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233] 한일관계 속도전, 왜 이러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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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233] 한일관계 속도전, 왜 이러나 ②
  •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3.03.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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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일관계를 속도전으로 가져가는 미국


지난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정부는 국내 재단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하였다. 박 장관은 국내 의견 수렴과 일본과의 협의 결과를 토대로 결정했다고 하였다. 배상금을 대신 지급할 국내 재단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 재단 기금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다고 한다. 죄는 일본 기업이 저질렀지만 배상은 한국인이 하겠다는 결정이다. 박 장관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각계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국이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여론도 들끓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3월 첫째 주에 42.9%였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둘째 주에 38.9%로 무려 4% 포인트나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36%에서 34%로 떨어졌다. 또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을 반대하는 의견이 59%로 찬성 35%를 훨씬 앞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7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취임 초부터 외교부에 해결 방안을 주문했고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통해 우리 정부의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국민들께 약속한 선거 공약을 실천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지해달라”라고 하였다. 물러설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실은 12일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는 명패를 부각하며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7일 보도를 통해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한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를 만났을 때 “지지율이 10%까지 떨어지더라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라고 말했음을 밝혔다. 또 머니투데이는 7일 한 여권 관계자 말을 인용해 “윤 대통령이 한번은 식사 자리에서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고 하더라”라고 보도하였다. 

이를 보면 윤 대통령도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이 지지율을 폭락하게 할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밀어붙인 것은 자기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요구임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강제 동원 해법을 발표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시각으로 한밤중에 환영 성명을 발표해 “오늘 발표된 한일 간 강제 동원 피해 배상안은 미국과 가장 가까운 두 동맹국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에서 신기원적인 새 장을 여는 일이다”라고 극찬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밤중에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미국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말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도 각각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부터 국무부, 백악관, 주한 미 대사까지 모두 나서서 한국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나를 비롯해 국무부 고위 관료들이 이 중대한 파트너십에 많은 시간과 집중적인 노력을 투입”했다고 하여 이번 사건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또 백악관은 곧바로 윤 대통령을 4월 26일 국빈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마치 ‘큰일’을 해냈으니 치하라도 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처럼 이번 강제 동원 해법 발표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를 받은 윤 대통령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라 하겠다. 

 


2.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의 의미

 

미국은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한일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나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것은 한국 국민이 원하는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국민은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하고 충분히 배상하며, 독도 영유권 주장을 내려놓고 군국주의화를 멈추며, 수출규제를 푸는 것이 한일관계 개선이라 여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나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은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환영 성명에 노골적으로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도 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미국이 바라는 한일관계 ‘개선’은 결국 한·미·일 삼각동맹을 실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양국 간 조치가 완전히 실현될 때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향한 우리의 공통된 비전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이란 반중 전선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반대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빨리 구축하자는 게 미국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강제 동원 해법 발표의 배경에 관해 6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은 결국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계 상에서 안보를 확실하게 하는 방향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고 그런 차원에서 상당히 훼손된 한일관계를 빨리 정상화하고 한·미·일 3국 공조를 정상화하는 것이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 안에선 상당히 핵심적 부분”이라고 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니 미국 편에 확실히 서서 한·미·일 삼각동맹을 실현하는 게 안보를 지키는 길이며 이를 위해 일본에 굴복했다는 말이다.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 구상을 세우고 추진한 건 수십 년도 더 된 얘기다. 한·미·일 삼각동맹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그래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갑자기 미국이 ‘급발진’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심각한 경제 문제가 있다. 

