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환 칼럼]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는 미국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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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환 칼럼]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는 미국의 비극
  •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02.1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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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결, 사람 숭배와 돈 숭배의 대결

북미대결의 역사에서 미국은 과연 교훈을 찾았을까?

30여 년 북미 핵대결의 역사를 보면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사대결과 협상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미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을 공격할 것처럼 군사적 위협을 극도로 끌어올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협상에 돌입, 일정한 합의를 한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또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왜 미국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이런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까?

좀 더 역사를 거슬러 가보자. 북한과 미국이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 것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5일 오산전투에서다. 오산전투의 내용은 위키백과에도 자세히 나온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으로 7월 1일 주일 미8군 제24사단 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상륙했다. 이 대대는 찰스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스미스특수임무부대로 여러 전투에서 명성을 떨치던 부대였다. 제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은 스미스 중령에게 오산 북방에서 북한 인민군을 방어할 것을 명령했고 7월 5일 새벽 3시 경 스미스부대는 방어 진지에 도착, 전투 태세를 마쳤다.

이때만 해도 미군의 사기는 높았고 맥아더 사령관은 미군 지상군이 투입됐다는 것만 알려져도 북한 인민군이 도망칠 것이라고 여겼다.

아침이 되자 북한 인민군이 나타났고 첫 교전이 시작됐다. 스미스부대는 인민군 전차를 향해 포를 퍼부었지만 인민군 전차는 스미스부대를 무시하고 계속 남하했다. 일부 파괴된 전차에서 내린 인민군 병사의 공격에 첫 미군 전사자가 나왔지만 다수의 전차가 보병 진지를 지나쳐갔고 미군은 “인민군이 우리를 못 알아봐서 그냥 지나갔다,

미군이 왔다는 사실을 알면 되돌아갈 것이다”며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전차에 뒤이은 인민군 제4사단 주력부대가 쓸어 닥치면서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 중에 150명이 전사하고 장교 5명이 실종, 82명이 포로로 붙잡히는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미군 장비 대부분도 빼앗겼다. 반면 북한 인민군 전사자는 42명에 불과했다.

미군의 오산전투 참패는 이후 북미대결의 전형이 되었다.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 사령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미스부대의 참패는 맥아더의 판단 잘못과 오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믿고 북한을 과소평가하는 주관주의를 범했으며, 북한은 미군의 위세에 움츠러들지 않고 높은 기세와 면밀한 전술로 상대를 대했다.

이후 대전전투에서는 윌리엄 딘 소장이 인민군 포위망에 걸려 길을 잃고 헤매다 포로로 붙잡히는 참사가 발생했다. 역설적이게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대장이었던 딘 소장은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단장이 전쟁 중 포로가 된 것은 미군 사상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한국전쟁 초반 참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전쟁 내내 주관주의를 버리지 못했다. 맥아더 사령관은 1950년 10월 15일 트루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극히 적다며 전쟁을 11월 23일 추수감사절까지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맥아더의 추수감사절 공세는 한국군 제6사단과 미군 제8기병연대의 와해를 비롯한 막대한 피해로 끝이 났다. 그러고도 맥아더 사령관은 전황 파악을 못하고 11월 24일 크리스마스 공세 작전을 명령, 바로 다음날부터 북한 인민군의 총반격에 묵사발이 되고 말았다. 당시 미 제2사단은 완전히 와해돼 사단장이 직위해제됐고 장진호 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은 1만2천명 가운데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상을 겪었다.

▲ 장진호 전투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 자주시보

미국의 오판은 정전협상 중에도 계속되었다. 새로 사령관이 된 클라크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하나도 힘이요 둘도 힘이며 셋도 힘이다”며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미군은 정전협상장에서 일방적 휴회선언을 하고 퇴장해버렸다.

때마침 새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한 새로운 공세를 요구했다. 이에 클라크는 1953년 1월 25일 강원도 철원 역곡천 부근 T자형 고지에서 갈기작전(SMACK operation)을 개시하였다.

미군은 동맹국 고위 인사들과 기자들을 초청했으며, 전투 시나리오가 담긴 칼라 팸플릿도 나눠주었다. 성공적인 전투작전을 홍보하여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군사지원을 요구할 구상이었던 것이다.

공군은 112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탱크는 7만7천 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며, 포병은 11만2천 발의 포를 발사했다. 4천5백 발의 박격포와 5만 발의 기관총알, 650개의 수류탄이 날아갔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미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채 후퇴하였다.

