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상 이야기] 5월 광주, 40주년을 맞는 날에
상태바
[권종상 이야기] 5월 광주, 40주년을 맞는 날에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0.05.18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마 올해는 광주 민주화항쟁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 만큼 행사도 작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폭력과 어둠의 역사가 벌써 40년 전 이야기라니.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80년 5월의 저는 당시엔 세로쓰기 신문에 적혀 나오는 이해 못 할 기사들과, 그 당시 폭도들에 대해 보도하던 방송사들, 그리고 무엇보다 수군수군 목소리를 낮춰 뭔가 이야기를 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권종상 우정공무원(우체부, 시에틀에서)
권종상 우정공무원(우체부, 시에틀에서)

1986년, 학력고사를 마치고 나서 모든 게 다 그냥 널럴하던 때, 지금은 구세군 서울교회가 된 서대문 영문 지하실로 선배들이 저를 데리고 갑니다. 거기에서 저는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접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그 당시 여기저기 복제돼 돌아다녔을 광주 항쟁의 영상을 접하게 됐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맞는 충격, 그리고 나서 제 삶은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어딘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87년 항쟁을 맞았더랬습니다. 재수생의 신분으로 시위에 쫓아가고 종로 5가 CBS 건물에 세 들어 있던 EYC, 그리고 다른 운동단체 선배들로부터 가끔씩 피세일에 쓸 유인물을 전달하라는 지령(?)을 받고 가방에 담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전단지를 직접 시민들에게 뿌리는 일도 하고 했었습니다. 광주는 그때 이미 제 마음의 빚이 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합수 윤한봉 선배를 만나게 된 것은 이렇게 만들어 냈던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이란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청년연합을 만나게 되고, 그 선배들을 만나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로만 듣던 윤한봉이란 이를 만나게 됐지요. 그의 해박함과 논리정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날카로운 정세분석은 저로 하여금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지금과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제 모습은 그때부터 조금 더 자세한 꼴을 갖추고 형성됐겠지요.

우리 역사는 오월 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지요. 지금껏 그 역사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몇몇 정권을 거쳐 오면서 오월 광주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고, 지금까지 숨겨져 왔던 광주의 진실을 꺼내기 위해 애쓰지만 아직도 그 진상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고, 그날 발포명령을 내렸을 그 자는 아직도 뻔뻔하게 단죄받지 않은 채 살아 있습니다.

대통령이 오월의 진상을 꼭 밝혀야 한다고 했지요. 저는 이것이 우리 역사의 과오를 바로잡고 광주에 진 역사적 부채를 청산할 가장 중요한 단초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 그 광주가 아직도 이렇게 애매한 상태로 놓여 있다는 것은 우리의 부끄러움일 수 밖에 없습니다. 40년, 이제 그 역사를 바로잡을 때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 때문에 올해는 광주에 모여 큰 행사를 치르진 못하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10년 후, 5.18 광주 반세기가 지났을 때엔 우리는 광주의 진실을 모두 밝혀내고 이것에 관한 역사적 단죄와 사죄가 모두 이뤄진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21대 국회에서 독일의 나치 관련 처벌법처럼 광주를 모독하는 이들은 응분의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 법적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광주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이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진정한 ‘진혼’이 되겠지요.

시애틀에서…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