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209-210] 북한과 유엔을 대하는 미국의 관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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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209-210] 북한과 유엔을 대하는 미국의 관점 문제
  •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2.22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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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거듭된 유엔 안보리 회의 결렬에 발끈한 미국
2. 중러 탓하기의 불합리성
3. 드러난 미국의 속셈
4. 현실과 동떨어진 대국주의
5. 미국은 민심을 따라야

1. 거듭된 유엔 안보리 회의 결렬에 발끈한 미국

올해 들어 북한의 군사 행동을 규탄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10번 이상 열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중국,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인해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다. 

미국의소리 보도. ⓒVOA
미국의소리 보도. ⓒVOA

최근에는 11월 21일(이하 현지 시각)에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다루기 위한 유엔 안보리가 열렸지만 역시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다. 이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군사 행동이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장쥔(张军)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안보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항상 규탄하고 북한을 압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대화로 복귀하려면 미국이 신의를 보여야 한다”라면서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등 구체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안나 예브스티그네예바(Анна Евстигнеева)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는 “한미연합훈련, 한·미·일 연합훈련 때문에 북한은 예상대로 행동한 것”이라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평양을 일방적으로 무장 해제하려는 워싱턴의 욕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대립을 불사하는 미국의 근시안적인 군사 행동의 결과라는 점이 명백하다”라면서 “서방이 ‘미국의 적대행위를 멈추게 해달라’는 평양의 거듭된 요청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하였다. 

안나 예브스티그네예바(오른쪽)
안나 예브스티그네예바(오른쪽)

그러자 린다 토머스-그린필드(Linda Thomas-Greenfield)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2개 국가가 북한 도발을 조장하고 있다”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감싸기는 ‘거부권 남용’에 해당한다”, “두 나라의 노골적인 방해가 동북아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라고 발끈하였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가 중국, 러시아를 향해 이처럼 강경한 규탄 발언을 한 건 처음이다. 물론 올해 들어 10차례 넘게 있었던 북한 관련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매번 중국, 러시아에 유감을 표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완곡하게 불만을 내비치는 정도였다. 

첫 회의인 2월 4일에는 “우리는 모든 안보리 이사국들이 북한의 위험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규탄하는 데 한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한다”라며 직접 언급을 피했으며, 5월 26일에는 “우리는 초안이 2개의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못한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유감을 표하는 정도로 그쳤다. 10월 5일에는 “북한은 안보리 2개 이사국으로부터 전적인 보호를 누리고 있고, 이 2개 이사국은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정당화하고 제재 체제를 갱신하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애써왔다”라며 좀 더 적극적으로 중러를 비난했다. 11월 4일에는 “두 나라가 안보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라고 개탄하였다. 

유엔 공간이 아닌 미국 내에서는 좀 더 일찍부터 강경한 목소리가 나왔다. 베단트 파텔(Vedant Patel)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10월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은 미국의 도발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행동의 발단이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했다”라며 “이것은 헛소리(baloney)이며, 절대 그렇지 않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파텔 수석부대변인은 이튿날에도 “중국은 북한이 불법적인 핵 혹은 탄도미사일 실험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러가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든다는 불만은 전부터 미국 내에서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민간 전문가나 언론의 반응이었지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직접 중러를 규탄한 적은 드물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최근 반응은 중러에 대한 실망이 분노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 중러 탓하기의 불합리성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해 대북 규탄 혹은 제재 결의안을 촉구했다. 하지만 제출한 결의안은 번번이 부결됐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당연히 미국이다. 미국은 자신의 요구가 왜 반복해서 부결되는지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도 없이 무작정 결의안 제출을 반복하면서 왜 통과를 안 시켜주느냐며 중러를 비난해봐야 어린애 떼쓰는 모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매번 선거에 떨어지면서도 후보에 등록하고는 또 상대 후보 때문에 떨어졌다고 투덜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데도 책임지기 싫어서 남을 탓하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이 중러 탓을 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대놓고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았고, 바이든 정부도 대북 제재 이행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조지 로페즈(George A. Lopez)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위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불행하게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명백히 위배되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안보리에 상정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였다. (「표류하는 대북제재…“미국, 중·러 탓할 자격 없어”」, 미국의소리(VOA), 2021.10.26.) 