기자들은 정부 고관들을 초청해놓고 참패한 전투에 대해 혹평을 하였다. 북한은 이 고지가 T자형으로 생겼다고 하여 정형(丁形)고지 전투라 부른다. (Walter G. Hermes, 『Truce Tent and Fighting Front』, 1966, p385~389)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군이 왜 한국전쟁에서는 이런 수모를 겪었을까? 거듭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군이 절대 미군을 이길 리 없다는 주관주의 때문이었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전후에도 이어진다.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놨기에 100년이 가도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지만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성장(1970년 노동당 제5차 당대회에서 선포)하였다.

푸에블로호 사건(1968년), 전자정찰기 EC-121와 헬리콥터 OH-23G 격추사건(1969년), 판문점 도끼사건(1976년) 등 전쟁위기가 다시 도래했을 때도 미국은 당장 전쟁을 개시할 것처럼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들을 한반도에 집결시켰다가 결정적인 순간 전쟁을 포기해 전 세계에 망신을 당했다. 미국은 매번 당하고도 북한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북미 핵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1993년 영변 폭격 직전까지 갔던 미국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보고서야 비로소 전쟁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후퇴하였다. 갑작스런 미국의 후퇴에 세계는 당황하였고 심지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기가 전화로 전쟁을 반대한 덕분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였다.

1998년에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곧 망할 것이라 여기며 금창리 지하시설 소동을 벌이다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결국 꼬리를 내리고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군사적 대결에도 밀리고 협상에도 밀리자 2005년에는 대북 금융제재를 통해 새로운 대결을 해보려다가 결국 북한의 핵시험에 놀라 테러지원국 해제를 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미국은 패배를 반복하면서도 그간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해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보며 일각에서는 미국이 기나긴 북미대결 과정에서 드디어 교훈을 찾고 새로운 길을 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새로운 길로 이끌고 가는 지도자라며 환상을 품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해 일으킨 착각이다.

미국은 대중을 기만하기 위한 심리전에 능하다. 미국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약속해 많은 이들을 기대에 부풀게 하였다. 그러다 부시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북미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며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과연 그럴까?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의 미국 측 주역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은 트럼프 취임 직후인 2017년 3월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이 필요하다, 아주 촘촘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에는 새로 출간한 책을 통해 북한을 ISIS(이슬람국가)에 비유하며 독재국가라고 비난하였다. 북미대화에 대해서는 북한의 ‘거짓말과 허황한 약속들’을 경계하라며 마치 자신이 과거 협상에서 속았다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실을 따지자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북미공동코뮤니케 이행을 안 한 건 미국이었음에도.

▲ 매들린 올브라이트 [출처: 세계경제포럼] ⓒ 자주시보

올브라이트의 언행을 보면 과연 당시 미국의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북미공동코뮤니케가 제대로 지켜졌을지 의문이다. 미국은 그저 북한을 속이고 시간을 벌기 위해 공동코뮤니케를 합의한 것 아니었을까?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최초의 흑인(정확히는 흑백 혼혈인 물라토) 대통령이라며 환상을 품은 이들도 있었다. 미국은 그저 전임 부시 정권의 막무가내식 외교로 인해 동맹국 사이에서 고립되자 ‘스마트 외교’를 내세워 동맹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세계 평화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뭘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미국 역사에 전쟁 대통령으로 남았으며 북한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 아래 대화를 거부해 임기 내내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 정치인 출신에 돌출발언과 돌발행동으로 인해 종잡을 수 없다보니 온갖 예측과 환상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집권하자마자 북한을 상대로 핵항공모함을 세 척이나 투입해가며 전쟁을 추진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전쟁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대화로 돌아선 것도 똑같다. 다만 이번에는 곧바로 정상회담을 했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과 달라서가 아니라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통해 전략국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이 이번에는 교훈을 찾고 새 길을 걷는 것인지 우리는 정확히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이미 주한미군 철수나 남북통일 승인을 정책으로 수립했다며 이후 한반도 정세가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여전히 한반도 정세는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그 수위와 형태만 조절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설사 북한의 힘에 밀려 종전선언을 한다 해도 평화협정 체결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공작을 펼칠 수 있다.

심지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남북통일이 이뤄진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구 소련을 붕괴시킨 것처럼 장기간에 걸쳐 공작을 펼 수 있다.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은 왜 교훈을 찾지 못하는가

만약 미국이 북미대결에서 교훈을 찾았다면 더 이상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패퇴는 동북아 패권의 몰락으로 이어지며 세계 패권의 유실로 귀결된다. 미국은 이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권, 이권을 결코 놓지 못하는 속성은 독점자본의 돈에 대한 독점적 욕망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로 독점자본이 국가를 직접 움직이는 나라다. 독점자본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패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사람과 돈의 관계 문제다. 독점자본은 돈을 절대화하고 숭배하며 사람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는 일부 독점자본가의 성향 같은 게 아니라 독점자본의 기본 생리이며 존재를 규정하는 출발점이다.

