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실즉허지(實則虛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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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실즉허지(實則虛之)
  • 이정랑의 고전탐구
  • 승인 2020.07.2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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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한 것을 허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명나라 때의 『초려경략‧권6』 「허실 虛實」에는 “튼튼하지만, 허점이 있는 것처럼 하고 나의 튼튼함으로 저쪽의 허점을 공격하면 파죽지세다”라는 대목이 있다. 본래 역량이 강대하지만 허약함을 위장하여 상대방을 마비시킨 다음 틈을 타서 적을 물리친다.

이는 내 쪽이 적보다 우세하고 주동적인 지위에 있을 때 적을 유인하는 모략이다. 실제 운용에서는 여러 가지 표현 형식이 있다. 함정은 없지만 고의로 파탄을 보이거나 허점을 보여 적이 걸려들게 한다. 특히 교만한 적이 성급하게 싸움을 서두를 때, 이 ‘시형법’은 더 확실하게 활용될 수 있다.

손빈(孫臏)이 취사용 가마솥을 줄여가며 방연(龐涓)을 속인 것이나, 백기(白起)가 약점을 보여 조괄(趙括)을 유인한 것 등이 이 계략의 성공적인 본보기다.

1944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기 전에 낙하산 투하 작전을 펼쳤다. 이 군사 행위를 엄호하기 위해 연합군은 낙하 예정지의, 양옆 지역에 음양 장치와 실탄 발사 모형 장치를 지닌 가짜 낙하산병을 몇 차례 투하했다. 이 가짜 낙하산병들이 지면에 접근할 때면 진짜 전투를 벌이는 듯한 음향이 터져 나와 독일군이 낙하지를 포위하도록 유인했다.

이렇게 몇 번에 걸쳐 독일군을 허탕 치게 하면서 독일군의 기동력을 크게 마비시켜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연합군은 진짜 낙하산 부대를 투하했다. 독일군은 이번에도 가짜 낙하산 부대인 줄 알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연합군 낙하산 부대는 힘 하나들이지 않고 목표 지점에 투입될 수 있었다.

현대 전쟁에서 공방전을 벌이는 쌍방은 군대의 최대 활동력은 보장하기 위해 진짜와 가짜를 결합하고 허와 실을 아우르는 수법을 사용하여 적의 의심과 오판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방어하는 쪽에서는 진짜 공사와 가짜 공사를 섞어놓거나 진짜 진지와 가짜 진지를 번갈아 지키거나 가짜 부서와 진짜 부서를 바꾸거나 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공격하는 쪽에서는 진짜 진지와 가짜 진지, 진짜 유도탄과 가짜 유도탄, 진짜 폭격기와 가짜 폭격기 등 허실을 병용하거나 교대로 출전시키는 방법을 채용한다.

1941년 11월 초, 영국 제 8군단은 시리아와 이집트 변경에 설치된 독일군 방어선을 향해 진군했다. 이를 위해 영국군은 광활한 사막에 대형 철도 종착역을 건설하여 대량의 전쟁 보급품을 저장‧운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독일군을 현혹하여 이 기차역에 대한 독일군의 폭격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영국군 총사령부는 이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밀리에 가짜 보급 기지를 만들어놓고, 아울러 진짜 종착역과 가까운 보급 기지 사이에 정상적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가짜 철로를 놓았다. 그리고 철도 위에 기차‧석탄차‧유조차 등을 설치했다.

이 차량들은 수시로 차례를 바꾸어가며 분주하게 물자를 운반하고 군대를 이동시키는 모습을 연출했다. 기지의 공터에는 대량의 트럭‧장갑차‧탱크와 기타 보급품을 쌓아놓았다. 이 전쟁 물자들을 수시로 위치를 바꾸어 바쁘게 화물을 운반하고 교체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기지 내에 있는 차량과 작전에 필요한 물자들은 모두 가짜였고, 기차도 모형이었다. 모형 기차의 연통에서는 밤낮 없이 연기와 불길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영국군은 트럭 수송 부대가 끊임없이 가짜 기지 안을 왕래하도록 안배했다.

가짜 기지의 주위에는 몇 대의 높은 포루를 배치하여 사실감을 높였다. 이것은 독일 정찰기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저지함으로써 가짜 기지의 실체가 탄로 나는 것을 막자는 의도에서였다. 마침내 독일군은 영국군이 시행한 ‘실즉허지’의 현혹술수에 걸려들었다.

가짜 기지는 대량의 독일 폭격기를 견제하여 종착역의 안전을 엄호했을 뿐 아니라, 영국군에 대한 독일군의 작전 행동에 착오를 일으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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