 


3. 파국으로 가는 미국 경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는 최신 저서 『초거대 위협』(박슬라 역, 한국경제신문, 2023.)에서 지금이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고물가 경기 침체(스태그플레이션) 당시보다 형편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8일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주요한 새로운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번 경기 침체는 짧고 얕은 것이 아니라 깊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하였다. 올해 3월 3일에도 한 방송에 출연해 올해 스태그플레이션형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올해 1/4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미친 듯이 올려 물가상승을 둔화시켰다고 평가한 미국은 2월 금리 인상 폭을 낮췄다. 계속 금리를 높이면 경기 침체가 오기 때문에 속도 조절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월 7일(미국 시각)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물가상승을 잡는 과정은 멀고 험난한 길이 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했다. 2월에 금리 인상 폭을 낮춘 게 실수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10일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갑자기 파산하고 이틀 후 시그니처은행도 문을 닫으면서 연준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브래드 거스트너 알티미터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두 은행 파산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 고문은 지금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고물가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사이에도 전 세계 금융주는 폭락을 이어가 이틀 만에 시가총액 608조 원 이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SVB 붕괴에 세계 금융주 급락…이틀 만에 시가총액 608조원 증발」, 연합뉴스, 2023.3.14.)

물론 미국 경제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 경제에 경고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2020년을 전후로 심각한 대 파국이 온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2019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쟁점을 삼켜버렸다. 경제 위기는 코로나 때문이며 전염병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으니 경제 위기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가 먹혔다. 

독점자본가와 정부 관료들이 경제 위기의 책임을 코로나 사태에 떠넘겼다는 주장은 전부터 있었다. 

김성구 한신대 명예교수는 2020년 3월 24일 참세상에 기고한 「공황을 촉발한 코로나19, 공황의 원인은 아니다」에서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공황이 온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코로나는 공황의 촉발 요인일 뿐이지 공황을 가져온 원인은 아니다”라며 “정책당국자들에게는 공황과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전염병 탓으로 돌릴 수 있어서 다행스러울지 모른다”라고 주장했다.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도 2020년 3월 23일 매일노동뉴스 칼럼 「세계경제대공황이 다가온다」에서 “(언론은) 감염병 사태를 이용해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가계급과 자본가계급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앤디 시에 전 모건스탠리 수석 경제분석가는 2020년 3월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칼럼을 통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원인이라기보다 방아쇠일 수 있다. 중앙은행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며 세계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도 2021년 1월 1일 「모든 위기가 코로나 탓? 기업·자영업자는 전부터 힘들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 직전 통계자료를 통해 이미 경제는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입증했다. 

한편 코로나 사태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속에서도 독점자본가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 양극화를 심화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테크노킹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이사회 의장은 2020년 한 해 동안 재산을 각각 1,320억 달러, 700억 달러를 늘렸다. 둘이 합쳐 한화로 217조 원이나 늘린 셈이다. 세계 부자 순위 1, 2위를 다투는 이들의 재산 증가량은 세계 140개국 전체 총생산(GDP)보다도 많다. 미국 인구의 0.0002%도 안 되는 부자 651명의 재산 증가량도 1조 달러에 육박한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서 경제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고 미국은 모든 것을 ‘러시아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운 건 러시아 때문이다’라며 독점자본가나 정부로 화살을 겨누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난방비가 폭등했지만 한 편으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면서 한 편으로는 ‘러시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러시아를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활용해 유럽 경제를 끌어내리고,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도록 길들였다. 특히 유럽연합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은 그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의 자원에 의존해 경제를 발전시켜왔다가 이번에 큰 피해를 보았다. 

미국 경제는 독점을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에는 협력과 공동의 이익 같은 개념이 없다. 오로지 상대를 무너뜨리고 약탈해야 살아남고 발전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적대적인 국가는 물론 유럽, 일본 같은 동맹도 미국의 시각에서는 협력할 대상이 아니라 약탈의 대상이다. 당장 러시아나 중국을 약탈할 수 없을 때는 동맹을 약탈하는 게 미국에 있어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 

원래 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 대러 제재를 가했다. 그런데 전 세계가 여기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다. 특히 유럽은 에너지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대러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나라들이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전쟁은 적아를 선명하게 구분한다. 만약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러시아 편으로 오인당할 수 있으며 자칫 미국을 적으로 삼게 될 수도 있다. 마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많은 나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것과 같다. 

