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대선 전야’에 드러난 미국의 민낯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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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대선 전야’에 드러난 미국의 민낯 3가지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10.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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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권연구소

1. 70살 훌쩍 넘은 후보들…최고령의 행진

​올해로 75세가 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79세를 맞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역대 최고령 후보들이 대선에서 맞붙은 미국. 1776년 건국 이래 사상 최고령 대선판이 펼쳐진 미국의 앞날이 몹시도 어두워 보이는 요즘이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가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상황에서, 민주당은 샌더스와 바이든이 엎치락뒤치락 경합을 벌인 끝에 바이든을 후보로 확정지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70살을 훌쩍 넘은 가운데 ‘건강 우려’가 빠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특히 80세인 샌더스는 민주당 후보 유세 기간 동안 심장마비 발작이 있었는데,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강해 보이는 바이든이 대선 후보가 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돌아보면 지난 2016년 대선에서도 후보들의 건강 문제가 터져 나왔다. 당시 가장 논란이 됐던 건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트럼프와 힐러리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후보로 선출된 가운데 건강 이상설이 힐러리의 발목을 잡았다. 오바마 정권 시절 국무장관을 지내며 유력 대선 후보로 입지를 굳힌 클린턴은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혼절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이 위 사태를 겪었음에도 같은 위기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4년 전에도 ‘최고령 대선’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는데, 이번 대선 후보들의 평균 연령은 오히려 더 높아져 또다시 4년 전 기록을 갱신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후보를 바라보는 미 국민의 건강 염려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바이든은 서로를 겨눠 ‘치매다’ ‘뇌졸중이다’라느니 악의적인 건강경쟁(?)을 벌이며 대선을 진흙탕에 빠트리고 있을 뿐이다.

​최고령 대선 논란에서 불거지는 또 다른 핵심문제는 젊은 층의 정치참여가 배제되다시피 한 미국의 현실이다. 4년 전이나 올해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젊은 층은 문턱에도 오르지 못했다. 재력과 인맥을 훨씬 쉽게 모을 수 있는 ‘노인층’에 대선 후보군이 집중돼 있는 상황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무엇보다 성추문 등으로 젊은 층에게 비호감으로 찍힌 바이든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대선 후보가 됐다고 볼 수 없다. 만약 바이든에게 오바마 정권의 부대통령이라는 후광이 없었다면 바이든은 대선 후보가 될 수 없었으리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바이든을 경선 초기부터 유력 후보로 앞세운 민주당은 젊은 정치 신예를 발굴하고 키우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공화당이라고 해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화당 역시 트럼프의 나홀로 원맨쇼가 부각될 뿐, 젊은 정치인이 전혀 눈에 띄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동안 세계 최고 민주주의 선진국가라고 뽐내오던 미국의 꼴이 심상찮다. 특히 민주주의의 최고 축제라는 대선에서 왜 갈수록 젊은이들이 기세를 펴지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실태를 되돌아 볼 일이다.

2. 코로나 한복판에서 선거를 외치다

​10월 8일 기준 공식 집계 상 미국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 수는 777만 명, 사망자는 21만 명을 넘었다. 올 겨울에는 사망자가 최대 40만 명에 이를 것이란 비관 가득한 전망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한복판에서 대선을 치르게 된 미국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가 코로나 걸렸대! 마스크 안 쓰더니 그럴 줄 알았다.”

​세계 여기저기에서는 현직 미국 대통령마저 코로나에 감염됐다며 충격과 경악의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코로나는 독감과 같다”라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막장 행보를 펼쳐왔다. 트럼프는 앞서 9월 29일(현지시간) 열린 바이든과의 1차 티비 토론에서도 마스크를 벗고 응수하더니, 10월 1일(현지시간)에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토론에서 트럼프와 마주했던 바이든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을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런데 지난 5일, 트럼프는 완치되지 않은 상태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트럼프는 백악관 발코니에서 마스크를 벗고 지지자들에게 군대식 거수 경례로 인사까지 했다. 오죽하면 미국과 한참 떨어진 한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 ‘트럼프 주변 경호원들은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데 무슨 죄냐’라는 진심어린 걱정까지 나올 지경이다. 코로나에 감염된 국가지도자가 앞장서서 방역을 망치고 있는 괴상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오는 15일로 예정된 바이든과의 2차 티비 토론에 “참가하겠다”라며 공언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최소 10일은 격리를 해야 한다’라고 규정한 점을 보면 트럼프의 인식은 가히 상식 밖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며 공개석상에 얼굴을 들이미는 이유로는 대선이 꼽힌다. 당장 대선을 코앞에 두고 바이든과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는 등 악재가 잇따르자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 악수를 뒀다는 것.

