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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전투재현, 계백의 5천 결사대 투혼이 만든 감동의 대서사시!논산천 둔치에서, ‘백제의 꿈, 황산벌에서 꽃 피다!’ 주제로 성황리에 펼쳐져…
  • 충청메시지 조성우 기자
  • 승인 2018.09.1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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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논산천 둔치에서 ‘백제의 꿈, 황산벌에서 꽃 피다!’ 는 주제로 개최된 황산벌 전투재현 행사가 영원불멸의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의 투혼을 현대적 감각의 문화예술 공연으로 성황리에 펼쳐졌다.

백제 호선녀와 오악사

퓨전 국악 ‘큰댁어울’ 공연과 강지민 통기타 가수의 식전공연에 이어 오프닝 공연으로 육군훈련소 군악대와 공주대학교 백제 호선녀와 오악사 춤으로 관람객을 매료시켰다.

이날 전투 재현 행사는 ▲제1막 계백 백제의 후예를 만나다. ▲제2막 백제, 전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제3막 계백과 5천 결사대의 출정 ▲제4막 계백의 승전 ▲제5막 야습하는 5천 결사대 ▲제6막 5천 결사대의 가족들 ▲제7막 백제의 굳건한 성책 ▲제8막 관창의 대항 ▲제9막 최후의 전투 ▲제10막 영원히 죽지 않는 계백과 5천 결사대 등 10막으로 관람객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황산벌(연산면 신양리)전투는 1,357년전 660년 7월 9일 백제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전투였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으로 당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당 역시 여러 차례 고구려원정에 실패하자 백제를 선제공격하기 위해 당과 신라가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당시 백제 충신 성충과 흥수는 당군이 백강(금강)에 상륙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이 탄현(식장산(食藏山) 고개)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묵살됐다.

백제군은 백강에 상륙한 소정방의 13만 당군에게 대패했고, 김유신의 5만 신라군은 이미 탄현을 넘어 사비성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의자왕은 계백에게 5천명의 결사대로 5만의 신라군 방어를 명했다. 그는 전장에 나아가기 앞서 “내 처자가 그들에게 잡혀 노비로 사느니 죽음보다 못하다.” 며 처자를 죽이고 전쟁터로 향했다.

계백장군은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워 4번의 승리를 거뒀다. 신라군은 사기가 떨어졌다. 이때 신라 장수 흠춘이 아들 반굴을 적진으로 보내 전사시켜 신라군 사기진작 제물로 삼았다. 그러자 신라 장수 품일도 16세의 어린 아들 관창에게 나가 싸우게 했다.

관창은 백제군과 싸우다가 생포됐다. 계백은 어린 나이로 용감한 관창을 가상히 여겨 살려 보냈으나, 관창은 재차 나와 싸우다 또 붙잡혔다. 그는 관창의 목을 잘라 그의 말안장에 묶어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신라군은 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올라 총공격을 감행했고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패하면서 계백도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전투 재현 출연진은 계백 장군 역에 임혁, 김유신 장군 역에 서범식, 백제평민 역에 논산시립합창단, 전투병에 논산 의용소방대 등 시민과 건양대학교, 우석대학교, 논산공업고등학교, 연무고등학교, 강경상업고등학교, 강경고등학교 학생 들이 참여했다.

논산 시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대동단결 퍼포먼스로 펼쳐진 강강술래와 황산벌 전투재현은 백제의 꿈이 황산벌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동고동락 논산의 지혜와 정신을 담아내는 화합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계백장군 묘

그러나 1358년 전 승자와 패자가 잠든 무덤은 장구한 역사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크다. 패자인 계백에게 후손이 없던 탓일까?

김유신 장군 묘

 

충청메시지 조성우 기자  vip8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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