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미국 벗어나기’가 살길…브라질, 유럽의 적극적 탈미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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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미국 벗어나기’가 살길…브라질, 유럽의 적극적 탈미 행보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3.04.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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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과 미국과 문화·인종적으로 가까운 유럽이 뚜렷한 탈미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 중남미가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고, 유럽 각국이 미국에 경제·안보를 기대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올해 들어 미국이 국제사회를 향해 대중국 봉쇄망 동참을 압박하는 가운데, 브라질과 유럽에서는 오히려 중국과 협력·관계 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려는 브라질과 유럽을 들여다보려 한다. 


“달러로 거래할 필요 없다” 중국에 날개 달아준 브라질 

2023년 4월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브라질 정상회담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조인식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브라질이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4월 12~15일)을 두고 여러 언론에서 나오는 평가다. 촘촘히 계획된 룰라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은 그 자체로 미국식 패권 질서가 통하지 않는 세계를 국제사회에 선전하는 효과를 낳았다. 

먼저 지난 12일 브라질은 중국 위안화로 양국 간 거래하는 무역 상품을 첫 결제했다. 룰라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한 뒤 양국은 무역 거래에서 자국 통화를 쓰기로 합의했는데, 룰라 대통령의 방중 시기에 맞춰 성사시킨 것이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같은 날 룰라 대통령은 국회의원 39명, 기업인 수행단 240여 명, 농업 분야 인사 90여 명과 함께 중국의 경제 중심인 상하이를 찾았다. 중국을 찾은 국가의 정상이 수도인 베이징이 아닌 다른 곳부터 방문한 건 이례적이다. 룰라 대통령이 중국과 긴밀하게 경제 협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장면이었다. 

상하이를 찾은 룰라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인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부터 만났다. 룰라 대통령은 호세프 전 대통령이 중국 상하이에 거점을 둔 브릭스 신개발은행(NDB)의 신임 총재로 취임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브라질 측이 중국 측과 조율해 룰라 대통령 방중의 의미를 극대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브릭스(BRICS,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설립된 경제협의체) 회원국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체제에 대항하겠다며 상하이를 거점으로 신개발은행을 설립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브라질의 전임 대통령이 새 총재로 발탁된 것이다. 

룰라 대통령은 호세프 총재와 서로 힘껏 껴안은 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녁마다 나는 여러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왜 모든 국가가 달러로 결제를 해야 하는지, 위안화나 다른 화폐로 결제할 수 없는지, 왜 브릭스 국가들은 각자의 화폐로 결제를 할 수 있는지 등이다. 나는 또 왜 브릭스 회원국 은행들이 자체 화폐로 차관을 제공할 수 없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모두 달러화 사용이 익숙하겠지만 우리는 21세기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호세프 총재도 브릭스 국가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면서 “브릭스 국가뿐만 아니라 신흥국가와 개발도상국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화답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가 발표한 무역금융자료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위안화가 국제 무역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지난해 같은 시기인 2%에서 2배 이상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이는 달러와 유로화에 이은 국제 거래화폐로써 위안화의 성장 잠재력을 보여준다.

전직 브라질 대통령 출신인 호세프 총재가 브릭스의 통화·금융 정책을 이끌게 되면서 브릭스, 중남미를 중심으로 한 탈달러 움직임이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룰라 대통령은 신개발은행 방문을 마친 같은 날 오후에는 미국이 강력히 제재하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상하이 연구개발센터를 찾았다. 미국이 뭐라고 하든 말든 중국과 갈 길을 가겠다는 국제사회를 향한 선언으로 풀이됐다.

이를 두고 미국 유력매체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을 짜증나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13일 룰라 대통령은 중국 관영 CCTV와 대담에서 세계의 평화와 기후 위기 등을 더 강력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중국과 함께 ‘국제관계의 민주화’에 나서겠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은 또 “미국과 유럽이 한 세기 동안 식민침탈을 했다”라고 쏘아붙였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중국·브라질 정상회담이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0년 만의 세계 대변혁 국면을 맞아 두 나라는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다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라면서 “유엔과 브릭스,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의 틀 안에서 협력을 강화하자”라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도 “네 번째로 중국을 방문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특별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강해지고 있다”라면서 “브라질과 중국은 모두 다자주의와 국제(사회의) 공평·정의 수호를 원한다”라고 화답했다.

