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볼모가 된 심장…심각한 이상사례 106건, 리콜은 없다?
상태바
[뉴스타파] 볼모가 된 심장…심각한 이상사례 106건, 리콜은 없다?
  •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 승인 2018.11.28 1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령환자도 OK!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의 희망,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AVI)"  <대한심장학회 블로그>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 심장. 나이가 들 수록 심장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고, 각종 질환이 따라온다. 대표적인 퇴행성 심장질환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다.

대한심장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약 10%가 앓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를 보면 2011년 5,800여 명이던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는 5년 뒤 2016년 1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66%가 70대 이상 고령 환자다.

 

한 해 대동맥판막 협착 환자 1만 명… TAVI 시술도 급성장

심장에는 4개의 판막이 있다. 하루에 약 10만 회 이상 열리고 닫히면서, 심장이 온 몸으로 피를 뿜어 공급할 때 혈류가 거꾸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4개의 판막 가운데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있는 판막이 대동맥 판막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대동맥 판막이 딱딱해지고 두꺼워지면서 판막이 완전히 열리지 못하고, 좁아지는 병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다.

심장은 좁아진 판막 틈으로 피를 더 많이 보내려고 무리하게 수축 운동을 하게 되고, 환자는 호흡 곤란, 가슴 통증, 실신 등의 증상을 겪다 갑자기 사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약물로는 완치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치료하고 싶다면, 환자에게 남는 선택은 판막 교체뿐이다.

판막 교체 치료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동맥판막 치환 수술(ASR)로 불리는 전통적인 수술법이다. 전신 마취를 하고, 가슴을 열어 심장을 잠깐 멈춘 뒤 낡은 판막을 도려내고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대수술이다. 장기 입원과 수 개월간의 회복 기간까지 뒤따른다. 환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이유다.

특히 중증 고령 환자의 경우, 수술과 후유증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고령 환자들에게 의료기관이 추천하는 대동맥판막 협착 치료법이 있다. 바로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 일명 ‘TAVI’(타비·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또는 ‘TAVR’(타바·Transcatheter Aortic Valve Replacement)로 불리는 비수술적 치료법이다.

▲TAVI 시술 영상 캡처 (출처: 유튜브 gebr&#252;der Betz)

가슴을 열어야 하는 대수술 대신, 허벅지 동맥으로 관(카테터)을 넣어, 심장까지 인공판막을 밀어넣은 뒤 고장난 대동맥판막 위치에 금속재질 또는 생체재질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시술이다.

금속재질의 기계 판막은 반영구적으로 작동하지만, 피를 엉키게 하는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에 항응고제를 꼭 복용해야 한다.

다만 의료용 소나 돼지의 조직으로 만든 생체재질 판막은 그런 부작용이 거의 없지만 내구성이 15년 정도로 떨어진다. 즉, 삽입한 판막이 낡아 새 인공판막으로 교체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뜻이다.

"전신마취가 필요 없고, 흉곽을 열지 않아도 되므로 출혈이 적어 수혈이 필요하지 않으며, 중환자실에 체류하는 장기간의 회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TAVI 후 다음날에 기동이 가능하고 2~3일 후에는 퇴원이 가능하여 수술적 치료에 비하여 매우 편한 시술 후 경과를 갖습니다."  <대한심장학회>

한국심장학회는 홍보 블로그에서 TAVI의 장점을 위와 같이 설명한다. TAVI가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의 희망’으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심장학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10년 13명이 처음 TAVI 시술을 받았는데 지난해에는 438명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의 TAVI용 인공심장판막 사용 승인이 떨어진 후 첫 해인 2012년 4,600건이었던 타비 시술은 2016년 3만 5,000건으로 증가했다.

 

글로벌 심장판막 제조 업체들, TAVI 규제 문턱 낮추기 시도

이 같은 시술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TAVI는 수술이 불가능한 고령의 중증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수술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외에서 TAVI를 더 낮은 연령, 저위험군 환자들에게 확대 시행하려는 시도가 거세다.

국내에서는 심장내과 학계를 중심으로는 “TAVI를 더 낮은 위험군 환자들에게도 확대 시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흉부외과 학계에서는 반대하면서 국내 TAVI 확대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 FDA가 2011년 에드워즈라이프사이언시스(제품군 Sapien)와 메드트로닉(제품군 CoreValve)의 TAVI용 인공심장판막을 승인할 당시만 해도 이 제품들은 고위험군 환자에게만 사용하도록 제한됐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인공심장판막 시장의 양대 업체, 에드워즈와 메드트로닉을 중심으로 TAVI 시술 환자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취재에 따르면 에드워즈와 메드트로닉은 2019년, 저위험군 환자에 대한 TAVI 임상시험 1년치 데이터를 발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에드워즈는 투자자들에게 “2019년 말 FDA 승인을 기대하라”고 말했다고 ICIJ는 전했다. 에드워즈는 환자들의 TAVI에 대한 인식이 커져감에 따라, 2021년까지 TAVI 시장이 연간 50억 달러(한화 5조 6000억여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때문에 에드워즈와 메드트로닉 등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을 넓히기 위해 환자들을 직접 공략하고 있다. 미국의 심장병 환자·가족 지원 단체 멘디드하트(Mended Hearts)는 심장질환 환자 모임에 의사들을 데려가 TAVI 시술을 설명하게 하거나, 구성원들이 직접 에드워즈의 TAVI 홍보 영상에 출연하기도 한다.