한편 중러가 유엔 안보리에서 협조하지 않아 북한이 마음 놓고 미사일을 쏜다는 분석도 과학적인 주장은 아니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중러가 미국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을 때는 북한이 중러의 눈치를 보며 미사일 발사를 자제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 미사일을 겨냥한 첫 유엔 안보리 결의안(1695호)이 나왔던 2006년 이후에도 북한은 중러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필요할 때마다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예를 들어 2012년 12월 12일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3호 2호기’를 발사하자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곧바로 “북한이 국제 사회의 보편적 우려 속에서 로켓을 발사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하였고, 러시아 외무부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미사일이 아닌 인공위성이었음에도 중러가 비난한 것이지만 북한은 거리낌 없이 2013년 2월 3차 핵시험을 단행했으며 5월에는 3일 동안 6발의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하였다. 

사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자제했을 때는 중러와 무관하게 미국과 협상을 진행할 때였다. 대표적으로 2018년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한 차례도 발사하지 않았다. 따라서 탓을 하려면 중러 탓을 할 게 아니라 협상 재개를 못 하는 미국 자신의 한계를 탓하는 게 옳다. 


3. 드러난 미국의 속셈

미국은 북한은 물론 중러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왜곡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유엔 안보리 결의에는 대북 제재 내용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이 해야 할 내용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 있어 유엔 안보리 결의라는 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무는 도외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미사일 관련 유엔 안보리의 가장 최근 결의인 2017년 12월 22일 결의 2397호의 내용을 살펴보자. 

2397호 결의는 먼저 2017년 11월 28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 북한에 추가 발사와 핵무기 관련 활동 포기를 요구하였고 관련하여 다양한 제재 목록을 추가하였다. 또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석유 금수 조치를 추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6자 회담 재개를 촉구했는데 특히 6자 회담에서 북미가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 공존, 경제 협력을 약속했음을 상기시켰다. 또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평화적·외교적·정치적 해결 노력을 촉구하였고 북한의 행동 여부에 따라 대북 제재를 강화·수정·중단·해제한다고 하였다. 

이런 내용은 유엔 안보리의 앞선 결의에도 계속 반복된다. 즉,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 미사일 활동을 규탄하고 제재하면서도 동시에 미국도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대북 제재는 북한의 행동에 따라 언제든 조절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6자 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 공존, 경제 협력을 추구해야 하며 평화적·외교적·정치적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야 한다. 또한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등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경우 제재를 수정·중단·해제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한미연합훈련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불렀다, 대북 압박을 중단해야 한다,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중러의 주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내용 가운데 북한에 요구하는 것만 강조할 뿐 자신과 유엔 안보리가 해야 하는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첫째, 미국은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았고 평화 공존, 경제 협력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미국은 주권국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공위성 발사를 비난하였고 북한과 수교하거나 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예 대놓고 정권 교체를 추구한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협박하였고 바이든 정부는 ‘정권의 종말’을 운운했다. 또 정상적인 경제 관계는 물론이고 개별 여행조차 금지하였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일단 상대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미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평화적, 외교적, 정치적 방법을 쓰지 않았다. 

물론 미국도 겉으로는 대화와 협상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제안이 아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억지 주장을 해서 고의로 협상을 결렬시켰다. 박종진 주간한국 논설실장은 2019년 3월 11일 자 기획 기사 「2차 북미회담 결렬 ‘진짜 이유’… 미국의 ‘트릭’, 일본의 ‘딴지’」에서 “미국이 제시해 북한이 놀랐다는 우라늄 시설은 새롭게 발견된 게 아니고 국내외에 알려진 내용이다. 따라서 이것이 문제라면 회담 과정에서 조율할 수 있고, 차기 회담에서 논의하면 되지 회담을 깰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분석하였다. 또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2차 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 관계자로부터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참석자들이 억지 주장을 펴고, 조건을 달고, 의제와 관계없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회담을 무산시키려는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전했다. 애초에 미국은 억지 주장을 하면서 북한을 무릎 꿇리거나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은 안중에도 없었다. 

