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858기 사건 30주기] ⑪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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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 30주기] ⑪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 진실의 길
  • 승인 2017.10.2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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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국 신부

유엔에서 밝혀진 진실, 김현희와 김기춘, 국정원에게 드리는 요구

 

◈ 나리타 공항의 진실

문 119) 도대체 국정원이 기본적으로 신원조회조차 없이 수사를 했다니 기획 수사가 아닌가 합니다.

답) 저도 수사기록을 넘기면서 꼼꼼히 읽어봤습니다만, 비법조인의 상식선에서 봐도 수사 기록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들고, 누군가에 의해 조잡하게 꾸며낸 허구 소설로 보여집니다. 5천여쪽의 방대한 수량이 중요한게 아니라, 정작 중요한 것은 피의자에 대한 신원증명이 아닌가요?

문 120) 이제는 화제를 돌려서 국정원의 수사 발표를 보면 KAL858기 사건 범행을 위해 김현희 일행이 1987년 11월 12일에 북한 평양을 출발했다고 나옵니다. 이 출발 일정과 출국에 대하여 결정적인 거짓이 있다고 하는데 뭔가요?

답) 국정원은 김현희 일행이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KAL858테러 폭파를 위해서 1987년 11월 12일에 평양을 출국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확인하고 검토해보니 평양 출국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현희 일행은 1987년 11월 14일에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출발했습니다. 11월 12일의 북한 순안 공항 출발은 아무 근거도 없이 꾸민 것입니다.

▲김현희의 일본여권
▲위 여권의 작은 동그란 스탬프가 바로 1987년 11월 14일 도쿄 나리타 출국 소인

문 121) 평양 출국이 아니고 일본에서 출발했다고요? 기가 막힙니다. 어떤 증거가 있나요?

답) 두 군 데서 확인이 됩니다. 하나는 그들의 여권이 증거입니다. 이들 여권을 보면 1987년 11월 14일 나리타 공항 출국 스탬프와 일본 귀국카드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 공항은 해외로 출국하는 일본인들에게 귀국카드를 여권에 붙여 놓습니다. 나중에 귀국할 때는 공항 출입국 심사관은 귀국 카드를 회수합니다. 그런데 김현희 여권을 보면 11월 14일 나리타공항을 출국시에 붙여진 귀국카드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김현희가 일본으로 안가고 한국 김포공항으로 입국했으니 나리타 공항 귀국카드가 그대로 있던 것이지요. 이 사실을 2004년 5월에 KBS 일요 스페셜의 KAL858기 의혹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하치야 마유미의 귀국카드는 일본 JAL 항공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문 122) 말하자면 김현희 여권에 찍힌 스탬프에도 나리타 공항 출국으로, 심지어는 귀국카드까지 동시에 물증이 나왔으니 확실하군요.

답) 김현희 여권과 바레인 경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의 항공 노선은 1987년 11월 14일 일본 나리타 공항 출국 → 독일 프랑크푸르트 → 오스트리아 빈 → 유고 베오그라드 - 11월 28일 이라크 바그다드로 입국 합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KAL858기 여객기를 탑승했습니다.

문 123) 김현희와 김승일의 나리타 공항 출국으로 KAL858기 사건에 대한 국정원 수사결과는 전면 거짓으로 드러났네요. 이들은 대남 테러범이 아니라 무지개 공작 시나리오 따른 연기만 한 것입니까?

답) 이들의 여권으로 무지개 공작의 연기자들로 밝혀진 것입니다.

 

◈ 유엔에서 밝혀진 진실

문 124) 이 결론을 내리기 전에 또 다른 객관적 증거로서 UN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답) 1988년 2월 16일-17일에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대한항공기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합니다. 이틀간 대한항공기 사건을 의제로 채택하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됩니다.

문 125) 유엔 안보리에서 남북한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나요?

답) 대단히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고, 참가한 회원국 15개국의 대표들도 남북한 양측의 주장을 듣고 각국마다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나라는 미국뿐이었습니다. 

7개국의 나라는 한국 입장을 비판했습니다. 한국정부가 북한이 테러사건에 개입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물과 객관적 사실들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이 참가국들에게는 설득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국이 강력하게 주장한 UN 안보리의 ‘대북규탄 결의안’ 채택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문 126) 국내에서는 ‘KAL858기 사건이 북한에 의한 테러 폭파’ 라고 하여 손쉽게 처리했지만 국제무대인 UN 안보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군요.