ICIJ는 “멘디드하트가 에드워즈 등 판막 제조업체들의 자금 지원을 받아 TAVI 홍보 활동을 하면서 2016년 300만 달러(한화 33억 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보도했다.

 

‘심각한 이상사례’ 325건 분석…TAVI용 생체재질인공판막이 53%

이처럼 TAVI와 인공심장판막 제조업체들은 전 세계에서 공격적으로 시장을 넓혀가는 중이다. 뉴스타파는 국내에 유통되는 TAVI용 생체재질인공심장판막의 안전성은 어떤지 추적했다.

취재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2013년부터 올 8월까지 식약처에 보고된 추적관리대상 의료기기(1년 이상 인체에 이식되는 의료기기)의 ‘심각한 이상사례’ 내역 총 325건을 확보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심각한 이상사례 보고 325건 가운데 생체재질인공심장판막 제품군에 대한 보고가 172건(52.9%)으로 절반 이상 차지했다.

 

메드트로닉 CoreValve, 심각한 이상사례 106건…리콜 없어

메드트로닉(106건)의 CoreValve 제품군(허가번호 수허 11-1145호)에서 심각한 이상사례가 가장 많았고, 에드워즈라이프사이언시스(33건), 보스톤사이언티픽(33건)이 뒤를 이었다.

심각한 이상사례가 가장 많이 보고된 메드트로닉의 CoreValve 판막은 이식 환자가 사망한 사례도 18건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메드트로닉 한국지사는 사망 사례 가운데 3건은 ‘의료기기와의 인과관계’가 ▲명백하거나 ▲많거나 ▲의심된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했다.

그러나 메드트로닉은 한국에서 최근 5년 간 심각한 이상사례를 100건 이상 보고하는 동안에도 CoreValve 판막 제품군을 국내는 물론,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도 리콜한 적이 없다.

 

9초간 심박 못 만든 인공심장박동기도 리콜 없어

또 다른 심장 관련 이식형 의료기기인 인공심장박동기 관련 이상사례 보고서에서도 석연찮은 지점이 발견됐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이상사례 보고서에는 보스톤사이언티픽이 판매하는 인공심장박동기(허가번호 수허 09-352호)가 수 초간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한 경우가 확인됐다.

인공심장박동기는 심장이 규칙적으로 뛸 수 있도록 전기자극을 대신 보내주는, 일명 ‘페이스메이커’라는 장치다. 이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할 위험이 있다.

문제의 인공심장박동기 이상사례 보고서를 보면 이 기기를 이식한 한 남성은 2014년 실신한 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심장박동기를 검사한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이 환자는 4일 뒤 다시 실신했다.

기기를 다시 검사하는 과정에서 “페이싱이 9초간 멈췄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다. 다시 말해, 기기가 9초 동안 심장 박동을 만들지 못하는 문제가 확인된 것이다. 취재팀이 자문을 구한 복수의 대학병원 심장 관련 전문의들도 심각한 기기 결함이 발생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문제의 인공심장박동기는 국내외에서 리콜된 적이 없다.

뉴스타파 취재팀은 또 심장 이식형 기기들을 유통했던 전직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를 만나 문제의 이상사례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이 관계자는 심장 박동을 만들지 못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내고도, 리콜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 : 이 정도 사례가 나오면 리콜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요?

전직 업체 관계자 : 당연히 (리콜 공지가) 떴겠죠.

기자 : 안 떴어요.

전직 업체 관계자: 안 떴다고요?

메드트로닉 “‘취재 응대 말라’ 본사 방침”…보스톤 “국내법 준수”

뉴스타파는 이상사례 보고서에서 문제가 두드러지는 심장 이식형 의료기기에 대해 묻기 위해 메드트로닉과 보스톤사이언티픽 한국지사에 질의서를 전달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인터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메드트로닉 한국지사 측은 “서면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지사 차원에서 언론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미국 본사 방침이 내려왔다”며 공식적인 취재 응대도 거절했다.

보스톤사이언티픽 한국지사는 서면 답변을 통해 “국내 의료기기법 및 의료기기 안전성 정보 관리 규정을 준수하여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재 : 홍우람, 김용진, 김성수, 김지윤, 연다혜, 임보영, ICIJ 국제협업취재팀(Cat Ferguson, Petra Blum), 촬영 : 김기철, 신영철, 정형민, 편집 : 정지성, 박서영, CG : 정동우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