팩트TV-이기명칼럼】

■판정은 불변

나는 축구선수였다가 럭비선수가 됐고 그 후 럭비 예찬론자가 됐다. 럭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는 럭비선수 출신이면 신원보증이 필요 없다. 최고의 신사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럭비에서 심판은 절대자다. 심판의 판정은 불변이다. 한 선수가 트라이(5점 득점에 해당)를 했다. 심판은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수는 항의 없이 승복했고 우승에서 탈락했다. 선수가 늙어 임종에 이르렀다. 운명하기 직전 그의 마지막 말이다.

“그때 나는 트라이(득점)를 했다.”

옳고 그름에 차원을 넘어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어야 한다. 사법정의가 논쟁의 중심에 설 때마다 난 럭비선수의 유언을 생각한다. 대법원장이 개그 대상이다. 국회의원·판사·검사·언론인도 마찬가지다.

■사법정의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던 가난한 언론인들. 그래도 그때는 지금처럼 기자가 정신적으로 헐값이 아니었고 기레기도 아니었다. 법원에 갈 수 없는 가난한 서민들은 기자를 찾아와 판결을 구했고 기자의 판결에 두말없이 승복했다.

내가 존경하는 송건호·리영희 선생님은 내 인생의 좌표요 스승이셨다. 대학생 시절 동아일보에 김동명(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 1900~1968) 선생이 쓰시던 '적과 동지' 글을 다시 보고 싶다. 동아일보를 읽으며 목에 힘을 주던 그 우쭐함이 지금은 ‘동아’라는 제호만 봐도 눈을 돌린다.

어떤가. 지금 동아·조선·중앙을 비롯해서 이른바 기레기로 찍힌 기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서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는가. 고백할 수 있는가. 새까만 후배가 날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소리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왜 내게 죄송하다는 소리를 해야 하는가. 이유는 알지만 아무 말도 말자.

대학생들이 가장 신뢰한다고 평가를 하는 한겨레신문에 ‘대기자’라는 직함의 후배가 있다. 가끔 만나 서로 속을 털어놓는다. 결론은 한마디다.

“지금 젊은 기자들은 선생님 때 기자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민주언론 같은 거 과연 얼마나 생각을 하는지요. 성장 과정부터 다릅니다. 민주언론, 웃습니다.”

할 말이 없다. 어찌 기자들뿐이랴. 내가 존경하며 속 털어놓고 말하는 법조인이 계셨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참여연대 회장도 지내셨다.

“고시 합격하고 임관 후 몇 년은 아주 반듯합니다. 그러다가 변합니다. 변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검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존경받는 기자가 그리운 것이다.

■희망은 있는가.

세상이 다 알고 있으니 숨죽여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적폐 수구세력이라고 부르는 '국민의힘'을 비롯해서 ‘가짜 왜곡 과장 음해’를 일삼는 언론들은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라 믿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매가 무서워 찍소리 못하던 언론이 이제는 ‘막가파 언론자유’로 자유 만세다. 이들의 결속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적폐청산이 성공하고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적폐청산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사적이다. 이미 음모는 진행되고 있다.

공개할 수 없는 음모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제 누구의 양심에다 희망을 걸어 볼 것인가. 양심은 흐르는 물 같다고 생각했다. 물은 흐르다가 바위가 막으면 넘어서 간다. 양심의 흐름도 같다.

유치한 음모는 진행되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양심 때문이다.

난 두려움이 없다. 아니 하나가 있다. 이 나라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불의한 세력들이 활개 치는 그런 세상이 다시 돌아오면 어쩔 것인가. 그것은 죽는 것보다 무섭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급해도 혼자서는 안 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혀를 깨물어 결의를 다져야 한다.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후보가 돼라.

다시 럭비 얘기로 돌아가자. 럭비가 거친 운동인가. 위험한 운동인가. 천만에 말이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럭비 경기 구경을 갔다. 스크럼 속에서 서로 엉키고 태클로 넘어진다. 옆에 있던 아내는 “어머머 다들 죽네”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나 선수들은 툭툭 털고 일어난다. 럭비는 그런 것이다.

럭비에는 잘하는 선수를 부상 입혀 못 뛰게 하는‘더티플레이’가 없다. 서로가 보호한다. 우리 정치가 럭비선수에게서 배워야 한다.

만약에 럭비선수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불행한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실수가 아닌 한 그런 사고는 없었다고 장담한다. 지금 우리 정치를 쓸고 다니는 중상모략, 우리 정치도 럭비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비겁하지 않고 치사하지 않고 이겨도 져도 정정당당하기를 바란다.

선거는 승리가 목표다. 그러나 치사한 승리는 비극이다. 자신에게도 국민에게도 아픔만 남는다. 국민이 정치를 포기한다면 어쩔 것인가.

내가 항상 럭비 경기를 설명하는 이유는 당당하라는 것이다. 눈앞에 승리에만 집착해 경박하게 굴면 오래 못 같다. 겸손해야 한다. 비겁한 승리는 역사에 수치로 기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공수특전단(낙하산부대)출신이다. 오래 전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물은 적이 있다. 군용기에서 허공으로 낙하하기 전 기분이 어떠냐. 기분이라니 바보같은 질문이다. 그는 그냥 빙긋이 웃었다. 아직도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빙긋이 웃는 것이 대답일 것이다. 삶과 죽음이 다 포함된 그의 빙긋 웃음. 나는 안다. 그의 무념무상의 심정을.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정치인들은 배워야 한다. 그의 당당함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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