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⑥] UDT 예비역 이헌규씨가 만난 뜻밖의 진실 -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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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⑥] UDT 예비역 이헌규씨가 만난 뜻밖의 진실 - ‘잠수함’
  • 천안함의 진실 - 신상철
  • 승인 2017.06.07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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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로 기동력 상실 후 항해중인 잠수함과 충돌한 해난교통사고

천안함 재판이 7년을 끌어오면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다보니 중요한 사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진실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금년들어 항소심 재판을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그 동안 놓친 것은 없는지 하나씩 찬찬히 되짚어보는 가운데 놀라운 사실들을 새로이 발견하게 됩니다.

2015년 6월 22일 천안함 제38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UDT예비역 동지회원 이헌규씨는 처음부터 중요증인이라 판단되었기에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증인출석을 요구하였습니다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수신을 거부하는 바람에 증인신문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재판부의 강력한 소환요구로 2015년 6월에야 증인신문이 가능하였던 분입니다.

그 분은 단 한 번, 불과 2~30분 밖에 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군에서 단 한 번 밖에 허용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 그 분은 수중에서 천안함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줄 '뜻밖의 진실' 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 분이 그 사실을 인정하든 않든 상관없이 그 분이 증언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진실의 실체' 이기 때문입니다.

◈ UDT 예비역 동지회원들의 백령도 활동상황

UDT 예비역 동지회원은 두 번에 걸쳐 백령도를 방문합니다. 한주호 준위가 사망하기 직전 천안함 수색과 인양을 지원하기 위해 백령도에 처음 입도하여 함께 작업을 하던 중 한 준위가 사고를 당하자 전원 철수하였으나, 몇 일 후 다시 백령도를 다시 방문하여 수색지원과 함께 한 준위 추모제를 지냅니다.

특히 한 준위가 사고 직전 작업하였던 곳에서 한 준위의 안내에 따라 수중 대형구조물에 접근하여 UDT 예비역 가운데 유일하게 내부에 진입한 잠수요원이었던 이헌규씨는 한주호 준위와 UDT 동기였기에 충격과 슬픔이 더욱 깊었을 것입니다. 그는 1,2차 백령도 방문에 모두 참여하게 됩니다.

한주호 준위가 사고를 당한 이틀 후인 2010년 4월1일, 특별취재단을 꾸려 백령도에 급파된 후 한 준위 사고관련 집중취재를 하였던 KBS 황현택 기자가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UDT 대원들의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 3월 29일 주야간으로 백령도에 도착한 예비역 UDT 동지회원은 이헌규씨를 포함하여 모두 12명이며 이 분들은 그 다음날인 3월 30일 한주호 준위가 속해 있는 권영대 중령팀과 조우하여 지휘를 받게 됩니다.

◈ UDT 예비역 동지회원들이 백령도에 간 배경

대형 초계함이 반토막 나고 해저에 가라앉자 군에서는 EOD(폭발물처리반),SSU(해난구조대) 그리고 UDT(수중폭파대)를 현장에 급파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미 제대하여 사회생할 중인 예비역 잠수전문가들이 모여 급하게 팀을 짜서 한 걸음에 백령도 사고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구나 그 분들 대부분 현역시절 익힌 잠수와 수중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현장에서 잠수와 인양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어 그 기량이 현역보다 한 수 위라는 점에서 혹시 군 당국에서 예비역 UDT 단체에 지원해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확인해보니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군 당국이 그 분들을 달갑지않게 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아니라 UDT 예비역 동지회원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필요없다" 며 마뜩치않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예비역 UDT 동지회원들은 어떤 이유와 경로로 백령도에 가게 되었던 것일까요?

UDT 예비역 이헌규씨는 법정에서 백령도에 가게 된 배경에 대해 "군에서 협조요청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 라며 "유가족(실종자가족) 쪽에서 '군을 못 믿겠다. 도와줄 수 있느냐' 는 요청을 받고 갔다" 고 증언하였습니다.

