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미리 보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비건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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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미리 보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비건을 주목하라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02.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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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역사적 명장면이 나올까. 온 세계가 마음을 졸이며 2월 27일-28일로 다가온 2차 북미정상회담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대다수 언론이 보도하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미 국무부의 대북정책협상특별대표 스티븐 비건의 움직임이 북미회담의 결과를 예측하게 해주는 중요한 실마리다. 우선 왜 비건을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굴러들어온 국무부의 신참, 비건

지난 2018년 8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스티븐 비건을 대북정책협상특별대표로 임명했다며 불쑥 소개했다.

국무부는 “비건은 특별대표로 국무장관을 대신하여 미국의 모든 대북 정책을 지시하고 협상을 이끌며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와 외교적 노력을 주도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비건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중량감도 떨어지는 인물이다. 비록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예산배정,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이어진 북미 간 제네바협정 등에 관여한 바 있고, 상·하원 외교위원회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머무른 바 있다지만 고위급은 아니었다.

비건의 경력을 보면 차라리 외교보다는 경제에 어울린다. 그는 특별대표를 맡기 직전까지 포드 자동차에서 14년 동안 국제부문 부회장을 맡은 잔뼈가 굵은 기업인이다. 게다가 주요업무는 러시아 담당이었다. 이쯤 되면 대북정책과는 별 관련 없고 정계에서도 은퇴한 ‘순도 100% 기업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도 “(비건의) 대북 경험이 적다”는 의아함이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비건은 포드차에서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며 “전 세계에 걸쳐 협상을 해왔고 이번 (대북협상) 업무에도 기술과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도 “거친 협상 환경에도 폭넓은 경력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며 ‘부적합 논란’에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비건은 6개월 동안이나 빈자리였던 조셉 윤 전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뒤를 이었다. 트럼프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수행할 적임자를 찾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음(또는 신중을 기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후속회담을 위한 평양행을 목전에 두고 비건을 공개적으로 데뷔시킨 것이다.

일반적인 외교의 방식을 생각해보면 비건의 임무는 대북정책에 꾸준히 관여해온 국무부 내부 인사가 맡아야 타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만큼 그를 뒷받침하는 ‘검증된’ 인사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서 비건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군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결국 대북강경파로 분류되며 6자회담의 ‘판’을 깬 전력이 있는 존 볼턴이 앉았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중시하는 트럼프와 달리 볼턴은 “군사적 옵션 검토” 등 연신 북한에 대한 발톱을 드러냈다. 트럼프로서는 대북강경파들이 득시글대는 국무부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물이 절실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건이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대신해, 북미협상의 전권을 행사하는 중요한 자리에 ‘꼭 앉아야 했던 공개할 수 없는 뒷이야기’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볼턴 등 정부 내 반발을 억제하고 북미 간 과감한 협상을 추진할 수 있는 바깥사람으로서 비건에게 적격 판정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대표를 소개하고 있다 ⓒ 자주시보

 

‘트럼프 직통’ 폼페이오–비건 국무부 라인의 의미

비건의 직함인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영어로 ‘UNITED STATES SPECIAL REPRESENTATIVE FOR NORTH KOREA’라고 쓴다. 여기서 대표(REPRESENTATIVE)는 조직의 장(長)이 아니라 ‘선발된 대리인’이란 뜻이다. 풀이하자면 비건은 특별(SPECIAL)하게 선발된 미 국무부의 대리인이다.

