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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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의 역사
  • 조성우 기자
  • 승인 2017.01.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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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연방법원 판사였던 존 누난이 1984년에 쓴 『뇌물의 역사』란 책을 보면 기원 15세기 고대 이집트 시대 때부터 이미 뇌물은 사회의 골칫거리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이집트 왕조는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로 규정하고,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선물을 살포하는 행위를 단속했다고 책은 기술하고 있다. 뇌물을 부정한 선물로 보는 인식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자 뇌(賂) 의 유래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뇌는 조개 패(貝) 에 각기 각(各) 을 결합해 만든 조어로 문자 그대로 하면  '개별적으로 유통되는 재화'란 뜻이다. 조개껍질이 화폐로 통용되던 시절 공적으로 유통되지 않고, 사적으로 오가는 조개껍질이 있었으니 곧 몰래 주고받는 선물이었다. 

뇌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 브라이브(bribe)는 중세시대 선물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선물을 싫어 할 사람은 없다는 데서 뇌물은 출발한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하기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물건이 선물이라면 뇌물은 의도된 대가를 노리고 주는 물건이다선물과 뇌물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규정과 룰의 제약을 피하고,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뇌물수수는 부정한 거래와 다를 바 없다. 

뇌물수수가 횡행하는 사회는 원칙이 무너진 사회고, 망조가 든 사회라고 역사는 가르친다. 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자들은 뇌물이 통하지 않는 깨끗한 사회를 표방해 왔다.

17세기 초 영국의 철학자로 잘 나가는 대법관이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소송당사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졸지에 옷을 벗고 은퇴했다. 그를 총애하던 국왕 제임스 1세도 법관의 뇌물수수 행위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는 뇌물을 챙긴 관리에게 곤장을 안기고귀양을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오른쪽 어깨에 '관물을 도둑질한자'라는 뜻으로 '도관물(盜官物) '이란 낙인을 새기기도 했다. 심한 경우 사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를 치죄하는 권부 자체가 부패의 온상이었으니 조선은 붕괴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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