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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이우위직(以迂爲直)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손자병법』 「군쟁편」에 다음과 같은 대목을 만나게 된다.

전쟁이 어렵다는 것은 돌아가지만 곧장 가는 것보다 빨리 가야하고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라서 일부러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이익을 주는 듯이 적을 유인하며 남보다 늦게 출발하여 먼저 도착하는 이치를 아는 자는 ‘우직지계(迂直之計)’를 아는 자라 할 수 있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 고전 연구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각종 경쟁에서 목적을 달성하려면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함은 물론 여러 요소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일을 급하게 처리하려다가 오히려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성질이 급하면 뜨거운 빵을 먹기 어려운 법이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표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런 마음이나 표정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상인은 틀림없이 가격을 비싸게 부를 것이다. 이것은 ‘이우위직’의 가장 간단한 이치라 할 수 있다.

현명한 지략가는 정치‧군사‧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흔히 이 ‘이우위직’의 계략을 활용한다. 동쪽에 뜻이 있으면 먼저 서쪽을 건드린다. 무엇인가를 빨리 얻고 싶으면 천천히 도모한다. 표면적으로 보아 이런 행동은 이미 정한 목표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지름길이다.

두 군대가 서로 싸우는 전쟁터에서 ‘원근(遠近)’‧‘우직(迂直)’은 공간적인 개념인 동시에 시간적인 개념과도 관련이 있다. 전쟁터에서 공간은 쌍방의 병력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멀지만 허점이 많으면 쉽게 나아갈 수 있고 시간과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에 멀어도 가까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가깝지만 튼튼한 자는 공격하기도 힘들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가까워도 먼 것과 마찬가지다.

삼국시대 위나라 경원(景元)4년인 263년 9월, 위나라 군대는 병사를 세 길로 나누어 촉나라를 공격했다. 진서(鎭西) 장군 종회(鐘會)는 주력군을 이끌고 정면으로 한중(漢中)을 공격해 들어갔다.

양평관(陽平關-지금의 섬서성 면현 서쪽)을 따라 바로 내려가 일거에 검각(劍閣)을 탈취하여 성도(成都)에 압력을 가하려 했다. 촉의 장수 강유(姜維)는 주력을 이끌고 험한 곳에 의지해 위군을 맞아 싸웠다. 종회가 이끄는 군대는 검각에서 저지당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쌍방은 검각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종회가 검각에서 꽤 오랜 시간 공격을 가하고도 이기지 못하자 등애(鄧艾)가 양평에서 좁은 길로 덕양정(德陽亭-지금의 사천성 평무현 동북)을 거쳐 부성(涪城-지금의 사천성 부릉현)을 공격하자고 건의 했다.

부성은 검각에서 서쪽으로 400여 리, 성도에서 300여 리 떨어져 있었다. 검각을 지키는 강유는 부성을 구원하러 나올 수밖에 없었고, 종회는 싸우지 않고도 검각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강유가 부성을 구원하지 않았다면 부성이 한 순간에 함락되었을 것이다.

10월 중순, 등애는 정예군 1만을 거느리고 사람도 없는 땅 100여 리를 행군하면서 산을 뚫고 길을 열었다. 장병들은 모두 절벽을 따라 나무를 잡고 기어올라 줄줄이 전진하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 군대가 부성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등애는 길을 돌아온 것이지만 촉나라 주력군을 피해 지름길을 온 셈이었다. 이로써 일거에 촉을 멸망시켰다. 이것은 ‘이우위직’의 계략을 극적으로 성공시킨 좋은 본보기다.

1234년, 원나라가 금나라를 멸망시킨 전쟁이 있었다. 당시 원나라의 주력군은 유림(楡林)‧보계(寶鷄)를 거쳐 서안(西安)을 점령한 다음 무관(武關)을 나와 등당(鄧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북상해서 개봉(開封)을 공격했다.

1253년, 송을 멸망시킨 전쟁에서 원나라 주력군은 감숙성 임조(臨洮)‧송반(松潘)을 거쳐 운남(雲南)으로 내려가 대리국(大理國)을 멸망시킨 다음, 군대를 돌려 북상하여 장사(長沙)를 거쳐 무창(武昌)을 점령했다.

1934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공장 노동자와 농민들로 구성된 중국 홍군(紅軍)은 눈 덮인 산을 넘고 초원을 지나는 무인지경을 행군하는 악전고투 끝에 항일 전선에 뛰어 들었다. 이상은 모두 양 날개 끝으로부터 크게 우회하는 ‘이우위직’으로 승리를 얻은 경우다.

정치적으로 이 ‘이우위직’을 운용하는 계략은 셀 수 없이 많다. 어떤 정치 목적을 달성할 때, 곧장 들어가거나 곧장 나올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돌아가거나 간접적인 방법을 잘 활용하여 직접적 효과를 보는 것은 모든 정략가와 정치가들이 잘 알고 있는 바이므로 일일이 거론하지 않는다.

 

이정랑의 고전소통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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