국무부는 미국에서 가장 ‘급’이 높은 실세부서다. 수장인 국무장관은 대통령 바로 다음가는 내각의 실질적 2인자로 주(州)와 연방정부와의 관계, 대외외교, 대통령 부재 시 정부를 관할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지난 시절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이후 민주당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힐러리에게 일정 지분을 나눠줬다는 평가가 나왔고, 실제로 힐러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2인자로서 큰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임자인 렉스 틸러슨을 (트위터로) 별안간 해고했고 앞서 CIA국장으로 임명했던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국무장관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관습을 깬 것이다. 아울러 CIA국장이 국무장관으로 바로 이동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

폼페이오는 북한 정보당국과 ‘끈’이 닿아있던 인물로 북미관계에 최우선으로 집중하기 위해 국무장관을 제 입에 맞는 인사로 갈아치우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트럼프가 보인 ‘파격’을 국무부를 활용해 미국 내 거센 반발에도 자신의 의도대로 대북정책을 펼치기 위한 발판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이 국무부를 온전히 통솔할 수 있다면 대북강경파가 많은 정부-공화당-민주당의 방해를 돌파할 수 있다. 트럼프의 폼페이오-비건 임명에 담긴 의미를 이와 같이 추론할 수 있다.

 

보도되지 않는 1월31일 스탠퍼드 연설의 뒷장

앞서 소개한 ‘추론’은 지난 1월 31일 평양행을 앞두고 비건이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벌인 강연을 통해 사실임이 확인됐다. 여기서 북미정상회담을 마주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강연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북한 정권을 전복하려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큰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그보다 훨씬 중요한 얘기는 묻혔다. 미 국무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강연 전문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난 것은 정상 간 접근, 동시이행, 대화, 외교, 평화관계수립으로 북미관계를 풀겠다는 미국의 태도다.

물론 전문에서 ‘검증 가능하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골메뉴는 등장하지만 ‘북한과의 관계수립’이 앞장서면서 확연히 뒤로 밀린 모양새다.

비건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시도 할 수 있는 전통적인 기대치에 제약이 있으며 실패한 결과는 기대할 수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성공할 경우 근본적으로 양국 관계를 변화시킬 다양한 행동으로 하향식 접근(TOP-DOWN)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내 팀과 국무장관의 기동을 위한 공간을 제시했다.”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현실화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0 년 동안 전쟁과 적대감을 겪었던 한반도의 미래를 바라 볼 때 개인적인 관점에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국, 민주당, 공화당 모두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도 주목해야 한다.

위의 발언들은 현재의 북미대화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리인’을 활용한 직접담판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미 북한에서 ‘미국 내부의 반발이 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믿는다’는 취지의 논평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전쟁’ 없어진 자리 메운 외교·도전·소통·체제 인정

“가까운 장래에 싱가포르 합동 성명서의 모든 요소를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할 것이다.” -1월 31일 비건의 강연 중에서

이 같은 입장은 이른바 ‘북한의 비핵화’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강조하는 북한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발언에서도 비건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관계로의 전환,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와 병립하는 것”이라고 이를 뒷받침했다.

“북한과 우리(미국)는 지도자 간 고위급 간 (대화의) 진행을 다져왔다. 우리는 양국정부가 외교관계를 전진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목격했다. 우리는 보다 계속적인 패턴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물론 때때로 도전에도 직면하겠지만 긴 세월 가운데 양국이 가장 집중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여기서 ‘도전’이란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청산-평화적 관계 수립을 꺼리는 미 내부의 굳어진 관성(반발)을 뜻한다. 다음의 발언을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미국과 북한이 외교적인 이니셔티브(계획)를 개시하려는 데 많은 도전이 있었고 복잡했다. 양국 체제가 무척 다르다는 것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양국관계는 60년 이상 정전 또는 휴전상태에 놓여 있었다. 양국은 지리적으로도 다른 장소에 위치하고 역사도 무척 다르다. 양국은 개인의 권리와 인권에 대해 극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되는 현실이 세계관, 지역관, 서로에 대한 인식에 큰 차이를 형성했다. 또한 우리는 무역관계, 외교관계도 없이 사실상 직접소통 할 능력도 없다.”

“양국 체제가 무척 다르며” “사실상 직접소통 할 능력도 없다”는 ‘현재진행형’의 시인을 봐도 그동안 지난 2017년 말까지 미국이 북한에 시위를 겨눴던 전쟁위협과는 완전히 결이 다름을 잘 알 수 있다.

