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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중지즉략(重地則掠)

적지에 깊숙이 들어가면 약탈을 한다. 이 말은 ‘손자병법’ ‘구지편(九地篇)’에 나온다.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적지에 깊이 들어가 성과 고을을 많이 등지게 된 것을 중지(重地)라 한다. 중지에서는 우리 쪽 식량이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적지 깊숙이 들어가 작전할 때는 많은 성읍을 등지게 되는데, 이것을 중지의 전투라 한다. 칼이나 창과 같은 냉병기로 전투하던 시대에는 하루라도 식량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 군에 양식이 없으면 곧 패배한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 병사들의 도망이 문제가 아니라 식량 조달이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된다. 그래서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적지에 들어가 싸우는 자의 작전법은 되도록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중지에서는 군사들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침입당한 상대가 이기지 못한다. (원정군은) 적의 풍요로운 들에서 양식을 약탈하여 군의 식량으로 충당한다.

오나라 왕 합려가 중지에서의 작전에 관해 손자에게 질문한 내용이 있다.(청나라 손성연 孫星衍 등이 교정한 ‘손자십가주서록(孫子十家注敍錄)’.)

오왕 : 내가 군사를 이끌고 중지로 깊숙이 들어가 많은 곳을 거치는 바람에 식량 보급로가 끊겼는데, 형세가 여의치 않아 적으로부터 양식을 얻으면서 군사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손자 : 무릇 중지에서 싸우게 되면 병사들이 날래고 용감해집니다. 군량보급로가 끊어지면 약탈로 공급해야 합니다. 부하에게 식량이나 옷가지 따위를 약탈해서 상관에게 바치게 해야 하는데, 많이 가져오는 자에게 상을 주면 병사들은 도망 갈 마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만약 중지에서 돌아 나오려면 경계와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깊은 도랑을 파고 높은 보루를 쌓아 적에게 장기전에 돌입하려 한다는 태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적이 길을 트려는 것으로 의심하여 요충이 되는 길을 폐쇄하면, 가벼운 수레만을 끌고 몰래 조용히 움직이고 소와 말을 식량으로 삼습니다. 적이 뛰쳐나와 북을 울리고 뒤따라오면 군사를 매복시켜 두었다가 때를 맞추어 안과 밖에서 함께 공격하면 적의 패배는 뻔합니다.

이 대화에서 손자는 중지에서의 작전으로 적지의 식량을 약탈하는 ‘인량우적(因糧于敵)’이라는 책략을 강조한다. 군대가 적지에 있으면 어차피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식량을 징발하면’ 백성들이 반발할 것이다. 따라서 강제 징발이나 약탈 행위가 낯선 것은 아니었다. 옛날 장수들은 이 조항을 실전에 적용했다.

현대에 와서 다른 나라 깊숙이 들어가 작전하는 군대가 적지로부터 식량을 얻고 중지에서 약탈하는 것은 흔히 사용하는 책략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정치적 요소나 군사적 요소의 작용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징발은 피하고 공평하게 징수해야 한다. 아울러 식량을 징발할 때도 국민의 생활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약탈이나 강제 징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정랑의 고전소통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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