유가족(실종자가족)분들이 "군을 믿지 못하겠다" 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안함이 침몰하고 이틀이 지났는데도 인명구조 소식은 커녕 연안바다에서 길이가 40m나 되는 거대구조물(함수.함미)을 찾지도 못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 가족 입장에서는 아연실색 애가 타고 한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부탁과 요첨을 받은 예비역 UDT 동지회원분들이 백령도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헌규씨는 처음으로 한주호 준위를 만나게 됩니다.

◈ 현장에서 한 준위를 처음 만난 이헌규 UDT 동지회원

이헌규씨는 한 준위와 UDT 동기였지만 사전에 서로 연락하지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정보조차도 없이 그날 현장에서 처음 만납니다.

현역인 한주호 준위와 예비역이지만 한 준위와 동기인 이헌규씨가 함께 작업을 하였다는 사실이 마치 서로 협조적 체계가 돈독했던 것처럼 읽혀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예비역 UDT 동지회원, 단 한 번만 물에 들어갔다

예비역 UDT 동지회 1진 12명이 29일 백령도에 도착하였지만 아무도 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함수, 함미는 그 전날인 28일 모두 찾았는데 말이지요. 결국 30일 오전이 되어서야 겨우 물에 들어가게 되는데, 12명 가운데 이헌규, 김진오 두 분만 허락을 받아 2~30여분간 잠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이헌규씨가 "한 타임만 물에 들어가보자" 고 요청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유가족 요청으로 들어왔던 UDT 예비역 동지회원 대부분은 산소통 한 번 등에 짊어지지도 못하고 "어선 사고나는 바람에 유가족이 원치 않으니 철수하라."는 말을 듣고 모두 인천으로 복귀해야만 했습니다.

◈ 한 준위, "연돌 쪽은 어뢰맞아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

당시 현장에 UDT대대장 권영대 중령 지휘하에 UDT베테랑으로 소문난 한주호 준위가 직접 산소통을 메고 잠수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작업이 그만큼 '중요한 작업' 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임에도 현업에서 잠수와 관련 일을 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배척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종자가족 요청으로 온 UDT 동지회원들이 부담스러웠을까요?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보입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당시의 작업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한 '극비의 보안' 이 요구되는 작업이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그렇게 추정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주호 준위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이헌규씨에게 가이드(Guide)하는 발언 속에 그 단서가 있습니다. 2015년 6월 22일 이헌규씨의 법정증언을 보겠습니다.

애시당초 군은 예비역 UDT의 도움이 마뜩치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헌규씨가 요청을 하자 군은 마지못한 듯 '단 한 번' 잠수를 허락하면서 한주호 준위가 동기인 이헌규씨에게 지침을 얘기합니다. "연돌 쪽은 어뢰를 맞아서 그쪽에는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말라."

참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난 이후 한 준위의 이 발언은 천안함 사건 전체를 통털어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로 꼽히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함수에는 연돌이 없다

천안함이 반파되는 순간, 함교에 있던 당직자들은 함교 뒷부분이 떨어져나가 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합니다. 그리고 무게중심을 잃고 우현으로 쓰러져 떠있는 함수 위로 올라온 생존자들 역시 함미와 연롤이 통째로 사라진 사실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천안함의 연돌은 함미와 함께 반파지점 인근에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군의 주장대로 '함수에서 작업했다는' 한주호 준위가 "연돌은 어뢰를 맞아 위험하니 그쪽으로 가지 말라" 고 했다합니다. 한 준위는 함미쪽에서 작업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러면 한 준위가 미리 내려가 확인해서 알고 있는 그 물체, 그래서 이헌규씨에게 '연돌' 이라고 말한 그 물체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연돌처럼 생긴 곳' 을 말했던 것입니다. '연돌' 이 아니라 '연돌처럼 생긴 곳' 을 한 준위는 지목하였던 것입니다. 한 준위는 이헌규씨에게 '연돌처럼 생긴 곳'에는 들어가지 말라 요구했던 것이고, 수중의 대형구조물은 일부 연돌처럼 생긴 구조를 갖고 있는 물체라는 뜻입니다. 즉, 잠수함의 '코닝타워'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 저는 분석합니다.

