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포능기지(飽能飢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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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포능기지(飽能飢之)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0.12.2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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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적을 굶게 한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손자병법』 「허실편」에 나오는 말로, ‘적이 편안하면 피로하게 만드는’ ‘일능노지(佚能勞之)’나 ‘안정되어 있으면 동요시키는’ ‘안능동지(安能動之)’와 마찬가지로 적으로 하여 진짜가 아닌 허상을, 쫓도록 유인하여 주도권을 쟁취하는 방법이다. (‘안능동지’‧‘일능노지’ 참조)

군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군심이 동요한다. 굶주린 병사는 싸우지도 못하고 절로 무너진다. 두군대가 대치하는 중에 적의 후방 보급로를 파괴하는 것은 밥을 끓이고 있는 아궁이에서 장작을 꺼내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따라서 고대 병법에서 이와 비슷한 조목이 적지 않게 보인다. 현대 전쟁에 와서는 후방으로부터의 물자 확보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전쟁 당사자들은 ‘정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적 후방의 보급 기지와 운송 노선을 기습하는 행위를 대단히 중시한다. 따라서 이 계략은 더욱 두드러지게, 더욱 치열하게 운용되고 있다.

기원전 154년, 주아부(周亞夫)는 오‧초 7국의 난을 평정하는 장도에 올랐다. 당시 오왕 유비(劉濞)를 수령으로 하는 반란군은 풍족한 식량을 확보하여 함곡관에서 서쪽으로 진격, 한의 도성인 장안을 곧바로 탈취하려 했다. 주아부는 부장 조섭(趙涉)의 건의를 받아들여, 적의 매복 지역을 피해 비밀리에 빠른 속도로 낙양으로 우회해 들어가 형양(滎陽)의 적군 군비 창고와 오창(敖倉)의 식량 창고를 차지했다. 이리하여 한군은 지리적으로 험준한 곳에서 식량과 무기를 충분히 보급받으면서 지구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주아부는 조섭으로 하여 창읍(昌邑)을 공격하게 하여, 한 주력군 좌측의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오‧초와 제(齊)‧조(趙)의 연결 고리를 끊었다. 이때 오‧초군은 양(梁)나라로 진공하고 있었다. 양왕이 주아부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주아부는 출전하지 않고 양왕에게 굳게 성을 지키면서 오‧초의 서진을 저지하라고 했다.

주아부의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안 양왕은 한 경제에게 직접 구원을 요청했다. 경제는 주아부에게 구원을 명령했으나, 주아부는 실질적인 계산에서, 구원하지 않고 다만 날랜 기병을 보내 오‧초의 식량 보급로를 끊고 주력을 하읍(下邑)에 집결시켜 굳건한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양을 함락시키지 못한 오‧초군은 연일 강공을 퍼부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심혈을 기울인 ‘성동격서’의 전략도 주아부에게 간파당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식량이 떨어져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병사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철수하려는 찰라, 때를 기다리고 있던 주아부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속도를 가속화 하기 위해 공업은 발달해 있지만, 자원이 모자라 대량의 석유‧석탄‧철광석‧식량 등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일본의 약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른바 ‘기아 전역(戰役)’을 전개했다.

우선 일본에 대해 대규모 어뢰 봉쇄 작전을 개시했다. 1945년 3월 27일에 시작된 이 계획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일본 근해를 봉쇄하여 배들이 주요 항구를 드나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일본과 외부의 항로를 완전차단했다.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가 일본으로 들어가지 못함에 따라 일본 내 공장들이 가동되지 못하고 국민들이 식량난에 시달리는 등 나라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 ‘기아 전역’은 일본 군국주의의 철저한 패망을 가속화 했다.

나폴레옹은 ‘군대는 위(胃)를 가지고 싸운다.’는 명언을 남겼다. 병사들의 배부름‧배고픔은 전쟁의 전체 국면을 좌우할 수 있는 요소다. 따라서 이 계략은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대단히 중요한 책략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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