답) 한마디로 한국 정부는 국제무대에서는 실패한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국정원의 무지개 공작이 국내에서는 언론을 동원하여 성공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무지개 공작을 실행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한국은 유엔 안보리 참가국 국가들의 설득에 실패하고 동의도 얻지 못한 상태로 대북규탄 결의안 부결이라는 쓴 맛을 본 것입니다.

문 127) 그러고 보니 무지개 공작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는 모두 실패하는 쓴 맛을 보았군요.

답) 맞습니다. 우선 바레인 경찰 수사 보고서에 김현희 일행의 1987년 11월 14일 일본 출국 사실은 국정원 수사발표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수사보고서입니다. 

바레인 경찰은 무지개 공작과 상관없이 수사를 했으니 김현희 나리타 공항 출국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다음으로 보험문제입니다. 영국 로이드 보험사가 무지개 공작을 알 리가 만무합니다. 정부와 대한항공사가 로이드 보험사와 사전에 모의하여 보험 자료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보험자료에 대해 공개를 일체 못하는 대한항공사의 처지를 알 수 있는 이유는 무지개 공작 때문입니다.

끝으로 UN안전보장 이사회의 대북규탄결의안 부결도 무지개 공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한국정부가 무지개 공작의 범위 밖에 있는 다른 국가들을 통제할 수가 없으니 사실 그 나라들은 조사를 사실 그대로 실시했기에 국정원의 수사 발표와는 전혀 다른 결과들이 도출된 것입니다.

문 128) 결국은 13대 대선을 맞이하여 국정원이 기획한 무지개 공작의 판도라가 열리면서 KAL858기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네요.

답) 국정원은 이런 사실들이 있음에도 “수사과정에서 일부 지엽적인 실수는 인정하나,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정원이 내놓은 결정적인 증거들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어 실효성이 사라졌다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사건의 핵심 본질이 바뀌었으니, 저희 수사 잘못을 인정합니다. 다시 재조사합시다.”

이게 국가기관으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닌가요? 이것이 30년동안 진실을 애타게 찾는 KAL858기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 김현희와 김기춘

문 129) 김현희를 지켜준 남자로 여러 사람이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박철언, 정형근, 최병렬, 김기춘이 대표적입니다. 도대체 김기춘과 김현희는 어떤 관계인가요?

답) 우선 김현희 재판에 대한 법률적 검토는 저희 대책위의 변호사님들이 별도로 하게 되니, 저는 간단한 법률적 검토와 김기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김현희는 국정원의 수사발표 이후 불구속 상태에서 1년 3개월 지나서야 기소됩니다. 1989년 3월 7일에 1차 공판이 진행됩니다. 

김현희가 불구속 기소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니 대한민국 사법부가 피고인 김현희 앞에서는 올스톱 되었습니다. 김현희는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그 뒤 1년 1개월 만에 노태우에게 특별 사면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됩니다.

재판을 받는 동안에 이명박이 다니던 소망교회 예배도 참석하고, 대형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간증도 하며 마음껏 자유를 향유하며 지냅니다. 

국정원이 이 모든 스케줄 관리를 도맡아 김현희를 위한 정보기관으로 혼신을 다해 보살핍니다. 기가 찹니다.

김기춘은 김현희 재판 당시 검찰총장이었습니다. 당시 김현희 수사를 지휘하고 사면까지 맡았던 인물입니다. 

115명을 테러 살해한 김현희에게 한국 검찰과 법원이 불구속 기소와 사면을 해주었다니 납득이 됩니까?

한나라당 의원 시절, 김기춘은 2005년 2월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현희가 저 세상 사람도 아니고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무슨 의혹이 있게나?”라고 하면서 “이미 편안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불러서 아픔을 주고, 공개하는 것은 김현희에 대한 인권침해” 라고 주장했습니다.

문 130) 피해자 가족들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던 정권의 실세가 김현희 인권은 갸륵할 정도로 보호해주니 가증스럽네요.

답) 전두환 정권에서 김기춘과 정형근 같은 공안 검사 또는 안기부 공안 수사팀이 주로 뭘 했습니까?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었잖아요. 

그러면 KAL858기 사건을 이들이 수사를 담당했으니 무슨 사건으로 만들었을까요? 간첩 조작 사건의 주역들이 KAL858기 사건을 맡았다면 과연 어떤 사건으로 둔갑되었을까요? 쉽게 상상이 되지요?

문 131) 현재 국정원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저지른 추악한 범죄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연관시켜보니 과거부터 계속 해오던 나쁜 버릇이었네요.

답)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저지른 범죄가 저 정도라면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정권에서는 어떠했을까요?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겠죠. 전두환 정권때에 국정원은 최고 권력 기관이었습니다.

