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전두환은 죽었지만 학살자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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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전두환은 죽었지만 학살자는 살아 있다
  • 김용택 이사장
  • 승인 2023.05.1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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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김용택 세종본부장
김용택 이사장

유신시대 괴물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학살자 전두환정권의 2인자 장세동이 어디에 숨어 살다가 제 시대를 만난 줄 알고 슬그머니 나타나 당당하게 기자들에게 “5.18 직전인 1980년 5월 15일,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 직책으로 광주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악마들이 너도나도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 완장까지 차고 나타나 큰소리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출처 : Zoom 뉴스)

회원 수만 80만명 전국 17개시도협의회와 233개시군구 협의회 그리고 3191개 읍면위원회까지 갖춘 거대조직인 ‘바르게살기협의회’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삼청교육대 후신이다. 

삼청교육이란 명분하에 1981년 1월까지 끌려간 국민만도 무려 6만 755명. '교육' 현장에서 52명, 후유증으로 397명이 사망하고, 정신장애 등으로 2,678명이 상해를 입힌 몸서리치는 단체다. 삼청교육대를 만든 사회정화위원회 후신 ‘바르게살기협의회’다.

어디 삼청교육대뿐인가?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으로 제4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정희가 만든 단체가 통일주체국민회의다. 이 단체는 유신시대 국회의원 3분의 1과 대통령을 선출하던 헌법기관이다. 10.26사태로 박정희가 암살되자 구 후임 최규하와 전두환을 선출하는 역할을 맡은 뒤 해체됐지만 1981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로 출범했다가 1987년 이름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바뀌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새마을 운동 노래는 이 박정희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시대 상징이시도 했던 새마을 운동과 노래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AI시대 쳇 GPT시대에도 아파트며 시도단체 입구에는 새마을 기(旗)가 아직도 유신시대인냥 당당하게 걸려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를 우리나라 3대 관변단체로 불린다. 2023년 성남시는 새마을회 8억, 바르게살기운동 성남시협의회 2억 1천, 한국자유총연맹 성남시지회 1억 6천만 원을 회원의 자녀에게 지원하는 특혜를 주고 있다.

 

<내 남편은 민주주의 아버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전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뤄서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지 않느냐” 1997년 법원이 2000억원의 추징금 납부를 명령했을 때 일부를 납부하고 "예금이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은 그 후 골프를 치며 자서전을 쓰며 41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이런 전두환을 전씨의 아내 이순자는 남편 전씨를 ‘민주화의 아버지’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다.

어디 전씨의 아내뿐인가? 전두환이 수명대로 살도록 도와 준 것은 언론 또한 예외가 아니다. <새역사 창조의 선두자 전두환 장군>. 김길홍 경향신문 기자가 1980년 8월19일부터 4회에 걸쳐 보도한 전두환 찬양 기사 시리즈의 제목이다. 경향신문 보도 이후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인간 전두환>(조선일보), <솔직하고 사심 없는 성품-전두환 대통령 어제와 오늘 합천에서 청와대까지>(중앙일보), <우국충정 30년-군 생활을 통해 본 그의 인간관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동아일보),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육사 입교에서 대장 전역까지>(한국일보) 등 언론사들이 앞다퉈 ‘인간 전두환’ 시리즈에 뛰어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는데 우리 국민들은 왜 그렇게 잊기를 잘할까?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평가되는 박정희정권 18년은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흑역사다. 하지만 우리국민들은 너무 착해서일까? 용서도 잘하고 잊기도 잘한다.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인간을 아직도 제대로 평가조차 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들에게 은혜를 입은 정치인이나 찌라시 언론은 아직도 그들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피로 얼룩진 5·18광주 민중항쟁!>

빛고을 광주를 빼놓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역사는 4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부산과 마산 일원에서 터지기 시작한 부마항쟁은 유신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유신독재 박정희가 김재규 손에 사살당한 후 유신시대 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한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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