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주변국 피 빨아 물가 잡겠다는 미국의 긴축정책
상태바
[박영준 칼럼] 주변국 피 빨아 물가 잡겠다는 미국의 긴축정책
  • 박영준 자주시보 객원기자
  • 승인 2022.10.18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세계가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빈곤층의 경우 물가 상승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다. 

 

자국의 물가부담을 수출하는 미국

이러한 세계적 물가 상승 흐름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 미국의 긴축정책이다. 경제 흐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국이 급격히 금리를 인상한 결과 미국의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고있다. 긴축정책이란 금리를 올려 시중의 달러를 회수한다는 것이니 달러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그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달러 대비 다른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떨어졌다는 말과 같다. 중국 위안화 환율은  2020년 이후 처음으로 1달러당 7위안을 넘어섰고. 일본 엔화도 올해 들어 달러 대비 가치가 5분 1이나 하락했다. 결국 일본은행은 9월 22일 24년 만에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엔화를 사고 달러를 파는 개입을 진행하기도 했다.

자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외부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비용이 증가한다. 가치가 오른 달러로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싸게 사와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국제적으로 식량이나 에너지 등 생존과 직결된 상품들은 대부분 달러로 거래된다. 그러면 수입물가가 오르게 되고 시간을 거쳐 소비자물가도 오른다. 

▲원/달러 환율추이.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대를 넘어섰다.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원/달러 환율추이.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대를 넘어섰다.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한국의 경우 올해 수입물가상승률(원화표시기준)이 1년 전에 비해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이 올해 상반기 중 소비자물가를 0.4%포인트 정도 높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소비자물가(월별 물가지수 평균)는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4.6% 올랐는데, 이중 환율 변동요인만으로 물가가 0.4%포인트 올렸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과 그로 인한 달러 강세는 미국의 구매력을 높여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이외의 국가와는 반대로 수입물가를 낮춰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가 기축통화로 달러를 쓰고 있지만 미국은 다른 국가의 사정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펴지 않는다. 자국 물가 잡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국가들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미국이 자국의 고물가를 주변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신흥국

미국의 급격한 긴축정책은 주변국들의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신흥국들을 파산 위기로 내몰고 있다. 

우선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다른 나라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가져온다. 미국이 급격히 금리를 올리고 그에 따라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 투기자본들은 위험자산을 기피 하고 안전자산으로 옮겨간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은 미국 달러이고 위험자산은 신흥국의 통화다.

신흥국에서 돈이 빠져나가 달러표시 자산에 몰려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신흥국 간의 금리 차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신흥국에서의 자금유출 우려는 더욱 증폭한다. 똑같은 이자를 준다면 미국(은행)에 돈을 맡기겠는가 신흥국(은행)에 돈을 맡기겠는가. 지금과 같은 세계경제 구조 상 100이면 99이상 미국을 선택할 것이다.

특히 현재 중국의 위안화와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데,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고, 일본 엔화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통화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안화와 엔화의 가치가 동시에 급격히 하락하면, 아시아 금융시장 전체에서의 급격한 자본 유출로 이어질 우려도 존재한다. 

나아가 강한 달러는 기존의 달러 표시 빚(외채) 상환 부담을 증가시킨다. 예를 들어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이면 10달러를 갚으려면 1만 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원화 가치가 떨어져서 환율이 1달러당 2,000원이 되면 10달러를 갚는데 2만 원이 필요해 진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를 보면 한국, 태국, 튀르키예, 헝가리 등 20개 신흥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달러 표시 부채 비율은 2019년 말 23.5%에서 올 1분기 평균 24.6%로 1.1%포인트 상승했다(경향신문, 2022.09.23).

국가 비상금과도 같은 외환보유액도 감소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의 외환보유액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하락했다(한겨레, 202209.13).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각국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통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외부 자본이 급격히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살펴보았듯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지금과 같은 물가 폭등기에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은 보유한 달러를 시중에 팔아 자국 통화의 약세를 방어하는 개입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9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 달러로 전달보다 196억6,000만 달러 감소했다. 2008년 10월(274억 달러 감소)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크게 감소했다. 올해 외환보유액은 3~6월 감소세를 보이다가 7월 소폭 반등한 뒤 8월부터 2개월 내리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한국보다 경제 기초가 더 불안한 신흥국들은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일자리를 빼앗는 미국 

더욱 큰 문제는 미국의 자국 여건만을 고려한 긴축정책은 우리의 일자리마저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세계 각국에서 기준금리 인상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를 좇아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올 들어 30% 가까이 떨어진 자국 화폐 페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9월 15일 금리를 75%로 인상하기도 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올린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을 따라 금리 인상에 나선 세계 중앙은행은 영국·스위스·노르웨이와 아시아의 대만·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바레인·쿠웨이트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총 13곳에 달했다.  

이러한 급격한 금리 인상은 자국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금리를 올리면 시중에 유통되는 돈이 줄어들고 가계나 기업의 빚은 늘어나게 된다. 경기가 얼어붙고 기업들은 투자를 하기 힘들어진다. 이는 곧 우리 일자리도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금리를 올리는 것이 자국 경제 여건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니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에 들어와 있던 투기자본이 급격히 유출되어 큰 경제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자국의 물가를 잡기 위해 여타 국가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한 미국은 손쉽게 자국의 위기를 다른 국가에게 전가할 것이다. 

불평등한 달러 중심 세계 경제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전반적인 재검토에 나서야 할 때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