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강제동원’으로 몸집 불린 일제 군국주의, 그 부활을 돕는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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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강제동원’으로 몸집 불린 일제 군국주의, 그 부활을 돕는 윤석열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3.03.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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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식 강제동원 해법안’의 문제점

윤석열 정권이 일본에 면죄부를 준 이른바 ‘강제동원 해법안’을 내놓더니 굴욕적인 한일정상회담까지 벌였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정부에 감사하다”라고 했다.

일본은 ‘조선인들이 돈을 벌려고 알아서 지원했다’면서 일제 강제동원을 아예 없던 일로 덮으려 한다. 피해자가 살아 있는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우기고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일본 스스로도 강제동원이 떳떳하지 않은 전쟁범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극우 세력은 일제 패망 이후 단 한 번도 강제동원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통치가 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강제동원도 합법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일제가 벌인 잘못을 일부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하긴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와 배상은 하지 않았다. 이후 아베 정권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했다’며 강제동원 자체를 극구 부정했다.

지난 3월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정상회담 이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해법안에 관해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면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라고 밝혔다.

역대 내각의 입장에는 강제동원을 부정한 아베 정권도 포함된다.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을 인정할 생각도, 사죄할 생각도 전혀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전쟁을 위해 자행된 강제동원

이 글에서는 일본이 그토록 덮으려 하는 강제동원의 참상은 어땠는지, 일본 편을 든 윤석열 대통령의 친일·매국 행보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어떻게 돕는지 들여다보려 한다.

강제동원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피해와 고통을 입었다는 의미가 있다. 피해자 단체, 생존자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라는 표현을 쓴다.

언뜻 강제동원과 비슷해 보이는 ‘강제징용’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징용이란 국가가 강제로 국민을 모아 노동을 시켰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주로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에는 ‘일제가 합법 지배한 조선인에게 정당한 노동을 시켰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본이 선호하는 징용공이라는 말에서는 광산, 군수공장, 전쟁터 등에서 희생당한 ‘식민지 조선인’의 상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큰 틀에서 보면 종군 ‘위안부(일본군 성노예)’도 강제동원 피해에 해당하는데, ‘위안부’ 피해를 강제징용으로 볼 수는 없다.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인 정혜경 박사는 “징용은 노무자 동원 중 하나의 경로이기 때문에 전체 역사성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강제동원이라고 해야 적절하다”라고 밝혔다.

강제동원은 일제가 벌인 전쟁범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쟁 물자 수탈에 혈안이 된 일제는 조선인에게서 놋수저, 요강, 곡괭이뿐만 아니라 소가죽으로 쓰겠다며 소까지 닥치는 대로 빼앗아갔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시작하고 1938년부터 국가총동원령을 내렸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가던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 무렵, 조선 전체 인구는 대략 2,500만 명이었다. 이 기간에 무려 79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조선, 일본 안팎으로 강제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강제동원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국가총동원체제로 개편하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모집’, ‘관 주도’, 징용,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선인을 강제동원하였다. ...(중략)... 조선 국내지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남양군도(현 미크로네시아) 등에 총 7,879,708명(국내[한반도] 6,126,180명, 국외 1,390,063명, 군인·군속 363,465명)이 동원되었다. 강제동원은 동원된 이후 조선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노무동원(노동자, 군속,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병력동원(군인), 성동원(일본군 ‘위안부’, 10만 명 이상 동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제는 구역, 지역별로 반드시 강제동원할 인원을 정해뒀다. 가지 않겠다고 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고통스러운 처벌을 받아야 했다. 조선인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돼야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강제동원의 중요한 특징은 일제와 전범기업이 한통속이었다는 점이다. 일제와 전범기업은 ‘취업을 시켜주겠다, 공부를 시켜주겠다’ 같은 거짓말로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양금덕 할머니(95살)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일본 나고야항공제작소에 끌려가 페인트칠, 부품 닦기 등 모진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강제동원 당한 과정을 이렇게 돌아봤다.

