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선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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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선생 이야기
  • 김용택 세종본부장
  • 승인 2023.01.2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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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세종본부장
김용택 세종본부장

막가파 세상,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 짜가가 판치는 세상.... 요즈음 같은 막가파 세상을 빗대 한 표현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은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맘 놓고 다니기도 힘든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바꾸겠다고 전태일같은 열사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고, 김진숙같은 노동자는 48일간 단식농성을 하고, 파인텍 농성자는 75m 높이 굴뚝에 올라가 423일 동안 농성을 하기도 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불의한 권력에 맞섰다가 국가폭력으로 죽어가기도 하고 빨갱이로 내몰려 수십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시민단체를 만들어 피 터지게 싸웠지만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다. 아니 오히려 갈수록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이런 세상에 자신이 평생을 모은 재산으로 학교를 만들어 국가에 기부체납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은 의로운 사람이 있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전 이사가 쓴 《줬으면 그만이지》의 주인공 김장하선생이야기다. 김장하선생은 진주지역에서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어려운 학생(부산대 조해정교수)을 자기 집에서 데리고 살면서 생활비, 학원비를 모두 지원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운동권의 주동자가 되어 학교에서 제적됐다.

감옥살이를 마치고 찾아간 선생님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생활하고 학교 졸업도 못하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자 김장하 선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는 너 같은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19세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해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평생을 지역의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진주의 ‘큰 어른’ 김장하 선생. 학교를 세운 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학들이 판치는 그런 세상에 자신이 설립한 학교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국가에 헌납하신 분이다. 선생님께서는 1984년 진주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학교법인 남성학숙)하신 뒤 이사장으로 계시다가 1991년 국가에 헌납했다. 당시 학교법인의 자산 가치는 100억원, 지금의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2000억에 달한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벌었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호의호식하며 방탕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이 가난한 이웃이나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이유다.

그는 “내가 이렇게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일 다른 업종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세우면서도 세가지 원칙을 정했다. 그 원칙은 첫째, 친척을 쓰지 않는다. 둘째, 돈받고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다. 셋째, 권력에 굽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약성서는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고 했다. 김장하선생은 특별히 특정 종교를 믿는 신자가 아니지만 그 어떤 종교인보다 더 종교인다운 삶을 살아 온 사람이다. 사람들이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아 유명해지면 정계부터 기웃거린다. 그러나 김장하선생은 자신이 선행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김장하선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등록금, 하숙비, 생활비 등 지금껏 셀 수도 없이 많은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어떠한 전달식도 열지 않아 장학생의 정확한 규모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누구를 도와도 보도자료 등을 일체 내지 않고, 언론사 인터뷰도 응하지 않아 어떠한 기사도, 사진도 찾기 어렵다.

7년간 김장하 선생의 일대기를 취재해 온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이사는 100여명의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김 기자에게 협업을 제안해 작년 11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김현지 PD은 3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 부산, 경남 등 전국 각지로 이동도 많이 했다. ‘김장하 장학생’이었던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본까지 찾아간 일도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노인을 어르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인’과 ‘어르신’은 다르다. 진짜 어르신이란 김장하선생처럼 그의 삶을 따라 살고 싶은 고령자를 일컫는 말이다. 덴마크의 격언집에는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이웃에서 빌려오라'고 하고, 아프리카에도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는 것은 소중한 도서관 한 개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진정한 ‘어르신’ 김장하선생같은 어르신이 필요한 시대 그러나 우리 사는 세상에는 노탐으로 꼰대로 취급하는 짜가 ‘어르신’이 많아 탈이다. 하루가 다르게 각박해지는 세상, 오늘날 김장하선생같은 어르신이 그 어느 때보다 존경받는 이유다.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르신' 김장하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더 보고 싶은 분은 아래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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