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인재(人才)를 길러내겠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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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왜 인재(人才)를 길러내겠다고 하는가
  • 김용택 세종본부장
  • 승인 2023.04.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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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김용택 세종본부장
김용택 세종본부장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착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맡기면서 ‘내 아이를 이러이러한 인간으로 길러주십시오’가 아니라 학교에만 보내면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학교가 길러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근면한 사람? 순종적인 사람?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법 제 2조는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학교가 이런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우리나라에는 일류학교가 좋은 학교다. ‘SKY 대학에 몇 명을 더 입학시키느냐’에 따라 일류가 되기도 하고 2·3류가 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대학은 훌륭한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인재양성’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다. 인재(人才)란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학식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대학이 길러내겠다는 인재(人才)란, 고용주와 고용자 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말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효용가치가 클 때 인재라고 불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내가 소중한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인간이라니....

 

<‘착하다’는 말의 뜻>

‘착하다’란 무슨 뜻일까? 착한 사람이란 “몸가짐이 얌전하고 행동이 차분하여 일을 차근차근하고 무슨 일이든 불평 없이 척척 해내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처럼 취급당한다. 또 “주관이 없는 사람” 혹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을 일컬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주관이 없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지뢰밭이 된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할 말이 있을 때 참고, 나서야 할 때 기다리며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 다들 놀 때도 자기 일은 물론, 남이 부탁한 일까지도 열심히 처리하며 아차 하면 남에게 이용도 당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자본이 필요한 인재란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 비판적인 사람이 아니라 착하기만한 사람을 좋아한다. 4차산업사회에는 순진한 사람,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원리나 원칙을 많이 암기하고 있다고 해서 유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대접받던 시대가 있었다. 농업사회, 그러니까 남을 해코지 하는 일이 없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농업사회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다. 순수한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진화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원리도 경제원리도 사라진 불법과 탈법, 변칙과 위선, 이기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착한 사람이란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안성맞춤이다.

착한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내야 할까? 우리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막가파 세상, 가치혼란의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는가? 학교는 어떤가? 혹 원리원칙이나 가르쳐주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한 사람이 대접받지 못한 세상에 부모나 교사들은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가? ‘쳇 GPT 시대, 4차산업시회에는 순종적이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시비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인간이다. 사랑하는 자녀들, 제자들이 가치혼란의 시대에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만 주입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들은 배운다.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교사는 생각의 주체이고 학생들은 생각의 대상이다. 교사들은 말하고 학생들은 얌전히 듣는다. 교사는 훈련을 시키고 학생들은 훈령을 받는다.’

파울루 프레이리가 쓴 페다고지에 나오는 ‘은행저금식 교육이 낳는 태도와 습관’ 중 일부다. ‘쳇 GPT 시대... 학교는 아직도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 착하기만 한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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