​트럼프의 코로나 무시 행보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 6월에도 외부 유세를 추진하다가 마지못해 취소했다. 그러면서 정작 독립기념일을 앞둔 7월 3일에는 7500명이 모여든 불꽃놀이를 개최, 독립기념일 당일인 7월 4일에는 백악관에서 대규모 독립기념일 행사를 열었다. 이에 트럼프가 사실상 선거 유세를 벌였다는 지적과 함께 미국의 코로나 폭증 사태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말이 무성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코로나 확진은 예견됐다는 시선이 많다. 문제는 트럼프 한 사람만의 확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트럼프의 최측근인 선거대책본부장과 대변인 등 백악관 인사들이 코로나에 감염된 데 이어, 펜타곤(국방부)에서도 연일 줄 확진이 이어지고 있다. 대선을 앞둔 미국이 코로나를 통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상 미국의 중심이 무너진 가운데, 코로나 사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방비로 뻗어나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코로나를 믿지 않는다’, ‘코로나에 감염돼 죽으면 영광’이라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터에 나서며 코로나 감염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 11월 3일로 다가온 미 대선은 축제는커녕 코로나 환자가 지금 이상으로 폭증하는 발화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키며 ‘조용한 유세’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트럼프를 비판만 할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트럼프와 바이든, 두 사람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뾰족한 코로나 해법을 내놓기는 힘들 듯하다.

3. 대통령 후보 사망 시 아무 대책이 없다

​최고령 대선판과 현직 대통령의 코로나 감염이라는 전무후무한 나비효과 속 “후보자의 사망으로 미국 대선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라는 4년 전 대선의 경고도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특히 10월 7일 밤(현지시간) 미국 부통령 후보 간 티비 토론을 앞두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코로나에서 완치되지 않은 트럼프와 미 역사상 최고령 후보인 바이든의 최측근들이 마주하는 가운데, 트럼프 발 코로나가 바이든의 건강마저 해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다.

​실제로 AP통신은 ‘입 밖으로 내뱉기 불편한 사실’이라고 운을 뗀 뒤 “펜스 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 후보가 다음 미 행정부를 이끌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라고 꼬집었다.

​미국에서는 최고령 대선 논란, 트럼프의 코로나 감염이 겹쳐 ‘후보 교체설’까지 보도로 나오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사망을 가정하면서 대선 후보 교체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 어떤 이들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라고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트럼프는 물론 백악관과 국방부까지 코로나가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설’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관련 법안-제도가 주 별로 제각각이라, 후보 사망 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25조 1항은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는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부통령까지 사망하게 되면 대통령 승계법에 따라 2순위는 하원의장, 3순위는 국무장관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가 사망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이를 가정한 통일된 연방법-규정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가령 미시간 주에서는 대선 후보자 사망을 가정하지 않고 ‘투표용지에 올라와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한 규정만 있고, 상당수 주에서는 아예 규정조차 없다.

​위처럼 미국 언론이 최악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은 대선 전야 미국의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을 그대로 조명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 대선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분석이 판이하게 엇갈린다.

​바이든이 트럼프와의 격차를 10% 이상으로 벌리며 승기를 잡았다고 평가하는 여론조사 기관도 있는 반면,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연구소가 지난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선거인단 320명 이상을 확보해 승리하는 것으로 나와 대조를 이뤘다.

​분명한 건 누가 대통령이 돼도 극심한 혼돈을 피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트럼프 또는 바이든, 누가 당선되든 상관없이 현직 대통령의 ‘유고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세계 최선진 민주주의국가라고 자평하던 미국에서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혼란과 우려가 과연 정상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상한 미국을 맞닥뜨리고 있다. 이대로 미국이 끝없는 ‘삽질’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미국의 몰락을 바로 눈앞에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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