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달러가 위협받고 있다” ‘기축통화 달러’ 정말 무너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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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달러가 위협받고 있다” ‘기축통화 달러’ 정말 무너질까?
  • 박명훈 자주시보 기자
  • 승인 2023.04.2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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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좁아진 달러의 앞날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줄곧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던 ‘기축통화 달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기축통화란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로, 지금은 달러가 국제사회의 유일한 기축통화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하는 의미 있는 현상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자료상으로 국제통화 사용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달러의) 국제 통화 지위가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제안한다.”

18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의 금융‧통화 정책을 이끄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미국 외교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 경제‧금융‧안보 등 모든 면에서 더 뚜렷해지고 있는 미중 갈등으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대중국 봉쇄망을 펴는 가운데 라가르드 총재는 오히려 중국 중심 공급망이 무너지는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핵심 소재 14개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과, 희토류의 89%를 중국에서 들여오는 유럽이 받는 피해가 크리라고 내다봤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중 갈등으로 많은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있어 달러의 지위가 국제무대에서 이미 위협받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달러의 지위 하락에 관해서는 미국의 솔직한 시각을 더 들여다보자.

앞서 지난 16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CNN과의 대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가 오히려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를 비롯해 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위안화 등 다른 대안 통화로 국제무역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옐런 장관은 이 때문에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러와 연결된 금융 제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러의 패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라고 인정했다.

라가르드 총재와 옐런 장관의 시각은 미국이 대중국 봉쇄망과 대러 제재로 사실상 ‘자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SLJ 자산운용의 외환 전략가인 조아나 페레이리와 스테판 젠은 보고서에서 달러의 위상 추락을 보여주는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첫 번째 근거는 준비금 비중 하락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전 세계 준비금의 73%를 차지했던 달러의 비중은 2021년 들어 55%로 떨어지더니 2022년에는 47%로 곤두박질쳤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달러를 준비금으로 쌓아두고 국가의 경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대비해왔는데 이런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23년 기준 달러가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4%를 넘고, 각국이 위기를 대비해 쟁여둔 외환보유금으로써의 입지도 아직은 가장 크다.

 

하지만 달러의 추락이 상상 이상으로 빠를 수 있다는 징후도 감지되고 있다.

위 보고서는 두 번째 근거로 달러의 준비금 비중이 국제사회에서 매우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점을 들었다. 보고서는 “(달러의 준비금 비중이) 1년 만에 8% 하락한 것은 매우 예외적이며, 이는 연간 평균 하락 속도의 10배에 해당한다”라고 경고했다.

이는 ‘믿을 건 달러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던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에 금이 갔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펴낸 시사경제용어사전에 나오는 기축통화의 정의를 살펴보자.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①군사적으로 지도적인 입장에 있어 전쟁으로 국가의 존립이 문제시되지 않아야 하며, ②기축통화 발행국은 다양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③통화가치가 안정적이며, ④고도로 발달한 외환시장과 금융‧자본시장을 갖고 있어야 하며, ⑤대외거래에 대한 규제도 없어야 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정의를 주목해보면 미국의 군사적 지위는 지난 2021년 7월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결정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후 미국의 지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부상 등으로 더욱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러 제재의 효과도 신통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러시아는 중국과 손을 잡고 양국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를 향해 대중 봉쇄망에 동참하라며 열을 올리던 미국의 기대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표 사례로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할 수 있게 보장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위안화로 석유를 거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지난해 2%였던 위안화의 국제무역 비중은 올해 들어 4.5%로 껑충 뛰어올랐다. 

 

달러의 추락과 위안화의 부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아랍에미리트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위안화로 거래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달러로만 결제되던 LNG가 위안화로 거래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룰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달러가 국제사회의 화폐라고 누가 결정했나”라고 미국을 비판한 브라질은 지난 4월 13일부터 중국과의 무역 거래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를 받고 있다.

점점 위안화로 결제를 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추세대로면 위안화가 국제무역 비중에서 6% 안팎을 차지하는 유로화를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로 예상된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달러에 그동안 본 적 없던 ‘빨간 불’이 들어온 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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