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이성엄폐(以聲掩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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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이성엄폐(以聲掩蔽)
  • 이정랑의 고금소통
  • 승인 2020.09.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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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행동을 숨긴다.

이정랑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중국고전 연구가

순식간에 변화하는 전쟁에서 자기의 행동을 엄폐하여 적을 속이고 작전의 돌발성을 달성함으로써, 적으로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계략이다. 이는 현명한 지휘관이라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계략이다.

817년, 당나라 장수 이소(李愬)는 채주(蔡州-지금의 하남성 여양시)를 공격했다. 이소의 부대는 눈이 내리는 밤에 70 리를 행군하여 날이 밝기 전에 채주성 밖에 도달했다. 그런데 9천여 명에 달하는 구사와 말들을 무사히 성 근처로 접근시키려면 최대한 정숙을 유지토록 해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작은 소음까지 억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수비군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상대가 방비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을 공략하기가 어려워질 판이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과 말이 소리를 내지 않고 행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소는 고심했다. 그런데 마침 성 주변에 오리 떼들이 꽤 많이 몰려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소는 즉시 묘안을 생각해 내고 병사 몇 명을 보내 몽둥이로 오리 떼를 쫓도록 했다. 오리들이 놀라 꽥꽥 소리를 질러댔고, 그 틈에 이소의 군대는 신속하게 성 아래로 접근 할 수 있었다.

1918년5월, 영‧불 연합군은 독일군의 솜므강 방어선을 돌파할 준비를 했다. 연합군 지휘관은 솜므강 서쪽 끝 남안에 꽤 큰 늪지대가 있는데 매일 저녁이면 개구리가 울어대서 주위 10리 안이 시끄러울 정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휘관은 작전 의도를 엄폐하기 위해 연합군의 모든 병력을 야간에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와글와글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는 공병대가 가교를 설치하는 소리와 그 밖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부대는 신속하게 작전 준비를 완료한 다음, 갑자기 독일군을 향해 진군해 들어가 일거에 맞은편 진지를 점령했다.

‘소리로 무엇을 감춘다’는 ‘이성엄폐’의 사례는 현대 전쟁에서 그 예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확성기 설비로 탱크 소리를 흉내 낸다거나 폭죽 소리로 기관총 소리를 대신하는 등등이 그렇다. 미래 전쟁에서는 정찰 수단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소리를 탐지하는 기술도 진보하여 ‘이성엄폐’의 운용이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새로운 ‘이성엄폐’의 방법이 창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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