(2) 어뢰를 맞았다?

한 준위가 그 발언을 한 3월30일에는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하여 어떠한 공식발표도 없었을 때입니다. 3월30일 그 날은 이명박 전대통령이 백령도로 급히 날아간 날이며, 미국무성이 공식적으로 '북한의 관련성은 없다' 고 발표한 날입니다.

심지어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4월6일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에 출석하여 "천안함 북한 관련성 단정어렵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주호 준위가 3월30일 이헌규씨에게 "연돌 쪽에 어뢰를 맞았다" 라고 발언했다면 그것은 '연돌처럼 생긴 구조물이 마치 어뢰를 맞은 것처럼 몹시 파손되어 있는 상황' 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대형구조물인 그 물체 역시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이유는 침수될만큼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고 그 중 연돌처럼 생긴 부위가 어떤 이유든 박살이 난 정황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지요.

(3) 1번 생명줄 잡고 들어갔다가 나왔다

이헌규씨는 한 준위의 요구대로 '연돌처럼 생긴 곳' 은 가지 않았고, 1번 생명줄을 타고 들어가서 둥그런 해치를 만나게 됩니다. 이헌규씨가 해치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며 본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6. '연돌'은 '연돌처럼 생긴 구조물' 즉 잠수함의 '코닝타워'

이헌규씨가 본 대형구조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잠수함입니다. 좌초로 기동력을 상실하고 표류하던 천안함과 충돌하여 천안함을 반파시키고 자신도 연돌처럼 생긴 코닝타워가 박살이 나 가라앉은 문제의 잠수함입니다. 천안함 사고 발생 후, 첫 이틀동안 천안함 함수.함미는 내팽겨 둔 채 모든 전력이 동원되어 매달렸던 작업현장이 바로 저 '대형구조물' - 잠수함입니다.

저 잠수함의 국적이 미국인지 이스라엘인지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이스라엘 국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저의 분석입니다. 여러 정황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천안함 사고 후 작전에서 사라졌다가 2년만에 수리를 마치고 복귀한 유일한 잠수함이 바로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이라는 점입니다.

디젤운항이지만 핵미사일을 탑재한 그 잠수함 역시 운항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만큼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시신수습과 주요물자 인양 그리고 수중에서 비밀리에 선체를 끌고 나가기 위해 미7함대는 무척 바쁘게 움직였으며, 한주호 준위를 비롯 우리 군 역시 그 작업에 숨가쁘게 참여하였습니다.

그것이 한 주호 준위가 사망하자 한국에서 미 대통령을 대표하는 크리스틴 주한미국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이 즉각 백령도로 날아왔던 이유이며, 한 준위 장례식 때 미군사령관이 조문하고 금일봉을 전달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한국 관공서와는 달리 미국대사관에만 조기가 걸려있었던 이유 역시 잠수함에서 희생당한 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캄캄한 밤, 좌초로 기동력을 상실한 천안함이 인근을 항해중이던 잠수함과 충돌하여 둘 다 침몰한 일련의 교통사고 - 그것이 천안함 침몰사고의 진실입니다.

한국과 미국이 그 사실들을 비밀에 붙여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애꿎은 이웃 잠수함을 끌어들여 '어뢰 한 방으로 폭침하고 도주했다' 는 시나리오는 그 황당함도 상상초월 수준이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이 '우리 해군의 자존심을 깡통수준으로 묵사발 만든 것' 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우리 해군은 아무 생각없어 보여 참으로 이해불가입니다.

반드시 천안함의 진실을 온 세상에 밝혀내겠습니다. 그래서 유사이래 적군에게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우리 해군의 자존심을, 거짓과 조작 그리고 왜곡과 은폐로 깔아뭉개 버린 '한 줌도 안되는 정치군인' 들의 씻지못할 죄악을 온 세상에 펼쳐내어 반드시 법의 심판대 위에 서도록 만들 것입니다.

<해군 예비역 중위, 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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