미국은 협상을 통해 합의한 약속도 어기기 일쑤였다.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협정의 2조 13항 ㄹ목에는 한반도 외부에서 무기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미국은 1957년 6월 21일 이 항목을 폐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한국에 핵무기를 반입하기 위해서였다. (박태균, 「1950년대 미국의 정전협정 일부조항 무효선언과 그 의미」, 『역사비평』 63호, 역사문제연구소, 2003, 43~44쪽.)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는 미국이 약속한 기한이 다 되도록 경수로 공사를 거의 진척시키지 않았고 중유 공급도 수시로 빠트렸다. 결국 미국은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도 부시 행정부로 정권교체가 되자 미국이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면서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도 합의 다음 날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일으키면서 하루 만에 합의를 엎어버렸다. (「매번 합의를 먼저 깬 쪽은 미국이다」, 민플러스, 2022.12.12.)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을 합의했지만 미국은 합의를 하나도 지키지 않았고 한미연합훈련 중단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마이크 휘트니(Mike Whitney), 「북한에 관한 언론의 6대 거짓말(The Media’s 6 Biggest Lies About North Korea)」, The Unz Review, 2019.3.12.)

이처럼 미국은 합의 파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였다. 

또 미국은 앞에서는 협상하면서 뒤에서는 전쟁 훈련을 하는 식의 이중 행동을 한다. 이 역시 평화적, 외교적, 정치적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셋째,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 조치에도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대북 제재도 그에 상응하게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2018년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 중단을 선언했지만 미국은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았다.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를 조건으로 민간 부문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2019년 12월 16일 중러가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표결에 상정조차 못 했다. 중러는 2021년 11월 1일에도 똑같은 결의안을 제출하였지만 미국은 중러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해야 한다며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자신의 할 일은 모르는 체하고 북한을 향해서만 결의를 지키라고 요구한다. 또 중러를 향해서도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운운한다. 하지만 중러가 미국을 규탄하며 유엔 안보리에서 거듭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북한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지키기 위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활동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애초에 유엔 안보리 결의를 대북 압박 수단으로만 여겼을 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자신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국제 합의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듯하다. 

한편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은 2017년 12월 22일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하자 24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제재 결의를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로,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전쟁 행위로 규정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선언했다. 그전에 나온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해서도 매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이를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에도 이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합의문은 자신도 이행하였고 미국에도 이행하라고 요구한다. 자신들이 인정하는 것만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니 이것 자체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볼 수 없다. 

 

4. 현실과 동떨어진 대국주의

1) 미국의 대국주의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고 통제하지 않는 중국, 러시아를 비난하는 배경에는 강대국이 시키면 약소국은 따라야 한다는 대국주의가 있다. 이를 패권주의,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미국은 그동안 자신의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 패권을 이용해 국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특히 약소국에 대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2004년 12월 21일 자 시사저널 기사 「‘제국주의’ 미국 앞에 거칠 것이 무엇이랴」는 이런 미국의 대국주의 행태를 자세히 소개했다. 

“미국은 또 오대양 육대주를 다섯 개의 군사 지역으로 나누고 각각 사령부를 세워 24시간 관할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중략… 이들(사령관)의 권한이 정치·외교·군사 부문을 포괄하고 있어 ‘현대판 총독’으로 통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패권주의가 기인하는 다섯 가지 철학) 중 핵심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대표되는 홉스주의 (즉) 세계에서 믿을 것은 힘이요, 미국의 이해를 지키는 데 다자주의나 국제기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약소국을 군사적으로 다룬 사례 중 하나인 1989년 파나마 침공을 살펴보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키운 인물인 파나마군 최고사령관 마누엘 노리에가는 점차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반미 정책을 폈고 이에 발끈한 미국이 1988년 노리에가를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해버렸다. 그리고 노리에가를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1989년 12월 20일 새벽 미군 2만 7천여 명을 투입해 정규군 1만 6,300명의 파나마를 짓밟았다. 결국 1990년 1월 3일 노리에가는 미 마약단속국 요원에게 체포되어 미국에 끌려가 재판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 나라의 실권자이자 고위 관료를 기소하고 체포하겠다며 군대를 투입해 침공하는 주권 유린이 백주에 벌어진 것이다. 유엔 총회는 1989년 12월 29일 국제법을 ‘흉악하게’ 위반한 미국을 규탄하고 미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실 사례를 찾자면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갈 것도 없이 바로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18년 10월 10일(미국 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 ‘승인(approval)’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명백한 내정간섭 발언이었다. 그것도 ‘승인’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자신이 결코 ‘실언’을 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미국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 나라라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선언한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도 미국에는 그저 약소국에 불과하며, 약소국은 강대국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그런 나라라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정간섭 발언을 두고 한국의 청와대는 “모든 사안은 한미 사이에 공감과 협의가 있는 가운데 진행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라고 반응한 것이다. 우리는 약소국이니 뭐든지 강대국인 미국의 ‘승인’을 받겠다고 알아서 무릎을 꿇은 셈이다. 아마 미국은 이 모습을 보며 ‘약소국은 강대국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자기 생각이 당연하다고 더욱 확신했을 것이다. 

