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의의 여신은 어디에?
상태바
[기고] 정의의 여신은 어디에?
  • 주영진 법무사
  • 승인 2023.03.29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0년 미국에서 강력한 펀치력으로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권투선수 루빈 카터는 일

(다힘법무사) 주영진 법무사

급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는 종신형이었다. 1966년 뉴저지주 패터슨 의 한 식당에서 3명의 일행에게 총을 쏴 살해한 혐의로 친구인 존 아티스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경찰은 카터가 타고 있던 차에서 범행에 사용된 탄약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카터의 지문 이 나오지 않았으며, 또한 카터를 대상으로 파라핀 테스트를 시행한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흑인이 싫었던 백인의 거짓 증언과 경찰의 증거 조작 때문에 그는 이 같은 판결을 받아야 했다.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그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무시했다.

세계 챔피언의 문턱에서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수감 규칙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다.”라며 죄수복과 갱생 프로그램을 거부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법을 공부하며 무려 22년이란 긴 기간 동안 스스로에 대한 구명운동을 펼쳤다. 1975년 밥 딜런 이 카터를 소재로 하여 만든 노래인 Hurricane 을 발표했으며, 1999년 덴절 워싱턴 이 카터를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 작품인 ‘허리케인 카터’가 상영되었다. 무하마드 알 리가 루빈의 구명 활동을 편 것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계기는 1974년 미국 뉴저지, 11세의 소년 레사라 마틴은 서점에서 우연히 ‘16라운드’라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 루빈 카터의 실화를 소재로 한 책이었다.

그는 1988년 미연방대법원에서 재심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주 정부와 검찰을 상대로 한 국가배상 소송은 포기했다. 아니 거부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필자가 수습 딱지를 떼고 사회부에서 특정 경찰서를 취재하라는 보임을 받았다. 그런데 부임 첫날, 사고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해당 경찰서에서 내사자를 여관에 데려가 취조를 하다가 고문을 가한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참혹한 고문을 당한 사람은 그 여관을 나와 자신이 고문당한 사실을 터뜨렸다. 이때는 권위주의 정부가 집권을 하던 때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선 경찰은 과거의 유습에 젖어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고문을 해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을 끌어내려고 했다.

스탈린이 사망 후 소련 정보기관인 KGB의 수장이었던 베리야는 비밀연설에서 “우리는 고문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사실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진실은 알아낼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고문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짓이다. 권력기관의 횡포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우리에게는 저 지난한 80년대를 통과하면서 쌓아온 찬란한 민주화의 전통이 있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우리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을지언정 ‘내면의 성채’에 까지 침범하지는 못한다. 제논의 스승인 스틸포는 “이 내면의 성채가 외적 요인에 의해 파괴될 수 없으며 단지 굴복할 뿐”이라고 했다. 굴복하지 않으면 여전히 우리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 일 수 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