양국은 49개 항으로 된 ‘중국·브라질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 14개 항으로 된 기후변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무역과 투자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서방 선진국을 향해 온실가스 배출에 역사적 책임을 지라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룰라 대통령이 시 주석의 손을 힘차게 잡고 활짝 웃었다.

중국 한복판에서 미국을 때리는 룰라 대통령의 행보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거침없었다. 

지난 15일 룰라 대통령은 중국에서 아랍에미리트(UAE)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미국은 전쟁 선동을 멈추고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 유럽과 EU도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라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무기를 공급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나라들을 설득해 이를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에 서방에 있다고 직격한 것이다. 

15일 YTN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견제하려는 중국과, 거대 시장인 중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브라질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면서 “중국은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라고 전했다. 

앞으로 브라질과 중국의 연대는 룰라 대통령과 호세프 총재를 중심으로 이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에 이은 유럽중앙은행의 탈미 행보 

사실 룰라 대통령의 ‘중국에서 미국 때리기’에 앞서 유럽의 인식을 가늠해볼 사례가 있었다. 바로 지난 5~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 방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 이전부터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 기간 동안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20건이 넘는 수조 원 규모의 사업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시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오늘날 세계가 역사적 변화를 겪고 있다”라며 “중국과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주체적 전통을 가진 대국으로 국제 민주화의 확고한 추진자”라면서 “탈동조화와 (산업·공급)망 단절은 중국의 발전을 막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마크롱 대통령도 “탈동조화와 망 단절에 반대한다”라면서 “우리는 중국과 상업적 관계를 계속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프랑스 경제전문매체 레제코 등과 공동대담을 나눴다. 대담에서는 미국을 향해 더욱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대담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 사이에서 긴장이 과열되면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시간이나 자원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결국 속국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세계 정상 가운데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 평가한 건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이다. 또 마크롱 대통령의 ‘속국 발언은’ 대중국 봉쇄망과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을 내놓으며 연신 유럽을 압박해온 미국의 손아귀에서 더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유럽이 어느 한편의 추종자가 돼 미국의 장단과 중국의 과잉반응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최악”이라며 “유럽은 대만을 둘러싼 위기를 확대하는데 관심이 없으며 미·중 쌍방에서 독립된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미국 의존을 억제하기 위해 달러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꺼냈다.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이 귀국한 뒤 유럽연합(EU) 안팎에서 이른바 ‘친중’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 중이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맹이 곧 속국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 

위 발언은 미국이 깔아놓은 대중국 봉쇄망의 ‘졸’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돌아보면 지난날 마크롱 대통령은 EU에서 가장 먼저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온 반중 인사였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돌변’한 건, 미국의 추락이 가팔라지고 중국이 떠오르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도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미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16일(현지 시각)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미국 유력방송 CBS와 한 대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 무역에서 대립하면 안 된다”라면서 “무역, 정치, 경제 발전, 금융 안전 등 모든 관계는 양방향이다. 우리는 서로를 무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봉쇄망을 두고 “경제 성장을 감소시키고 세계 번영을 줄이며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빈곤을 초래할 것이다.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EU의 금융·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중요 직책이라는 점에서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조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출신인 라가르드 총재의 발탁이 EU 내 양대 강국인 프랑스와 독일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9년 11월 유럽중앙은행 총재 자리가 프랑스의 몫으로 돌아가자, 다음 달인 12월 EU의 행정을 책임지는 집행위원장 자리는 독일 국방부 장관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맡은 바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4월 마크롱 대통령과 나란히 중국을 방문해 한목소리를 냈고, 이는 프랑스의 탈미·친중 행보가 독일과 조율된 것임을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 또한 EU 차원에서 결정된 탈미·친중 행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와중에 미국 발 도청 사태가 또다시 발각되면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앞으로도 각국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중국과 연대하는 세계 다극화의 날씨가 ‘맑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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