민주당 바이든 정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전임 트럼프 정부가 동맹국을 무시했다면 자기들은 동맹 관계 복원에 주력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해석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국에 거친 말로 명령했다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에 부드러운 말로 명령하겠다는 소리다. 거칠든 부드럽든 미국이 시키는 걸 해야만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와서 윤석열 대통령을 띄워주고 삼성, 현대 대기업 총수들을 띄워준 다음에 수십조 원의 투자를 받아냈다. 그러고는 미국에 돌아가 인플레이션 방지법을 만들어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그 뒤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려고 나토 정상회의, 유엔 총회 등 국제회의마다 졸졸 따라다녔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윤 대통령을 무시하며 모욕하였다. 뜯을 만큼 뜯어냈으니 약소국 대통령 따위는 만나줄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6월 29일(현지 시각) 나토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보지 않고 악수하는 장면. [출처: RTVE]
바이든 대통령이 6월 29일(현지 시각) 나토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보지 않고 악수하는 장면. [출처: RTVE]

이처럼 미국은 약소국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짓밟아버리는 데 익숙하다. 그러니 북한도 당연히 주변의 큰 나라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시키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 사이의 역사를 안다면 결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중국, 러시아의 부당한 간섭을 거절해온 북한

미국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중국이나 소련(러시아) 역시 대국주의적 성향을 보여왔다. 북중·북러 관계의 역사를 보면 중국과 소련은 북한에 여러 차례 부당한 간섭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자주권을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우며 중국과 소련의 간섭을 거부하여 왔다. 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1956년 8월 종파사건

1950년대까지도 북한 정부와 노동당 내에는 소련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를 따라야 한다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대체로 해방 전에 소련공산당이나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었는데 흔히 이들을 소련파, 연안파라 불렀다. 이들은 소련, 중국의 노선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려는 김일성 주석을 사사건건 반대하였다.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 주석은 연설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소련식이 좋으니 중국식이 좋으니 하지만 이제는 우리 식을 만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며 소련, 중국 등 대국의 정책을 따라 하는 사대주의를 반대했다. 특히 소련의 반대 압력에도 ‘중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며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노선’을 관철하였다. 이에 사대주의를 추구하던 소련파, 연안파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소련, 중국을 찾아가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연안파의 핵심 인물인 최창익 국가검열상은 1956년 6월 8일 이바노프 소련대사를 찾아가 노동당의 노선을 바꾸도록 소련공산당이 압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 

1956년 8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열리자 소련파, 연안파 간부들은 당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결탁했으며 김일성 주석을 비판하면서 일제히 들고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김일성 주석을 지지하던 다른 참가자들의 항의를 받고 쫓겨났으며 연안파 최창익과 소련파 박창옥은 당직 박탈, 연안파 윤공흠은 출당을 당했다. 또 많은 소련파, 연안파 인물들이 소련과 중국으로 망명해버렸다. 이를 ‘8월 종파사건’이라 부른다. 

이에 아나스타스 미코얀 소련 부수상과 펑더화이를 단장으로 하는 중소 공동대표단이 8월 종파사건을 조사하겠다며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항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종파주의 청산 작업을 멈추지 않았으며 한국전쟁을 계기로 들어와 있던 중국군을 철수시키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북한 내 소련파와 연안파는 설 자리를 잃었고 이후 북한에서 소련식, 중국식을 따라 하자는 주장은 급격히 사라졌다. 

나중에 마오쩌둥 중국공산당 주석과 펑더화이는 8월 종파사건에 관해 내정간섭을 한 것을 두고 김일성 주석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한편 1961년 북한이 중화학공업을 앞세운 7개년 계획을 시작하자 소련은 자신이 요구한 노선과 다르다며 전후 복구 지원을 중단해버렸다. 또 1962년에는 소련이 사회주의 경제를 통합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 가입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자립적 민족경제를 내세우며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1964년 6월 16~23일 북한은 평양에서 제삼세계 국가를 포함한 34개국이 참여한 아세아 경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소련은 자립경제노선을 강조하는 이 토론회를 반대하였지만 북한은 강행하였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968년 1월 23일 북한은 동해 영해를 침범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단속하였다. 이에 미국은 핵항공모함 두 척을 포함해 대규모 무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켜 배와 승무원을 돌려달라고 압박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영해 침범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하라며 맞섰다. 전면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미국은 소련을 압박했다. 북한이 소련 말은 들을 것으로 여긴 것이다. 