독점자본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모으려고 하며 만약 이를 포기하면 경쟁에서 밀려 다른 자본에게 먹히고 만다. 억만장자들이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모습은 약육강식의 정글 세계와 같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문제는 결국 독점자본가도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점이다. 돈을 통해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고 존경받을 수도 없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더욱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돈으로 일시적인 만족은 느낄 수 있지만, 그리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는 있지만 행복은 느낄 수 없으며 존경도 받을 수 없다. 돈이 많으면 남들이 자기를 숭배하기를 원하며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리고 자기 심기를 거스르면 가차 없이 짓밟는다. 땅콩회항 사건을 떠올려보자.

독점자본가에게 존경이나 행복이란 개념은 없으며 오로지 타인의 부러움과 공포심만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어느 순간 돈은 숫자에 불과하게 된다. 자기 재산 뒤에 0이 하나 더 붙든, 덜 붙든 자기 삶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독점을 포기하는 순간 도태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몸집을 불려야 한다. 이것이 독점자본의 운동 방식이며 자본가가 자본의 노예가 되는 원리다.

돈을 숭배하고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사상이 바로 미국의 사상이다.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돈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미국이 올바른 교훈을 찾을 수 없다.

 

우리 민족과 미국은 사상이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사상은 무엇일까? 우리 민족의 전통 사상은 인내천과 홍익인간이다. 인내천이란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뜻이며 홍익인간이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인내천과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의 출발점이며 우리 사상의 근본 특징이다.

북한은 인내천과 홍익인간이 국가의 사상으로 됐다는 징후가 많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좌우명은 ‘이민위천’이었다고 한다. 이민위천이란 ‘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이는 북한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본질이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규정하고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모두 인내천과 홍익인간의 사상을 발전적으로 현대화한 것이다.

한국의 촛불 역시 인내천과 홍익인간 사상을 구현하였다. 촛불국민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세월호를 꼽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을 때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던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 전체보다 더 무겁다.” 촛불국민은 304개의 우주를 기억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인내천 사상과 일치한다.

한편 촛불국민이 가장 분노한 대상에는 정유라가 있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취직도, 결혼도, 장래도 포기하고 살 때 권력에 기대어 온갖 특권을 누린 것에 대한 분노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사상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의 사상과 촛불의 사상은 하나며 이미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의 가장 강력한 사상적 원동력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국민이 촛불을 들 때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하면서 다른 길을 갔고, 집권 후에는 적폐청산하라고 촛불국민이 쥐어준 칼이 녹슬도록 방치하고 정유라에게 특혜를 준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오늘도 제2, 제3의 김용균 씨가 쓰러져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궁금하다.

 

미국의 두 가지 비극

미국이 사람과 돈의 관계에서 입장을 바꿀 수 있을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이란 나라는 출발부터 돈을 위해 사람(아메리카인디언)을 학살하며 만들어진 나라다. 건국 후로도 돈을 위해서라면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필요하면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쳐들어갔다는 건 미국인들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다. 전쟁을 하면 민간인 대량 학살을 습관적으로 할 정도로 미국은 인간멸시와 돈 숭배로 일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망할 때까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첫 번째 비극이다.

두 번째 비극은 돈 숭배 사상을 버릴 수 없으니 주관주의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주관주의란 객관 사실,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국은 북한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체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다.

아무 효과 없는 대북제재에 수십 년 동안 매달린 이유다. 또 미국은 이미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의 방식으로는 승리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서도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전쟁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고 있다. 패배에서 교훈을 찾기보다는 대충 넘어가고 어떻게든 상대를 공격할 여건을 만들려고 궁리하는 것이다.

돈을 사람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면 주관주의를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무엇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기에 북한과의 대결도 돈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긴다. 미국은 전쟁승리요소에서도 돈과 경제력을 중요하게 본다. 북한이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사상을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 것과 정 반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하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 결정론에 빠진 미국은 북한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파악도 할 수 없다. 주관주의에 빠지면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스미스특공대의 패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돈 숭배 사상에서 사람 숭배 사상으로, 공존·공리·공영하는 홍익인간의 사상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현재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북미대결의 심각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북미대결은 단순한 군사적 대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돈 숭배와 사람 숭배의 사상전이다. 또한 모든 국민이 이로워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회주의와, 사유재산 보호라는 미명 아래 독점자본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하는 자본주의의 대결이다. 이처럼 북미대결은 단순한 군사적 대결만이 아니라 사상, 체제, 군사 3대 영역의 총적인 대결이다.

여기서 기본은 사상이다. 사람이 중요한가 돈이 중요한가의 대결이 북미대결의 근본 지점이기에 이 대결은 모든 걸 변화시키는 본질적 대결이다. 이것을 정확히 알 때 북미대결의 배경과 추이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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