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이낙연’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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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이낙연’을 기억한다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1.01.0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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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운명

【팩트TV-이기명칼럼】팩트TV 새해 첫 칼럼입니다. 거짓말 안 하겠습니다.

 

■운명과 현실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들으며 가슴을 두드리는 운명의 노크를 느낀다. 몇 번을 반복되는 운명의 두드림을 들을 때마다 운명을 생각한다. 가까이 듣던 ‘운명’은 이제 음악이 아닌 현실의 ‘운명’이 됐다.

40여 년이 흘렀다. 신촌의 삼겹살집이다. 이호철·천호선·이광재(나이순) 그리고 몇몇 좋은 청년들. 약속한 시각에 노무현 의원이 들어선다. 최초의 만남이다. 인사가 끝났다.

‘선생님 일전에 편지 고마웠습니다.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런데 후원회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습니다. 수백 년 서울 명문가의 선생님이 제 후원회장을 하시면 고생만 하십니다. 뜻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얘기가 이상하다. 난 지금 노무현 의원이 내게 후원회장을 부탁한다고 해서 나왔는데 다르지 않은가. 후원회장 거부다. 비서들이 노 의원의 승낙도 받지 않고 내가 후원회장을 수락한 것으로 보고한 모양이다. 난 뻥 했다.

 

■우여곡절 후원회장

부탁해도 할까 말까인데 거절을 당했다. 오기가 생겼다. 좋다. 그럼 한번 해 보자. 설명이 좀 필요하다. 노무현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한 적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몹시 화가 났다. 그래도 국민이 좀 낫다고 기대하는 정치인이 의원직을 사퇴하면 그나마 정치는 누가 한단 말인가. 당시 KBS 작가실장이던 나는 통렬한 비판 편지를 등기로 보냈다.

편지를 노 의원이 읽고 비서들도 보고 비서들은 지들끼리 의논을 해서 날 후원회장으로 추천한 것이다. 거절당한 나는 강요하다시피 후원회장이 됐다. 한번 해 보자. 가시밭길이었다. ‘5분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의 돈 잘 버는 작가는 방송 집필을 끊었다. 그날부터 난 노무현 후원회장이다.

■한다면 하는 거다

내가 축구 선수, 럭비 선수 출신이다. 한다면 했다. 노무현 후원회장을 하면서 열심히 했다. 난생처음 호남 땅을 밟았지만 내 집처럼 아꼈다. 당대표 선거 때 호남 산골 대의원 집을 혼자 찾아가니 대의원이 눈물을 흘렸다.

속담은 조상의 지혜가 녹아 있는 말이다. 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동한다. 후원회로 오는 그 많은 편지에 모두 답장을 했다. 모두 며칠이나 갈 것인가 의심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를 믿기 시작했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노 의원도 나를 믿었다. 믿음 이상의 에너지가 어디 있는가.

언론인을 많이 알았다. 언론사 간부들과 식사 자리였다. 어느 언론사 보도국장이란 자가 하는 소리. ‘당신이 무슨 대통령 꿈을 꾸는가?’

참자. 한신이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지 않았던가. 그날 귀갓길 차 속 창문에 비친 노무현의 뺨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 보도국장은 내게 사과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나는 웃었다.

대통령후원회장은 실세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실세가 될 셈이다. 그럼 실세는 뭘 하는 거지. 벼슬을 하는가. 돈을 버는 가. 생각 밖의 일들이다. 좋은 대통령만 되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이낙연 의원이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이 됐다. 아주 중요한 자리다. 기자들은 이낙연이 쌀쌀맞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할 말만 한다. 그도 자신에 대한 얘기들을 안다. 불의를 멀리하고 정의를 아낀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른 행동을 한다면 또 뭐라고들 할까.

당내 최대 계파의 중진 하나가 내게 접근해서 한 말이다. ‘이제 선생님도 정치하려면 자금이 필요합니다. 제게 맡기시고 제 말만 들으십시오’ 이게 무슨 소린가. 이낙연 대변인에게 전했다. 듣기만 했다. 그 후 그는 안 보였다.

기자들 앞에서 무조건 고개 숙이지 않는 그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나를 믿으면 나도 믿는다

전화가 왔다. 아침 8시. 이낙연 지사다. KTX란다. 대통령과 만난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의 결론이다. “최선을 다 한다고 하세요”

믿음은 지금도 계속된다. 내 나이 생리적 수명은 거의 다 살았다. 욕심은 그저 ‘사람사는 좋은 세상’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지지한 정치인은 좋은 세상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대통령이 된다고들 한단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제갈공명 같은 현인도 아니다. 왜 사람들이 나를 입에 올릴까. 정직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내가 소개하는 사람은 무조건 믿었다.

내가 후원회장을 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고, 멘토였던 문재인도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낙연도 믿는가. 내가 지지하는 이낙연도 거짓말하지 않는 정치인이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 하는 정치인들에게 질려버린 국민인가.

 

■그릇의 크기는 모두 다르다

사람을 그릇에 이유한다면 사람마다 담을 물의 양이 있다. 큰 그릇에는 많이 담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다.

삼국지를 쓴 나관중이 살아나면 내게 저작권료 많이 요구할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배웠다. 제갈공명의 오장원 유서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 그 많이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일화. 연못에 미꾸라지는 바다를 모른다.

이낙연의 박근혜·이명박 사면 건의가 폭탄이 됐다. 이낙연이 꼼수를 썼을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나도 그랬다. 이유를 물으려다 얼른 접었다.

발톱 빠진 맹수는 이미 맹수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가 사면되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잡아두면 얻는 게 무엇인가. 아아. 그렇구나. 나는 머리를 쳤다. 나는 연못에 미꾸라지다.

오늘의 분열을 어쩔 것이냐. 어떤 방법이 있느냐. 얘기가 길다. 운동경기를 하다 보면 꽉 막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가. 지도자(감독과 코치)의 몫이다.

‘폭탄은 적진에 던졌는데 난리는 아군 진영서 났다.’ 노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문제는 옳고 그름이다. 정의와 불의다. 용서를 이기는 원한은 없다. 문득 생각나서 쓴 말이다. 국민의 힘은 입을 닫았다.

12명의 예비역 장군과 자리가 마련됐다. 놀란 것이 있다. 평상시에 할 수 없는 말들을 거침없이 토로한다. 나중에 물었다. 어떻게 그런 말들을 다 하느냐.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시 신뢰다. 놀란 것이 있다. 장군 12명의 이름을 인사 한번 하고 모두 외웠다. 모두 놀랐다. 집중력인가. 난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특별히 은혜 입은 적이 없다. 난 정치할 사람도 아니다. 노 대통령이 말했다. 어디 하고 싶은 자리 있으면 말해 보세요.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난 능력이 없습니다.’ 노 대통령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선생님은 남을 위할 줄 아는 능력만 있습니다.’ 날 정확히 본 것이다.

사실이다. 난 능력이 없다. 난 늘 생각한다. ‘능력이 없으면서 욕심을 내면 남도 망치고 자기도 망친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다. 내가 아는 이낙연도 그렇다. 비난만을 장땡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의 인생의 마지막 운명은 던져졌다. 이낙연이란 이름 위에 얹혀있는 이기명이란 운명. 좋은 운명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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