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구 칼럼] 북미정상회담에서 보인 미국의 외교적 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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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칼럼] 북미정상회담에서 보인 미국의 외교적 무례
  •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03.2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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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회담을 하고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핵보유국끼리 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2차 북미정상회담 전후로 미국의 태도를 보면 굉장히 우려스럽다. 미국이 오만방자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망가뜨리고 있다.

 

시작부터 무례, 심상치 않았던 2차 북미정상회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당동역에 도착해 자동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에 백악관 출입 기자단들의 프레스센터가 차려져 있었다.

언론들은 당연히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백악관 기자단의 프레스센터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북미 사이에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를 몰랐을 리 없기 때문에 이는 북한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났을 때, 그리고 북미 확대회담 직전에 기자들 앞에서 발언을 했다. 그런데 북미 정상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북한과 미국 당국이 “이제부터 기자들의 질문을 받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돌발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기자들은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할 생각이 있느냐”는 무례한 질문을 했다. 심지어는 “비핵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어떤 비핵화 조치를 할 것인지는 북미가 바로 그 순간 담판을 벌이고 있는 안건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애초에 답변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정상회담은 사전에 의전을 모두 조율한다. 특히, 북미 당국은 북미정상회담은 친선과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담판장이다. 회담에 영향을 줄만한 것은 모두 세심하게 조율했을 것이다.

기자들이 합의되지 않은 즉석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낸 것은 미국이 사전에 기획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어보려고 미국이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이다.

 

조율된 합의문을 당일에 깨뜨린다?

미국의 무례한 태도는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깨뜨린 것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트럼프는 2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실제 합의문도 마련됐었”지만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3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미사일,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한 비핵화 빅딜을 제안하는 한글·영문 문서 2개를 건냈”지만 북한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북미 당국은 2차 정상회담을 위해 스웨덴, 평양, 베트남에서 실무회담을 갖고 의견을 조율해 합의문을 작성했다. 미국은 진지한 논의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한 합의문 안을 뒤집고 새로운 제안을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이다.

미국은 외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였다. 이래서야 사전 실무회담이 무슨 소용이었단 말인가. 실무회담과 정상회담에서 하는 말이 다르니 미국을 어떻게 믿고 협상을 할 수 있겠나.

최선희 부상은 3월 15일 회담장에서 즉석 제안을 내놓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이 “적대적이고 불신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새로운 제안을 불현듯 내놓고서 적대적인 태도로 타협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 결국 합의문 도출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의도적으로 무산시킨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은 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매우 중요한 회담이다. 미국은 이런 중요한 회담을 외교 규범에 어긋난 행동으로 무산시킨 것은 매우 엄중한 잘못이다.

 

하지 않겠다던 리비아식 해법 다시 꺼낸 미국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연일 ‘빅딜’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은 3월 11일 “미국은 점진적인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면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비건은 2차 북미정상회담 전인 1월 31일에 한 강연에서 “새로운 관계로의 전환”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가 병행하는 것이라며 동시 발전과 단계적 해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우리는 무역관계, 외교관계도 없이 사실상 직접소통 할 능력도 없다.”라며 외교관계를 맺고 제재 해제 혹은 완화로 무역관계를 수립해야 ‘소통할 능력’이 생긴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1달 만에 입장이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미국도 상응조치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소위 ‘리비아식 해법’이다. 리비아는 핵포기 직후 서구 나라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듯했으나 결국 서구 국가들은 리비아를 공습했고 카다피는 살해당했다.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5월 16일 “리비아식 모델이 우리가 사용하는 모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2월 27일 “북한과의 관계에서 리비아식 해법은 더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브리핑하기도 했다. 미국이 리비아식 해법을 들고 나오는 것은 북한과 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회담 결과도 왜곡하는 미국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이 끝나자 거짓말을 하며 회담 내용을 왜곡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북 제재를 모두 해제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용호 외무상은 제재를 일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며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북한의 주장이 거짓이라며 진실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의 AP통신은 3월 2일 북한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고위 관계자는 10년 또는 이 이상이 지난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며 “군수 관련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미 국무부 산하 미국의 소리 방송은 “‘일부’가 맞습니다.”라고 보도했다. 다만,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일부’라는 표현이 틀렸다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북한의 주장이 옳다는 소리다. 미국은 ‘일부 해제’가 마치 ‘전면 해제’와도 같다며 어린애같이 생떼를 부린 것이다.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정상적인 외교를 하고 있지 않다. 북한에 시비를 걸며 회담을 깨려고 안달 난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으면 안하무인하고 무례한 태도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최선희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곧 모종의 결심을 명백히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결심을 내릴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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