이렇게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을 길들였고 또 자국산 가스를 4배나 비싼 가격으로 유럽에 팔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러니 미국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길 바랄 것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지도 않으면서 겨우 전쟁을 유지할 정도로만 무기를 공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정 없이 지속될 수는 없다. 미국은 러시아를 대신해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길 새로운 대상이 필요하다. 미국의 다음 ‘욕받이’는 중국이다. 

 


4. 제2의 우크라이나 만들기


미국은 자국 경제를 위해 중국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여긴다. 미국 무역적자의 대부분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 2017년 기준 미국의 무역 적자는 약 8,600억 달러인데 그 가운데 중국을 상대로 한 적자가 약 4,000억 달러로 전체 적자 가운데 약 46%를 차지한다. (자료원: 세계은행)

이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7월 중국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5G 통신과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에서 앞서가는 화웨이, 틱톡 등 중국 기업을 제재하기도 했다. 또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지역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무역 전쟁에 체제 대결의 성격까지 섞었다. 미중 무역 전쟁은 바이든 정부로 넘어와서도 계속되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반도체와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까지 가하여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을 완전히 퇴출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미국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당장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슈퍼을’ ASML 보유국 네덜란드, 美에 반기…“中에 반도체 장비 팔 것”」, 머니투데이, 2022.11.23.) 

사실 이미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중국과 교역량을 늘리며 경제적으로 밀착해있으며, 특히 산업 측면에서 세계는 세계적 가치 사슬(GVC), 세계적 공급망으로 완전히 얽혀있어 중국과 등질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을 맹신하는 한국조차 제1 교역국이 중국이기에 대중 제재에 동참하면 경제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제2의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서야 유럽 등이 대러 제재에 진지하게 임한 것처럼, 중국과 전쟁이 터져야 세계 각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중 제재에 성실히 동참할 것이라고 미국은 여길 것이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역할을 할 곳은 대만이다. 대만이 미국 대신 중국과 전쟁을 하면 미국은 중국을 맹비난하며 전 세계에 대중 제재 동참을 강요할 것이다. 그렇게 중국을 세계 경제에서 고립시키면 미국이 다시 세계 경제를 틀어쥐고 ‘대장’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대만은 우크라이나에 비하면 군사력이 형편없이 약하다. 전문가들은 미국 개입 없이 중국-대만 전쟁이 발발하면 대체로 한 달 안에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것으로 본다. 심지어 72시간 만에 점령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쟁이 너무 빨리 끝나면 대중 제재 명분이 사라진다. 이미 끝난 전쟁을 이유로 세계 각국이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 대중 제재에 동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대만 전쟁에도 직접 참전하지는 않고 무기만 제공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여러 보고서가 나왔지만 참전해봐야 미군이 피해만 볼 뿐 중국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칫 미국과 중국 사이에 본토를 겨냥한 핵미사일이 오가는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에 미국은 결코 참전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 대만에 특수전 부대와 해병대 등을 파견해 훈련을 시키고 있다.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군을 훈련한 것과 비슷하다. 2월 23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앞으로 수개월 내로 대만군 훈련을 지도할 미군 수를 100~200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현재는 약 30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대만 군사력 격차가 너무 커서 대만군을 훈련하고 무기를 쥐여주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토를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것처럼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어 대만을 지원해야 한다. 아시아판 나토는 유럽의 나토와 달리 직접 참전해 대만을 도울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상황에서 유럽의 나토와 같이 구체적인 기구 형태의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기는 어렵다. 중국과 척질 것을 각오하고 동참할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4일(미국 시각)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레이건 국가 방어 포럼 기조연설에서 “아시아판 나토나 반중 연합을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구를 만들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오커스(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의체),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안보협의체) 등 유사한 동맹 기구를 다층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가운데 대만을 지원할 아시아판 나토는 결국 한·미·일 삼각동맹이 될 것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은 북한을 겨냥한 동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의 반발에서 비켜날 수도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해 10월 26일 일본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대만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할 것이며, 대만의 자위를 보장하기 위해 일본 및 한국과 협력할 것이다”라고 하여 대만 전쟁 발발 시 일본, 한국을 앞세울 뜻을 이미 밝혔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하는 데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한일관계다. 그래서 미국은 한일관계를 빨리 정리하라고 양국을 압박하였다. 이런 압박은 주로 한국에 더 가혹하게 작용하였다. 왜냐면 미국 처지에서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한일 갈등 상황에서는 자연히 일본 편을 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미국은 한국이 항의하거나 말거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여 논란을 빚었다. 