또 무역·외교관계에 대한 언급은 ‘족쇄’가 되는 대북제재를 완화 또는 해제해 양국이 정상관계를 맺자는 전향적인 신호로 읽힌다. 다음 달로 예정된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사업가 짐 로저스의 방북도 이와 결부된 미국의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면 이는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맹목적인 공격과 압박에만 힘써왔던 지난날의 대북정책이 잘못됐다는 고백과도 같다.

앞서 지난 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스웨덴에서 이뤄진 북미 간 합숙 실무협상에서도 대화를 중시하겠다는 언급이 긍정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비건은 “김혁철 대사(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처음으로 실무적인 면담을 가졌다”면서 “우리는 결과에 만족했으며 가까운 장래에 싱가포르 성명서의 모든 요소를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탠퍼드를 떠나 2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 간 평양을 찾은 비건은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 대북정책의 전권을 쥔 담당자가 평양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는 건 전례가 없는 일. 그만큼 2차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북미 간 담판-문구 조율이 치밀하게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어떤 협상이 오갔는지 구체적인 얘기는 함구되고 있지만, 비건은 2월 13일 2차 북미회담의 의제가 12개 이상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사전에 있었던 비건의 발언을 쭉 돌이켜보면, 6.12북미공동성명의 단계적·동시적 이행과 미국의 상응조치를 바탕으로 한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세밀한 논의가 오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북미 하노이 공동성명, 그 이후의 청사진

조만간 북미 간 이견조율, 하노이 공동성명(정상회담 합의문) 작성을 위한 실무협상이 제3국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개최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세계는 북미가 풀어놓는, 평화가 가득한 ‘깜짝 선물보따리’를 받아 안게 될 것이다.

섣부른 예측일 수 있지만 최소한 양국 간 ‘연락사무소 개설’ 이상의 조치는 확인된 셈이다. 2월 13일 JTBC도 남·북·미 당국이 “종전선언을 뛰어넘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위원회’ 창설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노이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승리·미국 패권의 쇠퇴’로 여길만한 세계사적 조치들이 여럿 담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세전환 역시 북한의 핵무력·외교력에 의해 ‘강제된 의지’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트럼프는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북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한반도에서 수 천 명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막말을 마구 일삼았다. 이런 태도가 ‘북한과의 대화’로 돌변한 시기는 절묘하게도 2017년 11월 김정은 위원장의 “국가핵무력 완성 선포” 뒤였다. 이후 북미 간 협상이 진행되며 ‘전쟁위기론’은 온데 간데 사라졌고 어느새 평화협정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실제로 매년 “북한 점령”을 내걸며 이 땅에서 위험천만한 전쟁훈련을 벌인 미군의 군홧발이 마침내 멈춰 섰다. 남북 정상은 지난해 9월 19일 평양에서 “땅·바다·하늘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군사분야 합의를 이뤘고 세계가 환희했다. 성큼 가까워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은 미국의 반발을 뚫어내고 전진하는 우리민족이 주도하고 있음을 각인해야 한다.

1776년 이래 정복과 군사침공, 경제공세 등 끊임없이 주변국을 힘으로 누르고 팽창만을 추구하던 ‘깡패국가·전쟁국가·패권국가’ 미국. 그 대외정책-세계전략의 근간이 70여 년 간 미국의 적대국이었던 북한에 의해 뒤집어지고 있는 풍경은 엄연한 눈앞의 현실이다.

아직까지는 ‘북한이 한반도·동북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견인하고 있다’는 표현이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도발이 전쟁위기를 초래한 거잖아.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분석이 다 있어?”라며 황당해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반도에 전략무기를 들이며 군사패권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미국의 횡포가 멈추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의 평가는 뒤바뀌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말마따나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 북한이 주도하는 ‘세기의 드라마’가 점차 막바지에 이르고 있으니 그리 머지않은 날 확정된 결과가 나올 것이다. 훗날 지구촌의 교과서는 기록할 것이다. 우리민족이 나아가는 몇 발자국이 ‘세계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위대한 걸음’이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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