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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영화 <베테랑>의 ‘조연’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조현미 기자
  • 승인 2018.09.2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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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경찰서 관할 삼성에스원에 근무 중인 전직 남대문 경찰서장

지난 9월 3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삼성에스원 본사 앞. 삼성에스원 노동조합(위원장 장봉열)의 파업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삼성 계열사에서는 처음으로 임금‧단체협상 교섭 결렬에 따른 파업이 시작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회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회사 관리직 직원들과는 별도로 한 무리의 경찰들이 회사 주변에 대거 배치돼 있었던 겁니다. 추정컨대 회사 측에서 관할 경찰서인 남대문 경찰서에 시설보호 요청을 했던 것이겠죠.

▲지난 9월 3일 서울 중구 에스원 본사 앞에서 열린 삼성에스원노동조합 파업 결의대회. 건물 정문 왼편으로 경찰들이 보인다.

이 장면을 눈여겨본 건 지난 8월 30일 뉴스타파가 취재해 보도한 내용과 맥이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012년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에 재취업한 퇴직 경찰이 13명에 이른다는 보도였는데요.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업무 방해 등으로부터 회사의 재산과 근무자를 보호하기 위해” 관련 경험을 가진 전직 경찰들을 채용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된 2012년부터 퇴직 경찰을 채용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노무관리에 대비하는 차원으로 볼 여지가 다분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서비스는 2013년에 설립된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각종 공작을 벌이다 최근 재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지요.

그런데 삼성에스원 노조 파업 취재를 다녀온 후 얼마 안 돼 흥미로운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삼성에스원에도 한 퇴직 경찰이 ‘고문’으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장희곤 전 총경(경찰대 2기)으로, 그의 경찰 재임 시절 마지막 직책은 서울 남대문 경찰서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삼성에스원이 소재한 서울 중구를 관할하는 경찰서의 서장 출신이라는 것이죠.

그러고 나니 삼성에스원 노조 집회 현장에 남대문 경찰서 경찰들이 대거 배치돼 있는 모습이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장희곤 전 남대문 서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장 전 서장은 지난 2011년 삼성에스원 고문으로 취업해 현재 범죄예방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퇴직 이후) 근무할 수 있는 데가 범죄 예방이나 보안 분야이기 때문에 경찰에 있을 때 한 것과 관련 있는 데 여러 군데를 알아봤는데 마침 그 당시 삼성에스원에서 범죄예방연구소를 설립하려는 시기여서 고문 직책으로 오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희곤 전 서장은 어떤 이유로 경찰을 그만두고 삼성에스원에 취업하게 됐던 걸까요. 알고 보니 그는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수사 과정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 북창동 유흥주점을 관할하던 곳이 바로 남대문 경찰서였으니까요. 장 전 서장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직무를 유기하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경찰복을 벗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07년 5월 12일 김승연 한화 회장은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구속된 당일 김 회장이 남대문경찰서로 들어오며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모습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류승완 감독의 2015년작 영화 <베테랑>의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연배우 유아인의 배역이던 재벌 2세의 갑질 폭행 사건을 축소 은폐시키기 위해 재벌그룹 차원에서 고위 경찰들과 조직적 형태의 물밑 접촉을 시도하는 과정이 가감 없이 묘사돼 있습니다.

실제로 장희곤 전 서장은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수사 당시, 영화에 등장한 고위 경찰들과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였던 사실이 관련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장 전 서장은 영화 <베테랑>의 현실판 조연배우였던 셈입니다.

