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의미하는 "부락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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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의미하는 "부락의 유래"
  • 조성우 기자
  • 승인 2017.01.1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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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천민집단이 모여 사는 곳"을 일컫는다.

`부락’ 이라는 집단 명칭은 일본에서 "천민집단이 모여 사는 곳"을 일컫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7세기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민중지배정책의 하나로 부락차별이 생겼다. 도쿠가와 막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농민은 무사 다음 가는 신분으로 정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낮은 신분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한 농민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도쿠가와 막부는 농민보다 더 낮은 천민층 부락민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일제 통치기에 우리나라 모든 마을 이름 뒤에 `○○부락’ 이라 부르게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를 천민시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었던 것이다. 

 하가노보루(芳賀登)(지방문화의 보전)에 의하면 부락이란 "미해방부락"을 의미하며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던 근세로부터의 천민신분으로 주로 예다(穢多, 천업에 종사하는 사람), 비인(非人, 죄인, 악귀 따위)들의 집단주거지를 일컫는 말’로 소개되고 있다. 

이 곳의 부락민들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노예나 다름없는 부류로 인민이나 국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인식하였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 말이 쓰였을까. 중국의 문헌인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고구려 나라 읍락(邑落)의 남녀들이 밤에 모여 서로 노래와 놀이를 즐기며 10월에 제천을 하면서 국중대회를 여는데 그 이름을 동맹이라 한다라는 내용으로 보면, 이 때에 이미 ‘읍’과 ‘락’의 구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부락과는 어휘면에서나 그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분명 다르다. 고구려의 제천의식에서는 읍락의 남녀가 함께 모여 놀았지만, 일본의 부락민은 함께 어우러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전에는 ‘부락’을 두고 “시골에서 여러 민가(民家)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이라면서 ‘마을’로 순화할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 토박이말인 ‘마을’로 순화해야 할 것은 사실이지만 그 풀이가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음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일본에서 아무렇게 쓰든 우리야 우리 식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락’이란 말이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에 의해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의 문헌에서 '부락'이라는 용어는 거의 찾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배자로서 우리들을 종놈정도로 보고  ‘노예들이 사는 마을’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것도 모르고 한자말이면 무조건 좋은 말로 알고 유식한 척 사용했다면 이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들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이야기했는데, 일본인들은 ‘노예가 사는 마을’로 듣고 있다면 또 어떻게 될까.  

오늘날까지도 일제의 악령이 우리들의 입에 매달려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언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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