다시 말해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둘이 빨리 화해해”라고 압박하면 일본이 한국에 “형님이 빨리 화해하라잖아”라고 더 압박하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한일관계를 정리하라는 미국의 압박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미국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촛불 정부’를 표방했기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2019년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까지 하자 반일 감정이 폭발하였다. 한일관계는 ‘개선’은커녕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 「죽창가」를 공유하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였다. 

미국은 발끈하였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핵심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력에 문재인 정부는 결국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하였지만 그렇다고 한일관계를 ‘개선’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볼 때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 아닌 이재명이 당선되었다면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모습이 계속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최대한 한일관계를 속도전으로 풀어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기시다 일본 총리와 오므라이스에 맥주를 마시며 ‘임기 내 한일관계를 전례 없이 진전시키겠다’는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尹·기시다, 어젯밤 긴자 노포서 ‘화합주’ 의기투합」, 연합뉴스, 2023.3.17.)

미국이 한일관계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5. 제2의 젤렌스키 만들기


오늘날 전쟁은 총력전이다. 군대만으로 전쟁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가 국력을 총동원해 전쟁을 수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치적 안정이다. 정국이 혼란하고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면 전쟁에 집중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를 보면 신생 국민의일꾼 정당 소속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후보는 2019년 4월 21일 대선 결선 투표에서 무려 73.19%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의회를 해산하고 7월 21일 조기 총선을 실시, 여당(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기에 젤렌스키는 대통령 당선 후 국민의일꾼을 탈당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여당은 아니다)인 국민의일꾼이 450석 가운데 254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과 내각에 배우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을 대거 기용해 친위 체제를 구축했다. 이처럼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는 총력전에 대비한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상태였다. 

대만 전쟁을 바라는 미국은 대만과 대만 편으로 참전할 일본, 한국이 총력전을 대비하도록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윤 대통령이 국가를 완전히 장악해 대만 전쟁에 안정적으로 참전할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젤렌스키와 비슷한 면이 많다. 정치 신인인데 곧바로 대통령이 된 것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불리한 상황에서도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점도 그렇다. 미국은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날리면’ 운운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겁 없이 날뛰는 것을 좋게 평가했을 수 있다. 전쟁에 뛰어들려면 그 정도의 무모함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 [출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해주기 위해 안으로는 국힘당을 윤 대통령 친위 체제로 만들고 밖으로는 정치적 경쟁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제거하려 하였다. 

먼저 국힘당 내 비윤, 반윤 세력을 몰아내 친윤 일색으로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이준석 전 당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도 무리수였다. 재판까지 가서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 정지까지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후 새로운 당 지도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경선 규칙을 바꿔 유승민을 밀어내고,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나경원을 주저앉히고, 안철수를 맹공해 결국 억지로 친윤 지도부를 세웠다. 

