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2022 미국 중간선거의 혼란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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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2022 미국 중간선거의 혼란이 의미하는 것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1.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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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물결(붉은색은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색깔)이 일어나지 않았다. 민주주의, 미국을 위해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1월 10일(아래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 말.

“어떤 측면에서 좀 실망스럽긴 하지만 내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큰 승리다.”
-지난 11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한 말.

지난 9일 미국에서 치러진 중간선거가 공화당의 승리, 민주당의 패배라고도 할 수 없이 어정쩡하게 마무리돼가는 모양새다.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의 ‘간판’인 바이든과 트럼프의 말이 위처럼 엇갈린 것도 이 때문이다.

돌아보면 공화당은 중간선거 이전 사전 여론조사에서 하원에서 압승을 거두고 상원에서도 과반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표 현황을 보면 민주당은 예상 밖으로 선전, 공화당은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수 있는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

12일 현재 각주마다 투표·개표 방법이 다르고 우편 사전투표 집계가 늦어지면서 아직도 선거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미 주요 언론에서는 하원은 공화당이 아슬아슬하게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 상원은 1~2석을 두고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될지 저마다 다른 예측을 내놓았다.

예를 들면 조지아주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조지아 주법에 따라 오는 12월 6일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여기에서 공화당이 이기면 상원에서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다만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언론의 잠정 예측’일 뿐이다. 확실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갈수록 혼돈이 더해가고 있다.

선거 때마다 이토록 복잡한 혼란에 빠지는 건 서방 국가 가운데에서도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더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커진 모습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출신이 주지사로 있는 주에서 대리투표와 매표를 동원해 사전 우편투표를 조작했다며 선거 불복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주를 대상으로 선거 무효 소송전이 남발되거나, 지난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점거 같은 폭동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미국의 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 이후 바이든과 트럼프로 대표되는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 양쪽 다 ‘집안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기 때문이다.

건강 이상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경제 위기 한복판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고 비판받은 바이든은 중간선거 이전부터 다음 대선에 나오지 말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지난 7월 CNN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무려 75%가 바이든의 재선 출마를 반대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바이든 대신 다른 후보를 미리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움직임이 수면 위로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에도 9일 바이든이 백악관 기자간담회에서 재선 도전 여부는 내년 초에 밝힐 생각이라면서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은 것도 민주당 내부의 반발 기류 때문일 수 있다.

민주당 내에서 친바이든 진영과 반바이든 진영의 갈등이 증폭되면 오는 2024년 대선 후보를 내는 과정이 순탄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미국 곳곳으로 30차례나 선거 유세를 다니면서 전면에 나섰지만 상원 후보로 나선 친트럼프 후보 상당수가 민주당에 밀려 낙선했다. 이를 두고 오히려 트럼프가 나서서 이길 선거도 졌다는 공화당 내 비판이 흘러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재선에 성공한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트럼프의 대항마로 밀려는 움직임이 있다. 역대 대선에서 플로리다가 공화당과 민주당이 승패를 주고받아온 격전지라는 점에서 드산티스 같은 대선 후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미 공화당 평당원, 즉 기층 물밑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여론이 강하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트럼프도 공화당 후보가 진 건 후보 개인의 잘못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을 겨눈 공세를 부추기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도 마무리되지 않고 혼란이 가중되는 미국에서는 앞으로 덧셈이 없는 ‘뺄셈의 정치’, ‘대혼돈의 밉상 정치’가 펼쳐질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된 근본 원인은 미국식 자본주의·자유주의 체제에 한계가 닥쳤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바이든과 트럼프,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개인·당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 시민들의 호응을 받는 젊고 새로운 정치인이 없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70대를 훌쩍 넘은 고령인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결로 치러졌다. 바이든과 트럼프를 대신할 정치적 후계자-지도자급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앞날이 암담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미국의 대혼란은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정리하면 선거 이후 미국은 나라와 사회 안팎으로 어수선한 내전 상황과 소동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치권은 미국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려 시도할 수 있다.

실제로 선거 이전부터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장으로 전 세계 각국에서 경제·정치 위기가 극심한 상황에서 미국의 잇속만을 챙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미국산 첨단무기 판매, 석유·천연가스 수출 호황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리면서 밑바닥으로 꺼지던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이 회복한 사례도 있다.

특히 미국의 시각에서는 아무리 한국이 손해 보는 조치를 해도 미국을 추종하는 윤석열 정권을 ‘가장 만만한 과녁’으로 여겨왔을 듯하다

미국은 위기 국면에서 한국을 겨눠 노골적인 ‘자국 이기주의’를 벌여왔다.

경제적 조치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대표되는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지급 거부가 손에 꼽힌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과정에서 현대·기아차 공장의 미국 유치를 가장 큰 치적으로 자랑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대만 반도체회사 글로벌웨이퍼스가 한국에 지으려 했던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입김을 넣어 가로챘다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고백도 있었다. 

정치·군사적 조치로는 한미연합훈련과 한·미·일 연합훈련, 전쟁 발발 시 주한미군의 대만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며 시시때때로 북·중·러를 자극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밀어 넣은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선거 이틀 뒤인 지난 11일에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동북아의 주한미군, 주일미군 군사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중국을 자극한다는 걸 모르고 이런 발언을 꺼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 역시 선거 이후 뒤숭숭한 국내의 혼란을 바깥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으로서는 국내 혼란을 줄이고 제 이익만 챙길 수 있다면 다른 나라의 상황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의사 표현을 한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선거 이후 미국에서 벌어질 혼란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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