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백제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 무령왕릉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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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전 백제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 무령왕릉을 찾았다
  • 조성우 기자
  • 승인 2017.03.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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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 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무령왕릉 입구  표지석
▲ 매표소
▲ 문화재 관람료
▲ 모형 전시관
▲ 백제의 사마왕, 제25대 무령왕
▲ 무령왕 부부가 1500년동안 잠들었던 석실분

앞에는 석수(국보 제162호)가 왕과 왕비를 지키고 있었다. 석수는 돌짐승으로 악귀를 쫓으며 죽은이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 무령왕릉 축조
▲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부장품

1971년 7월5일,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작업을 하던 인부에 의해 벽돌로 쌓은 구조물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원용 박사를 단장으로 조사단을 구성하여 7월 7일 오후 4시부터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 무령왕릉 발견

발굴작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둥글게 쌓아 돌린 벽돌들이 나타났고, 조금 더 땅을 파자 막음벽돌로 채워진 석실분 입구가 나타났다.  그러나 폭우로 인해 발굴작업은 중단됐다.

▲ 위령제를 지내는 조사단

1971년 7월 8일, 오후 4시, 간단한 위령제를 지내고 4시 15분 경 석실분 입구에 막아둔 벽돌을 개봉하기 시작했다. 

▲ 무령왕릉 개봉

석실분을 개봉한 후에 당시 조사단장인 김원용 박사가 무덤속에 들어가 20분만에 백제 사마왕인 제25대 무령왕 부부묘임을 확인했다. 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석은 왕릉의 신원과 조성 연도 등을 새긴 돌이다.

▲ 묘지석(국보 제163호)

오후 10시경 부터 본격적으로 유물을 실측하며 반출을 시작하여 7월 9일 오전 9시경 모든 발굴작업을 마무리하고 조사단은 철수했다. 

이처럼 하룻밤 사이에 발굴작업을 마침으로써 한국 고고학계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는 지적과 발굴시작 17시간만에 발굴 및 조사를 마무리한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최고의 스피드를 기록했다는 놀림과 비난도 있었다.

▲ 발굴작업 진행

무령왕릉에서 108종 2,906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한국 고고학 백제사 연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 백제 제25대 무령왕릉 입구
▲ 송산리 고분군
▲ 2017년 송산리 고분군의 봄소식

백제의 사마왕 즉 제25대 무령왕이 이세상에 다시 나온지 44돌이 되는 생일날(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 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 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송산리 고분군을 벗어나 인근에 있는 솔밭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옛 공주의 지명인 웅진(熊津)의 설화와 곰사당이 있는 곳이다. 전에는 이곳에도 마을과 향나무가 심겨져 있었지만 마을은 없어졌고 마을이 있었던 자리에 소나무로 채워져 있다.

▲ 웅신단(熊神壇)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곰나루 옛터에 라이온스클럽 창립 14돌을 기념하여 민족과 국가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을 기원하는 뜻을 모아 고장의 상징이요 수호신인 웅신(熊神)을 모시는 사당을 다시 세우다.

1962년 6월 29일  공주라이온스클럽 (웅신조각 황교영 교수, 현판글씨 이공권, 협찬 국회의권 정석모, 공주군수 조기택, 전일기업(주)대표 전갑식, 대지주 이성실)

▲ 웅신(熊神)
▲ 웅진단비(熊津壇陴)

금강의 물이 남동편으로 휘어돌고

연미산 올려다 뵈는 한갓진 나루터

공주의 옛 사연 자욱하게 서린곳

입에서 입으로 그냥 전하여 온

애뜻한 이야기

아득한 옛날 한 남자

큰 암곰에게 몸이 붙들이어

어느덧 애기까지 얻게 된다.

허나 남자는 강을 건너버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 암곰

자식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다.

여긴 물살의 흐름이 달라지는 곳이여서

배는 자주 엎어지곤 하였다.

곰의 원혼 탓일까 하고

사람들은 해마다 정성을 드렸는데

그 연원 멀리 백제에 까지 걸친다.

공주의 옛 이름 웅진(熊津) 고마나루

그이름 여기에 아직 있다.

백제때 숨결을 남기고 있다.

   1962.  6.   29.

[공주사범대학 백제문화연구소]

▲ 산책길(2010년 작가 김대열)

연미산에 살고 있는 외로운 곰이 님을 찾아 산속을 거닐고 있다.

▲ 행복한 오후(2010년 작가 서옥재)

나무꾼과 정을 나눈 곰은 두마리의 새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그리움을 향한 마음(2010년 작가 김석우)

어미곰과 새끼들이 떠난 임을 애절한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 기다림(2010년 작가 김대열)

돌아오라는 애원을 외면하고 강을 건넌 임에 절망한 곰은 강물에 몸을 던졌다.

솔밭공원 옆에는 우드볼(woodball) 경기장이 있다. 공주의 우드볼 경기장은 국내 최고의 경관과 시설을 자랑한다고 한다.

▲ 우드볼(woodball) 경기장 입구
▲ 우드볼(woodball) 경기장

우드볼(woodball)은 골프와 게이트볼의 장점을 모아 만든 신종 스포츠로 대만의 밍후이웽(Ming-Hui Weng)이 1990년에 고안했다. 골프와 비슷하게 잔디 위에서 나무 공을 쳐서 골문(게이트)을 통과시키는 경기로 목구(木球)라고도 한다.

게이트볼은 상대방의 공을 맞춰 밀어내는 경쟁방식이지만 우드볼은 공이 게이트를 통과할 때까지의 개인별 타수를 기준으로 최소타를 친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잔디 위에서 즐기고, 클럽에 고무를 붙여 공을 힘껏 쳐도 멀리 나가지 않아서 운동량이 많은 것이 파크골프와 다르다.

공주보를 들렸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시각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지만 공주의 경관과 유적지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은 긍정적이다.

▲ 공주보 안내판
▲ 공주보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의 역사 문화를 토대로 무령왕의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로 봉황이 지키는 비단수라는 역할성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주보를 관리하는 공주보사무소가 밖에서 보기에 지나치게 호화롭게 느껴진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 공주보사업소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웅비탑으로 향했다.

▲ 웅비탑(2000. 1. 1. 준공)

충청남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하고 밝고 희망찬 21세기를 향해 웅비하려는 도민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높이 19.8m 이며 산과 강을 배경으로 웅비의 나래를 펴는 형상이다.

여기는 아름다운 백제의 고도 공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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