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수상개화(樹上開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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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수상개화(樹上開花)
  • 이정랑의 고금소통
  • 승인 2020.08.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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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

『36계』의 「제29계」를 보면 “국면을 잘 이용하여 세력을 포진하면 힘이 적더라도 기세가 대단해 보일 수 있다.”는 풀이가 있다.

이정랑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중국고전 연구가

그에 이어서 『주역』 제53쾌인 ‘점(漸)괘를 인용하여 “물새가 큰 산 위를 날면 그 날갯짓이 더 화려해 보이고 그 기상이 대범해 보인다.”고 했다. 이것이 이른바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는 뜻의 제29계 ’수상개화‘다.

요컨대 전쟁에서의 여러 국면을 이용하여 유리한 진지에 포진하면, 병력이 약하더라도 진용이 강대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면 적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이로써 적을 압도할 수가 있다. 뛰어난 전략가들은 불리한 형세에서 전기를 기다리거나 창조하기 위해 흔히 이 계책을 사용하여 적을 흔들어놓곤 한다.

‘수상개화’는 원래 꽃이 피지 않은 나무에 색깔 있는 비단으로 꽃송이를 만들어 붙이면 진짜 꽃과 똑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잘라보지 않는 이상,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는 의미다.

‘수상개화’는 힘이 약한 부대가 어떤 요소를 이용하여 자신의 외적 형태를 변화시켜 강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이 너무 말라서 싫다면, 셔츠 속에 두툼한 솜저고리를 입어 건장해 보이도록 만들고, 당신이 너무 작다면, 한 자 높이의 나무 막대를 발에 묶고 걸어 다녀서 키가 커 보이게 할 수 있다. 이 계책을 원시적으로 응용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결코 사물의 본질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종종 사물의 겉모습을 보고 미혹되기 때문에 일시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 계책을 군사 상에 사용하면 이러하다. 자신의 힘이 비교적 약하면, 우군의 세력을 빌리거나 혹은 다른 어떤 요소를 빌려 자신의 힘을 강하게 만든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자신을 호랑이로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원리이다.

유비(劉備)는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때 힘이 아주 약해서 주로 도원결의(桃園結義)한 형제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에게 많이 의지했다. 초기에 유비는 조조(曹操)와 여러 차례, 싸웠으나 항상 지기만 했다. 유표(劉表)가 죽은 후, 유비는 형주에서 외롭고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성안에는 지휘할 만큼의 병력도 없었다.

유비가 이처럼 가련한 상황에 있을 때,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아주 기세등등하게 완성(宛城)에 도착했다. 유비는 황급히 형주의 군민들을 이끌고 후퇴했다. 마침내 조조의 군대가 당양성(當陽城)까지 추격해 왔고, 조조와 유비는 장판파(長板坡)에서,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유비는 크게 패했고, 아내와 자식도 혼란한 와중에 뿔뿔이 흩어졌다.

장비와 유비는 계속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장비는 유비에게 있어서 정말 좋은 동생으로 항상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지쳐서 괴로워하는 유비의 철수를 돕기 위해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었다.

유비에게는 기병 20~30명 정도의 병력밖에 없었고, 장비는 열심히 싸우면서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상개화’의 계책을 생각해 냈다. 장비는 자신이 이끄는 기병 22명에게 모두 숲으로 들어가 나뭇가지를 잘라 말의 꼬리에 묶게 했다. 병사들이 채찍질까지 해대자 말들은 숲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광분했다.

장비는 혼자서 검은 말을 타고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손에 쥔 채, 장판교에 올라 섰다. 추격병들이 쫓아오다가 장비 혼자서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검은 말을 타고 뒤로는 석양을 등지고 있는 장비의 모습은 위풍당당하여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다.

또 숲속에서 먼지가 잔뜩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 속에는 분명 복병들이 숨어있을 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의 군사들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주춤거렸고 장비는 적은 수의 기병을 데리고 추격해 오던 조조의 병사들을 제지하면서 유비와 형주의 군민들이 순조롭게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것이 바로 ‘수상개화’의 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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