 

“교장이 하는 말이 여기 6학년 중에서 ‘누가 급장을 하고 있나?’ 급장 이름을 물으니 담임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 손들고 일어섰는데 ‘급장이 가야 밑에 사람이 갈 것 아니냐?’(라고 했어요.) 그것도 강제지. 내가 가고 싶어야 가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집에 가서 ‘아버지 내가 일본을 가게 됐어요,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중학교도 보내준다’고 하니 (아버지가) ‘가면 죽는다’고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나고야에 가서 강제동원을 하는데) ‘왜 학교를 보내주지 않습니까?’ 물으니 한 달 뒤에 보내준대. 한 달을 지내고 또 물어보니 그때는 나도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고. 그때 처음으로 비행기 만드는 공장인 걸 알았지.” (「“나, 양금덕”... 강제동원 피해 15년의 기록 - 뉴스타파 목격자들」, 뉴스타파, 2023.3.22.)

양금덕 할머니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대우를 받는 등 차별도 분명했다고 밝혔다. 일제 패망 이후 양금덕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이들도 많았다.

국민을 배반한 윤석열 정권의 강제동원 해법안 발표 뒤 양금덕 할머니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인가. 일본 대통령인가. 일본을 위해서 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을 위해 사나”라면서 “나는 그런 돈은 곧 죽어도 굶어 죽어도 안 받겠다”라고 외쳤다.

 


일제 군국주의 부활로 이어질 ‘강제동원 부정’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3월 14일, 일본 보수 유력지 요미우리신문과 대담에서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했다. ‘아름다운 나라’는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 세력이 일본을 미화하는 표현이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한국 정부는 1965년도 (대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정부의 재정으로 처리했다”라면서 “그러나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과 정부의 1965년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2018년 일본 전범기업을 향해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명령한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부정한 것이다.

한일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자 지난 3월 21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라면서 오히려 일본을 두둔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이런 윤 대통령의 망언에 힘입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는 다 끝난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끝난 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일제 군국주의를 키운 일본의 기득권이 지금도 그대로 권력을 잡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쓰비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전 총리 아베 신조와 아소 다로, 현 총리 기시다 후미오 등 정치 권력을 쥔 일본 자민당의 유력 인사들은 대부분 전시 강제동원에 적극 가담한 기업가, 정치인의 후손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지지율이 1%가 되더라도 강제동원 해법안을 내놓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아소 전 총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으로 악명 높던 아소탄광 경영주의 직계다.

강제동원은 전범국 일본이 저지른 악랄한 전쟁범죄다. 일본의 편을 들어 강제동원을 부정한다는 건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상 강제동원을 부정한 ‘윤석열식 강제동원 해법안’이 곧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로 이어지는 이유다.

강제동원 해법안 발표 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까지 앞다퉈 성명을 내며 극찬했다. 윤 대통령이 가해국인 일본에 허리를 굽히면서 한·미·일 군사 협력,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지난 2012년 아베 정권 들어 극우화가 빠르게 진행된 일본은 전쟁 금지, 정규군 보유 금지를 명시한 평화헌법 개정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당장 평화헌법 개정이 여의치 않자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꼼수로 자위대가 일본을 벗어나 군대처럼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방이 일본을 공격할 징후가 보이면 적의 기지를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이른바 ‘반격능력’을 검토했다.

지난 2022년 12월, 일본이 개정한 안보 3대 문서는 일본 극우 세력의 노골적인 ‘한반도 재침략 의지’로 가득하다. 미사일과 자위대를 동원한 선제타격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이 북한에 반격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가정해 “반격능력 행사는 일본의 자위권 행사로 다른 국가의 허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면서 “한국과 협의를 하거나 사전에 허가를 얻을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개입 의사를 노골화한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반격능력을 보유하겠다고 한 일본의 고민을 이해한다’라며 용납할 수 없는 망언을 내놨다.

지금 상황에 비춰 돌아보면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도 있다”라고 한 발언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일정상회담 뒤 윤석열 정권은 일본 언론에서 기시다 총리가 만찬 당시 윤 대통령에게 독도, ‘위안부’ 관련 언급을 했다는 보도를 쏟아내도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자위대가 독도 상륙작전을 벌이거나 평화의 소녀상이 전국에서 철거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본 극우 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알아서 일본의 강제동원 전쟁범죄를 덮고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운운하는 ‘제2의 이완용, 윤석열’은 무척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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