KAL858기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입니다. 이 시기는 전두환이가 살아보겠다며 최악의 발악을 한 시점이 아닌가요? 전두환이가 청와대에 앉아서 13대 대선을 가만히 지켜만 봤을까요? 

1987년 12월 대선 결과에 따라 1980년 5.18 광주 학살 만행과 7년간의 악행에 대한 책임과 처벌이 전두환이 목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전두환은 1987년 6.10 항쟁과 6,29 사기극을 펼치면서 자신이 살아날 구멍을 다각적으로 모색했을 것입니다. 극비 작전이 필요했겠지요. 말하자면 초특급 대형 북풍 사건이 필요했겠지요.

7년간의 집권 내내 가장 충복이며 수족이었던 국정원(안기부)을 이용하여 대선 성공 극비 프로젝트를 준비 안했겠어요? 지난번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처럼 말입니다. 

대통령 박근혜를 만들어야 이명박의 추악한 범죄가 감출 수 있지 않겠어요. 전두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정원이 기획한 KAL858기 사건의 ‘무지개 공작’ 은 전두환 구출작전입니다. 무지개 공작 안에 이 사건의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이제라도 국정원은 이 사건의 진실을 국민 앞에 떳떳이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은 존폐 위기에 몰립니다.

 

◈ 국정원에게 드리는 요구

문 132) 사건 발생 30주기를 맞이하여 국정원에 요구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답) 먼저 국정원은 무지개 공작 총 5쪽의 전문을 공개해야 합니다. 10년 전에 현재 2쪽 짜리 일부만 공개를 했는데, 왜 전문을 공개 못하는가요? 

자료를 감추고 은폐하는 일은 국정원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혹과 불신만 키웁니다. 빨리 공개하기를 촉구합니다.

두 번째로 국정원은 피해자 가족회와 대책위와 만나 진지하게 공개 토론회를 해야 합니다. 가족들과 진상규명 대책위는 국정원의 수사기록을 분석한 결과 수많은 허위사실들을 밝혀냈고, 김현희 물증들이 가짜임을 밝혀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질문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줘야 합니다.

피해자 가족은 30년이 되도록 국정원과 단 한 번도 진지한 대화를 하지 못했고, 인권침해에 대한 사과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최근에 국정원 TF를 만들어 개혁하겠다고 나오지만 국정원이 과거 정권에서 저지른 대형사건을 부담스럽다고 외면하고 넘어간다면 국정원의 신뢰는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국정원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자세로 뼈를 깎는 아픔이 있다해도 KAL858기 사건은 진정성 있게 풀어내야 합니다. 국정원가 가족들이 만나 진실의 바탕 위에서 화해를 할 때가 왔습니다.

지난 2007년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가 이 사건의 결과를 발표했지만 피해자 가족회가 결과 발표를 수용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김현희 면담을 단 한차례도 하지 않고 무슨 조사를 했다는 것인지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1990년도, 김현희 사면 당시에, 정부는 KAL858기 사건의 유일한 역사적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 특별 사면을 단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김현희는 사면의 목적과 이유에 따라 역사적 증인이며 공인으로서 혜택 받은 자로서 책임을 져야 자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원칙과 기준도 없이 무조건 김현희의 사생활과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비호하면서, 김현희를 숨기기에 바쁩니다. 

역사의 증인으로 삼겠다며 사법적 특혜를 주었다면 역사와 국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증언대에 올라와서 증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사면받은 자의 의무 아닙니까? 왜 숨어다닙니까? 

왜 공개 석상에 나와서 자신의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까? 국정원은 이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서 김현희와 가족들과의 공개 면담을 성사시켜주기를 요구합니다.

▲KAL 858기 가족회가 지난 2006년 1월 17일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오른쪽 끝이 필자.

이 사건은 115명의 피해자 가족들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국민 모두가 겪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국민 모두를 속였고, 국민들은 속아 넘어갔습니다. 

때문에 국민을 속인 정부는 진실을 밝힘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져야하고, 앞으로는 국민들을 속이지 않는 국가로서 거듭 나야 합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자신들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어느 국민도 이런 아픔과 불행한 일을 겪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30년간 진상규명 활동을 펼쳐온 것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집니다. 누가 생명을 함부로 다루었는가?

전두환, 국정원, 김현희는 이젠 답해야 합니다. <끝>

 

[KAL858기 사건 30주기] ①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②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③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④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⑤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⑥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⑦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⑧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⑨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KAL858기 사건 30주기] ⑩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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