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내가 아는 지식이 모두 참이라고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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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내가 아는 지식이 모두 참이라고 믿으세요?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0.12.02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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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나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제 제가 블로그에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이 필요한 사람들...’라는 글을 썼더니 불친이 단 댓글이다. 이 댓글의 핵심은 ‘법과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은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보안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보안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다. 그렇다면 ‘나쁜 제도’나 ‘나쁜 법’이라도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나쁜 법이나, 나쁜 제도라도 잘 지키기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법이란, 제도란 무엇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나누는 기준’, ‘주권자의 명령’, ‘강제규범’, ‘실정법이 곧 법’...? 법이 완전무결하다면 3심제도를 둘 이유가 무엇인가? 법이란 국민 각자의 정당한 권익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민 모두의 합의 아래 만들어진 공동약속이다. 법이 완벽하다면 왜 2000년 전 예수는 왜 “저주받으라, 법률가여. 너희는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막았다.”고 했을까?

사회제도란 ‘사회적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조직화된 관행과 절차’다. 예를 들면 가족 제도나 결혼제도, 대학 입시 제도, 군 복무 제도...와 같은 양식이 그것이요, 이러한 제도란 문화권마다 형태가 다양하다. 제도는 저절로 오늘날과 같이 가족제도, 결혼제도, 입시제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사회’...로 부단하게 이행해 왔다. 제도의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 졌을까?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었던 군주제사회가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제 사회로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각자들의 피와 땀과 희생이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국가 보안법’이란 무엇인가? 1920년대 들어 독립운동 단체가 늘어나자 일제는 단순한 집회 처벌을 넘어 조직 결성만으로 독립운동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했다. 이에 1925년 5월 좌파사상과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치안유지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란...?>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내에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일본 제국의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을 기반으로 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는 ‘반공국시 정책’에 의해 ‘미전향자에 의한 반국가적 범죄의 반복을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처벌근거를 마련하게 위해 개정. 그 후에도 제5공화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은 반공법의 유사·중복조항을 흡수·통합하여 훨씬 강화된 형량과 처벌범위의 확대. ‘6.29 선언’과 87.12 제13대 대선에서 여야 공히 국보법 개폐를 공약했지만 아직도 그대로다.

만약 오늘날, 박정희같은 대통령이 나타나 유신헌법을 만들고 주권자들을 ‘노예 취급’을 한다면..... 그런 법이라도 잘 지키는 게 민주시민일까? 아니면 저항해 유신헌법을 개선해 주권자가 주인으로서 권리를 떳떳하게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주권자로서 떳떳한 국민일까?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교육은 받은 사람은 잘못된 모습을 보면 ‘조선 놈은...’이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유신헌법을 배운 사람들 중에 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을 보면 ‘옛날 같으면...’이라는 말을 예사로 내뱉기도 한다.

규칙이나 법, 제도 원리, 법칙...에 이르기까지 절대 진리란 없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많은 물리학자들은 뉴턴 물리학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지만 이후 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의 발전은 이러한 생각이 근거 없는 것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인간의 인식 능력이란 상당히 좁은 영역에서만 발휘된다. 인간 눈의 망막은 단지 400∼700나노미터에 해당하는 빛만을 감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청각 범위는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초당 공기 압축 주기)이다. 따라서 400나노미터 이하의 빛은 자연에 존재하더라도 인간은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회과학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1929년 세계는 경제대공황이라는 경제대란을 겪는다. 그때 케인즈 학파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주장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증가하면 경제가 회복된다는 이론이었다. 

물론 케인즈 학파에 반대하는 시카고 학파는 케인지 학파가 사용한 동일한 통계자료를 가지고 케인즈 학파의 주장에 반대한다. 그들은 경제대공황은 정부의 재정지출로 벗어난 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겨우 벗어났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대공황이 지난 지 거의 100년이 되어 가지만 케인즈 학파의 주장을 지지하는 학자와 반대하는 학자로 나뉜다. 동일한 통계자료를 가지고 양쪽의 주장이 엇갈린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라...?>

1960년대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당했던 고 박노수 교수(당시 39세)와 고 김규남 민주공화당 의원(당시 43세)이 4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노수교수와 김규남의원뿐만 아니다. 건국이래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사형당한 사람은 230명이나 된다. 반공법 위반(11명)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8명)까지 합하면, 전체 사형 집행자의 27%가 사상과 양심의 문제와 관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 중 일부는 최근 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 1조에 명시한다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법전에 선언적으로 명시하고 있어도 가정이나 학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직장에서는 구시대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민주의식도 없이 전근대적인 가치관에 찌들어 있다면 민주주의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체화하는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평등을 가르치면서 학생회장 후보자격을 성적으로 제한한다면 그런 풍토에서 자란 학생들이 민주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가? 복장위반을 한 학생을 교문에서 붙잡아 벌점을 주고 지각한 학생들을 군대식 얼차려를 받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가? 학생들이 알지도 못하는 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주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민주의식이 싹틀 수 있는가?

학교뿐만 아니다. 민주시민은 가정에서는 생활 속에 체화되어야 한다. 가풍이나 가훈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이 함께 참여해 규칙이나 가정헌법을 만들어 스스로 질서와 규칙을 지키고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길러내는 가정이 얼마나 도는가? 직장에서는 상명하복 지시와 복종의 문화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직장이 얼마나 될까? 

민주적인 군대는 가능하기나 할까? 형식과 내용이 통합될 때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생확속에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잘못된 제도는 바꾸어야 하고 악법은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주권자인 국민이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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