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석장리 구석기 박물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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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석장리 구석기 박물관을 찾아서
  • 조성우 기자
  • 승인 2017.03.12 15: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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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축제가 5월 3일부터 7일까지 열려
▲ 구석기 주먹도끼

공주시는 오는 5월 3일부터 7일까지 ‘구석기의 빛! 금강을 비추다’ 라는 주제로 석장리박물관 일원에서 열리는 2017 공주 석장리 구석기축제가 계획되어 있다.

▲ 석장리 박물관
▲ 박물관 종합안내도
▲ 매표소 (축제기간 무료입장)

공주 석장리 구석기축제가 실시되는 구석기 박물관이 어떤 곳이고 선사문화가 무엇인지 한국의 구석기 발상지 석장리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 사적 제334호(`90. 10. 26 지정)

1963년 외국인 학자 AlbertMhor는 홍수로 무너진 금강변의 지층에서 뗀석기를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를 중심으로 1964년부터 1992년까지 총 12차례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 깃발이 있는 곳, 최초  발굴이 이뤄진 지점

'구석기'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유럽의 경우 19세기부터 시작되어 현재 세계 구석기 연구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도 1900년 초반 북경 주구점(베이징원인)을 시작으로 일본은 1949년 이와주쿠 발굴을 시작으로 구석기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4년 공주 석장리를 시작으로 구석기 연구가 시작되어 현재에 이른다.

◈ 구석기의 첫 만남과 기록들

▲ 연세대 손보기 교수

1964년 11월, 초가집이 빼곡히 보이는 마을 어귀에는 금강이 흘러 쪽배가 떠다니는 석장리 강변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삽을 들고 발굴을 진행했다. 발굴장 한편에는 동그란 모자를 쓴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 분이 손보기 교수였다.

▲ 연세대 (고)손보기 교수

제대로 된 발굴 도구도 없이 오로지 삽으로만 12m를 파 내려가는 힘겨운 발굴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곳에서 구석기시대 도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한반도의 첫 인류, 구석기인들이 쥐고 쓰던 석기였다.

▲ 구석기 유물 출토

◈ 손보기 선생 기념관

▲ 파른 손보기 선생 기념관

공주 석장리유적을 처음으로 발굴하고 우리나라의 구석기문화 연구를 시작한 파른 손보기 선생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평생을 우리 겨레의 올바른 역사와 자긍심을 생각해 온 손보기 선새의 학문세계를 '파른 손보기의 생애', '파른의 선사연구 기록', '파른의 역사연구 기록' 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 구석기인 들의 생활상

구석기시대란 사람들이 돌을 깨서 도구로 만들어 쓰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생활을 하였던 시기를 말한다. 약 250만년 전부터 1만년 전 까지 지속되었으며 우리나라는 70만년 전 부터 옛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나타나 있다.

▲ 후기 구석기시대 석장리(재현)

후기 구석기시대 공주 석장리에서 당시의 하루 일상생활을 복원한 상상도다.

구석기시대 엄마는 아이가 깨기 전에 나무열매를 따러 나왔다. 구석기인들은 사냥이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나무열매나 나무뿌리를 캐서 먹었다.

멧돼지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돌을 동그랗게 다듬어 사냥돌로 사냥을 했다.

구석기인들이 가장 많이 사냥했던 동물은 사슴이다. 사슴은 고기가 부드럽고 가죽, 뿔 등도 옷과 생활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아주 좋은 먹이감이다.

때로는 물고기와 패류등을 잡았서 단백질을 보충했다.

구석기인들은 막집에 모여 살았습니다.  조개껍데기로 목거리를 만들고 동물가죽을 벗겨 덮개나 옷을 만들었다.

◈ 구석기인의 진화

◈ 구석기인의 생활도구

▲ 구석기인의 생활도구

◈ 선사 동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야외의 자연 환경에서 복원 전시하고 있다. 짐승 사냥과 식물 채집, 사냥감 옮기기, 막집에서 일상생활 등의 주재로 재현된 모습이다.

가정의 달 5월, 구석기 축제에 참가하시면 어린이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큰 추억이 될 것이다. 5월 3일 부터 7일까지 5일간 공주 석장리 박물관에서 실시되는 구석기 축제에서 과거로의 색다른 여행을 가족과 함께 하면 어떨까?

▲ 지난해 구석기 축제(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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