이제부터 법원 판결문을 통해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장 전 서장을 비롯한 경찰 조직이 한화그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움직였었는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때의 현실을 되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복폭행’ 수사 당시 ‘한화그룹 - 전직 경찰청장 - 남대문 경찰서장’의 커넥션

지난 2007년 3월 12일 당시 남대문 경찰서 강 모 수사과장은 모 일간지 기자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습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얽힌 폭행 사건에 관해 제보가 들어왔다며 관할서인 남대문서에서 이를 알고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당시 해외 유학생 신분이던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북창동 유흥주점에서 종업원에게 맞은 일이 있었는데, 이를 전해 들은 김승연 회장이 직접 비서실 직원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나서서 해당 업소 종업원들에게 보복 폭행을 가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 수사과장은 곧바로 수사팀을 꾸려 진상 파악에 나섰습니다.

남대문 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접한 한화 측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화에겐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나름의 카드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당시 한화는 최기문 전 경찰청장을 그룹의 고문으로 모셔놓고 있던 상태였거든요.

한화 관계자는 최기문 전 고문에게 연락해 “지금 남대문서 형사들이 우리 직원들을 만나러 온다는데 남대문서에 접수가 돼서 사건화가 되는 건지 좀 알아봐 주시고 신경을 좀 써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최기문 고문은 장희곤 당시 남대문 경찰서장에게 직접 전화를 겁니다.

당시 최 고문과 장 서장의 구체적인 통화 내용에 대해선 서로의 주장이 다소 엇갈립니다만, 분명한 건 이 통화 직후 장 서장이 강 수사과장에게 “북창동 사건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직 피해자들 신고도 없고 고소장도 제출되지 않았으니 빨리 철수시키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강 수사과장이 “대기업 회장이 경호원 등과 함께 집단폭력을 행사한 것이고 기자가 전화까지 한 것으로 봐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보고했음에도 장 서장이 수사팀 철수를 지시했다는 게 강 과장의 증언입니다. 자칫 사건 자체가 완전히 묻힐 뻔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사건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던 또 다른 경찰 기관이 있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이미 관련 첩보를 수집해서 별도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광수대는 남대문서 강 수사과장이 기자로부터 제보를 받기 사흘 전인 2007년 3월 9일, 그러니까 문제의 보복 폭행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 이 사건을 인지했다고 합니다.

광수대 강력 2팀 2반장인 오 모 경위가 “3월 9일 새벽 무렵 대기업 회장이 폭력배를 동원해 북창동에 있는 술집을 때려 부쉈다”는 취지의 첩보를 당일 저녁 8시쯤 입수했던 겁니다. 이에 따라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있던 상태였고 말이죠.

곧 한화 측도 광수대가 이 사건을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최기문 고문이 장희곤 남대문 서장에게 청탁 전화를 한 다음 날인 3월 13일에 이 사실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한화 측은 사건 자체를 아예 덮어버리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고, 광수대보다는 차라리 남대문서가 수사를 하도록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다시 최기문 고문을 통해 홍영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은 판결문에 나타나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경찰관들의 대화를 통해 확인됩니다.

하지만 결국 한화 측의 바람대로 광수대가 수사하던 이 사건은 남대문서로 이첩됩니다. 광수대는 3월 28일에 사건 관련 정보 일체를 남대문서로 넘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대문서는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광수대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직후 장희곤 당시 남대문 서장은 강 수사과장에게 그저 “잘 처리하세요.”라고만 말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장희곤 서장 1심 판결문 20쪽). 그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4월 24일, 이 사건은 결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남대문서는 그제서야 피해자 조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화 <베테랑>에 나온 서울지방경찰청 광수대 직원들,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 2세, 유아인을 관할구역 경찰서장에게 소개해줬던 ‘정 고문’ 같은 등장 인물들은 이 같은 실제 상황을 토대로 탄생했던 겁니다.

▲2007년 4월 30일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이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관련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장 서장은 같은해 5월 늑장수사 의혹으로 직위해제됐고, 6월 구속됐다.

