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타초경사(打草驚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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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타초경사(打草驚蛇)
  • 이정랑의 고전소통
  • 승인 2019.05.2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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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을 들쑤셔 뱀을 놀라게 한다.

‘타초경사’는 본래 생활 상식이었는데, 점차 정치‧군사 영역에 차용되었다.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이 편찬한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보면 오대(五代) 때 왕인유(王仁裕)가 수집한 고사가 있고,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도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당나라 때 왕노(王魯)라는 지방관이 있었다. 그는 당도(當涂-지금의 안휘성)의 현령으로 있을 때 갖은 편법으로 재산을 긁어모았다. 관가의 말단부터 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뒷구멍으로 뇌물을 받고 공갈을 치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 당연히 백성들의 원망 소리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어느 날 왕노는 관가에 들어온 각종 민원서류를 검토하다가, 자기 밑의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자를 고발하는 서류를 발견했다. 연명으로 올린 고발장에는 사리사욕을 채우려 갖은 불법을 저지른 위법 사실이 여러 증거들과 함께 조목조목 밝혀져 있었다.

그 일들은 사실 왕노와도 관계가 있었다. 추궁해 들어간다면 그 대부분이 자신과 직접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질 판이었다. 왕노는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재미없군. 앞으로 조심해야지. 다행이 이것이 내 손에 들어왔기 망정이지!’ 그는 다 읽고 난 다음 즉시 다음 여덟 자로 사주 풀이를 했다고 한다.

여수타초(汝雖打草), 아이사경(我已蛇驚).

네가 풀밭을 들쑤셔보지만, 나는 뱀이 몸을 숨기듯 이미 갖추었노라.

‘타초경사’가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 가운데 정적과 투쟁하는 과정보다 더한 곳은 없다. 미묘한 정치수완으로 정적을 자극하여 정적이 놀라고 불안해 할 때 그 정치적 의도를 폭로하는 것이다.

적은 아주 음험하기 때문에 아군의 척후병이 적의 실정을 분명하게 알아낸 상황이 아니라면 섣불리 출병해선 안 된다. 게다가 행군 중에 길가에 풀이나 나무숲이 있다면, 그 안에 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움푹 파인 웅덩이가 있을 때, 그 안에도 적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 길가에 눈사람들이 있을 때도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만약 아름다운 여인들이 수작을 걸어오면, 적이 파견한 첩자일지도 모르니 또한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행군을 하기 전에 도로 상황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수많은 적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풀밭을 들쑤셔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의 ‘타초경사‘는 두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숨어 있는 적에 대해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적이 우리의 의도를 알아채고 먼저 행동을 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리 선봉대를 파견해서 풀이 무성한 곳을 모조리 수색하도록 해야 한다. 풀숲에서 적이 나오면 우리가 뒤에서 선봉대를 바짝 뒤따라가면서 신속하게 그들을 포위해 섬멸하면 된다. 

만일 풀 속에 적이 없어서 헛수고를 했다고 판단한다면 당신은 뛰어난 지휘관이 아니다. 대군은 출정할 때 항상 ‘만일의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차단하는 것은 ‘타초경사’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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