이렇게 무리하게 친윤 지도부를 세우다 보니 투표 과정에 부정선거 논란까지 불거졌다. 황교안 후보가 운영하는 유튜브 황교안TV에 8일 올라온 영상 「국민의힘 경선 투표조작 빼박 증거」를 보면 국힘당 전당대회 개표 참관인이 실시간 투표자 수와 투표율 업데이트 상황을 유튜브로 생중계하자 당 기획조정국에서 영상을 내리도록 강요했고, 5초마다 갱신되는 투표자 수가 50명, 40명, 50명, 40명 등 정확히 10의 배수로만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대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황교안이 이번에도 엉터리 주장을 한다고 치부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 대표 경선까지 나온 사람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데 당에서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부정선거가 엉터리 주장이라면 당에서 깔끔하게 해명하면 더 이상의 논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투표 과정을 생중계하지 못하게 막았는지, 왜 투표자 수가 10의 배수로만 올라가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만약 당권 장악을 위한 무리수가 민주당에서 일어났다면 조·중·동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연일 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국힘당 내 비민주적인 상황, 대통령실이 당무에 개입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저 흥밋거리, 당 대표 선거의 흥행 변수 정도로 취급하며 공격하지 않았다. 

만약 국힘당을 친윤으로 일색화 하는 것이 미국의 뜻과 어긋났다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방한한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조·중·동이 비난을 쏟아냈다. 조·중·동은 맹목적으로 윤석열 정권과 국힘당에 우호적인 게 아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미국의 뜻에 맞게 움직이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윤 대통령의 경쟁자인 이재명 대표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재명 죽이기의 핵심은 이재명 구속이다. 

지난 2월 21일 국회에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접수되자 민주당은 당일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여기서 의외의 장면이 나왔는데 민주당 내 반개혁 성향, 이른바 ‘수박’파의 수장으로 꼽히는 설훈 의원이 “무조건 부결시켜야 한다. 일단 부결시키는 것이 우리 당이 사는 길이다. 전원이 다 부결시키자”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수박’ 의원들도 부결을 주장했다. 의원총회에서는 부결을 당론으로 결정하지는 않고 자율 투표를 하기로 했다. (「‘부결’ 설훈 한마디에 당 노선 정리...배경은?」, 쿠키뉴스, 2023.2.23.)

그런데 27일 표결 결과 297명이 투표하여 139명이 가결(체포 동의), 138명이 부결(체포 반대), 기권과 무효표가 20명이 나오는 이변이 나왔다. 민주당과 친민주당 무소속 내에서 최소 18명이 가결표를 던진 것이며 기권, 무효까지 합치면 30~40명 정도가 자기 당 대표 체포를 반대하지 않은 셈이 된다. 

이렇게 보면 설훈 의원을 포함한 ‘수박’들은 당론 채택을 막기 위해 일부러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수박’들이 부결표를 던질 테니 당론 채택은 필요 없다는 논리를 만든 것이다. 한 마디로 연기를 한 것이다. 장용진 기자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냉정하게 복기해 보니 수박에게 속았다. 설훈 의원은 연막전술, 연기였다”라고 하였다. 

만약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면 의원들은 의무적으로 부결에 투표해야 한다. 가결에 투표하면 징계받는다. 그래서 당론 채택을 막고 마음껏 가결에 투표하려고 연기를 한 것이었다. 이들에겐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민심이 무엇인지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 이번에 체포동의안 투표를 앞두고 민심을 대변해 반대 입장을 공식으로 밝힌 곳은 진보당뿐이다. 진보당은 논평으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기본소득당은 상임대표인 용혜인 의원이 개인 차원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은 찬성을 당론으로 채택해 민심에 등을 돌렸다. 

원래 윤석열 정권과 검찰, ‘수박’은 이 대표를 구속하는 게 목표였던 듯하다. 기권, 무효표가 가결표로 갔다면 충분히 가능한 구상이다. 하태경 국힘당 의원이 2월 21일 문화방송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약 35표의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고 거의 정확히 예언했는데 이는 ‘수박’과 일정한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구속 시도가 무산된 것은 ‘수박’ 내 가결표를 던지지 않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내에서는 ‘배신자’라 할 만하다. 이들은 여론이 체포동의안 반대로 끓어오르자 무서워서 차마 가결표를 던지지 못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 습성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박’들은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쿠데타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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