 

‘남대문서장’ 장희곤은 삼성에스원 재취업…‘한화 고문’ 최기문 전 청장은 영천시장 당선

결국 장희곤 전 남대문 서장은 이 사건 과정에서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2008년 1월 1심에서는 직권남용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2008년 7월 2심에서는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가 모두 인정돼 최종적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화의 고문 위치에서 장희곤 전 서장에게 청탁 전화를 했던 최기문 전 경찰청장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마찬가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요. 전현직 고위 경찰 2명이 대기업 일가의 폭행 사건의 뒤를 봐주다가 결국 처벌을 받은 겁니다.

이 판결 이후 장희곤 전 서장의 거취는 앞서 설명한 대로입니다. 경찰복을 불명예스럽게 벗고 3년 뒤 삼성에스원 고문으로 재취업했습니다. 그러니까 한화라는 대기업의 고문으로 있던 경찰 선배(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청탁을 거절하지 못한 탓에 경찰을 그만두게 됐는데, 이후 다시 그 선배가 걸었던 길처럼 민간 기업의 고문으로 재취업해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장희곤 전 서장은 취재진에게 “(최기문 전 청장은) 나한테 청탁을 한 적이 없고, 청탁했다는 것은 검찰 수사 결과일 뿐”이라며 검찰 수사 결과와 법원의 판단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삼성에스원 취업 당시에도 인터뷰와 면접을 모두 거쳐 나의 전문 분야에 와서 근무하고 있는 것이므로 과거 경찰에 몸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시될 이유가 없다”면서 “관련 내용들이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후배에게 청탁을 해서 후배는 물론 자신도 처벌을 받았던 사람, 영화 <베테랑>의 또 다른 현실판 조연배우였던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는 다시 공직자가 되어 있습니다.

올해 7월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경북 영천시장에 당선된 겁니다. 그 역시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처벌받은 것에 대해 아직까지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2007년 한화그룹 폭행사건과 관련,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지요. 형법상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민간인이 처벌받은 것은 처음이고, 이후 사례도 없어요. 우리나라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없는 일이지요. 공직을 그만 둔 지 2년이 넘었고, 현직 공무원 신분이 아닌 민간인으로 문의 전화한 것을 가지고 처벌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최기문 현 영천시장의 서면 답변>

▲최기문 현 영천시장의 경찰청장 재직 당시 모습. 최기문 전 청장은 한화 고문으로 재직 중이던 2008년 7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7월 무소속으로 영천시장에 당선됐다.

 

대기업의 전직 고위 경찰 영입 이유?... ‘경찰판 전관예우 효과’ 기대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2012년부터 13명의 퇴직 경찰을 채용했습니다. 또 최근 삼성에스원에 대해서 추가 분석한 결과, 지난 2009년부터 실제로 취업했거나 취업심사를 받았던 퇴직 경찰이 모두 20명에 달했습니다. 비단 삼성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재벌그룹과 계열사들도 퇴직 경찰들, 그중에서도 간부급들을 상당수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실제로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도 없지 않겠지만,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나 장희곤 전 남대문서장 같은 고위급 퇴직 경찰을 모셔오듯 채용하는 데에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보복 폭행 사건이 발생하기 2달 전쯤 김승연 회장이 최기문 당시 고문에게 했다는 말을 들어볼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최근 5년 중 2~3년간은 이런저런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음으로 인하여 그룹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회사 이외의 일로 제가 신경 쓰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2007년 1월 초 김승연 한화 회장이 최기문 전 경찰청장에게 한 말 (최기문 전 한화 고문 2심 판결문 7쪽)>

즉, 대기업과 계열사들의 전직 고위급 경찰 채용 이유는, 기업의 대관업무(각종 정부기관을 상대로 해야 하는 업무) 중 경찰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들의 과거 지위를 활용해 여러 형태의 이익을 취하겠다는 것, 다시 말하면 ‘경찰판 전관예우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영화 <베테랑>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전편에서 재벌 2세 폭행 사건의 뒤를 봐주던 고위 경찰들 대부분이 대기업 고문으로 취업해 있지 않을까 하는 쓸쓸한 상상을 해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조현미 기자  http://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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