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칼럼] 봄날은 영 안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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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칼럼] 봄날은 영 안 오는가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2.12.1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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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왜 이리도 추운가.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br>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br>

【팩트TV-이기명칼럼】 고등학교 시절, 나는 노래를 잘했다. 음악선생님은 성악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가끔 교내 콩쿠르 대회가 열리면 단골출전 선수다. 노래 잘하는 1년 선배가 있었다.

늘 둘이서 경쟁이다. 선배가 이태리 가곡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불렀다. 잘 한다. 아낌없는 박수가 강당을 메운다. 다음은 나다. 웬만한 가곡 아리아 정도는 모두 알고 있는 실력이다. 모두 내 입을 쳐다본다. 반주도 없는 강당이다.

내 노래가 시작됐다. 내 애창곡인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 정도는 기대했겠지만, 뜻밖이다. 강당에 흘러넘치는 애잔한 멜로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강당은 조용했다. 선생님들도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설마 내가 ‘봄날은 간다’를 부를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을까. 잠시 후 박수가 나왔다. 처음 시작된 박수는 강당을 꽉 채우고 선생님도 박수를 쳤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내려온 나를 보고 음악선생이 웃는다.

성적발표다. ‘오 솔레 미오’를 부른 선배가 1등이다. 어디선가 에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아무 상관 없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른 나는 만족한다. 나중에 음악선생이 내게 귓속말로 해 준 칭찬은 ‘네가 1등이다’

난 만족했다. 난 지금도 애창곡 중 ‘봄날은 간다’를 상위권으로 꼽는다. 참 좋다. 어딘지 모르게 가슴을 울리는 애절한 멜로디. 아아 이 세상에도 봄날은 가지 말고 늘 봄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우리나라 내 조국에도.

 

■ 늘 푸른 나무(상록수)

대학로 근처에는 카페가 많았다. 젊은 연극인들도 많이 모이고 예술인들도 많이 보인다. 나도 자주 갔다. 어느 날인가 카페에 노무현 의원이 왔다. 무슨 약속이 있었던가. 이런 저런 정치 얘기도 나오고 비판도 나오는 도중에 젊은 친구 하나가 느닷없이 노 의원에게 노래를 청한다.

노래라니? 노 의원이 웃는다. ‘무슨 노래를 하지?’ 젊은 친구가 기타를 들고 나와 노 의원에게 건넨다. ‘상록수 아시죠?’

나도 당황했다. 심훈의 상록수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노래 상록수는 좀 다르다. 한데 노 의원은 의연하다. ‘내가 가사를 다 알 수 있을지 모르겠네.’

건네받은 기타를 튕겨 본다. 진짜로 부를 작정인가. 가사는 다 알고 있는가. 감정을 잡는지 잔기침을 몇 번인가 한다. 이윽고 기타 소리가 카페 안에 울려 퍼진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 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 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노무현 의원의 노래 중간에 누군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흥얼거림이 어느새 합창이 되었다. 카페 안은 상록수의 합창곡으로 꽉 찼다.

참으로 이상하다. 왜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까.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 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이것이 바로 공감이며 공명인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모아 상록수를 부른다. 일제 당시 억압받던 그 설움을 알리도 없는 젊은 친구들인데 모두 함께 목을 놓아 부른다. 노무현 의원의 목소리도 떨린다. 아 그날의 상록수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끝내 이기리라” 그때가 너무나 그립다.

 

■ 돌아와요 부산항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노무현 의원의 애창곡이다. 부산 모임에서 노 의원의 마지막 피날레는 이 노래다. 참 잘 부른다. 부산항을 드나드는 부산 시민의 애환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느냐만, 그 심정만은 안다.

후렴 구절인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를 부를 땐 노 의원의 목소리는 떨린다. 내게 그렇게 들리는 것이다. 이제 그의 노래는 들을 수가 없다.

나도 이제 세상을 떠날 나이가 됐다. 영혼이 있다고 하니 이후 노무현 의원을 만나 함께 이 노래를 부를 것이다.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그리운 노무현, 잊지 못할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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