미국의 압력을 받은 소련 외무부는 미국의 사과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배와 승무원을 돌려주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무시했다. 

1968년 4월에 열린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은 당시 진행 중이던 북미 협상에 관해서 북한이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난하고,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는 국제 기준으로 볼 때도 보기 드물게 가혹한 처사라고 하면서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였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5)」, 미국의소리, 2009.11.2.)

당시 북한, 소련 사이의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루는 소련 외무부 차관이 소련 주재 북한 대사를 호출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호출에도 북한 대사는 꿈쩍도 안 했다. 우리로 치면 미 국무장관이 호출했는데 미국 주재 한국 대사가 모른 척한 셈인데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아무튼 북한이 호출을 거부하자 화가 난 소련 외무차관이 직접 차를 몰고 북한 대사관을 찾아갔다. 그러자 북한은 최하위 외교관인 삼등 서기관을 내보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소련 관리라면 삼등 서기관이 상대하는 게 적당하다는 의미였다. (리영희, 『대화』, 한길사, 2005, 367~372쪽.)

당시 소련은 물론 동유럽 국가들까지 나서서 북한에 양보를 촉구했다. 자칫하면 미국의 핵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잘못했으니 미국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입장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전쟁 위협도, 외교 압력도 통하지 않자 미국은 치욕을 무릅쓰고 북한의 요구 조건을 수용했다. 승무원이 석방되기 전날 밤 존슨 미 대통령은 방송에 출연해 “북한은 소련의 이빨이 안 들어가는 나라”라고 하소연했다. (리영희, 앞의 책, 367~372쪽.)

북한의 전리품이 된 푸에블로호.
북한의 전리품이 된 푸에블로호.

핵·미사일 개발

90년대 들어 한반도 핵문제가 불거졌고 2000년대에 와서는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도 북한을 압박했다. 특히 중국의 방해는 상당히 집요했다. 중국 처지에서는 동아시아에 자기 외에 새로운 핵보유국이 탄생하면 그만큼 자기 영향력이 축소되며, 북한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던 것도 끝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엔에서 미국 손을 들어주고 대북 제재에 동참해주면서 미국에 최혜국대우(MFN)를 받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미국에 중국의 가치는 사라지고 단순히 경쟁국 혹은 적국이 되고 만다. 실제로 2010년대 후반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핵보유국으로 자리 잡은 뒤 미국은 중국에 무역전쟁을 걸고 대만을 부추겨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등 대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무튼 북한이 2006년 7월 5일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비롯해 7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7월 15일(현지 시각)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대북 결의안 1695호를 채택했다. 어느 나라나 개발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오직 북한만은 개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중국, 러시아도 동참했다. 

그해 9월 중국은 대북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당시 북한은 원유 수입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 중단은 상당히 강력한 대북 압박이 되었다. (「중국 중유공급 중단 압력으로 북한과 담판했나」, 한겨레, 2006.11.1.) 

이후에도 중국은 시시때때로 대북 원유 수출을 중단해 북한을 압박했다. 2014년에는 상반기 내내 원유 수출을 중단했는데 당시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이 북한에 원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핵개발을 그만두거나 6자 회담에 복귀할 경우 수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의 압박은 북한을 움직이지 못했다. 채인택 논설위원은 「[심층연구] 북한·중국의 기묘한 애증사」(중앙일보, 2016.4.2.)에서 “북한은 호락호락 중국의 영향권에 머물지 않았다. 최근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중국이 외교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북한에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의 대중 경제의존이 반드시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한 경제 자체가 대외 교역에 의존하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북한이 자립적 민족경제를 구축한 것이 중국의 경제 압박을 이겨내는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에서 자주’를 내세우는 북한의 지도이념이다. 북한은 자국의 노선을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어떤 나라가 압박한다고 해도 그동안 노선을 바꾸지 않아 왔다. 

이후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핵시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주고 다양한 통로로 북한을 압박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 러시아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의 기대와 달리 강대국의 말을 듣고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수십 년을 겪어보았다면 미국도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계속/미국은 민심을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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