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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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 김용택 세종본부장
  • 승인 2022.10.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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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세종본부장
김용택 세종본부장

불교 경전 중에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경이 있다.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뜻이다. 반야심경은 마음만 비춰주는 거울뿐만 아니라 현미경도 되고 망원경도 되고 내시경도 되고 세상 만물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깨달음으로 읽는 반야심경’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여러분들은 신문을 보지요? 누가 봐요? 내가 본 것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본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KBS와 MBC...기자가 본 것을 보지요? 사실은 내가 본 것이 아닌데 자신이 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반야심경의 핵심”이다. ‘자재보살이 본다’는 뜻이다. 해가 어디서 뜨나 – 산골에 사는 사람, 바다에 사는가에 따라 해가 뜨는 곳이 다르게 보인다.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진실인가? 내가 본 것은 모두 객관적인 사실일까? 물체는 주관적(主觀的)으로 보는가? 아니면 객관적(客觀的)으로 보는가, 이해관계에 따라 보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나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가? 객관적으로 본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지식(知識)과 지혜(智慧) 는 다르다>

‘전문바보’ 또는 ‘박사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문가니 박사란 어떤 사람인가? 사람들은 전문가나 박사를 모든 것에 통달한 도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특정분야에 전문가일 뿐, ‘모든 분야는 아니다. 선거철이 되면 교수나 박사 변호사·판·검사 같은 사람은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요건 갖춘 사람으로 이해한다. 의사는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전문가지 정치분야 전문가가 아닌데 후보자로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학위 없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사람보다 시야가 좁을 수도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추론을 잘하는 능력’을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지혜가 무엇인지는 솔로몬의 재판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우리는 지식이 있다고, 혹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더 명쾌하게 알 수 있다. 많이 배워서 지식은 많은 사람인데,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이 못 배워서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아주 지혜롭게 행동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눈(觀)부터 길러야>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본다(觀)는 것은 분별력이요, 판단 기준이다. 야단법석이 된 세상서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이 없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된다. 산다는 것(人生觀)은 무엇인가? 정치(政治觀)란 무엇인가, 경제(經濟觀란), 역사(史觀)란, 종교(宗敎觀)란... 무엇인지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다는 세계관이 그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학교가, 언론이 사실(객관적 진실)을 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안내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인권이란 무엇인가? 현상과 본질은 다르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사물에 대한 견해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 세계란 무엇인가?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지나면 가을이 온다...는 것과 같은 자연의 법칙성을 배우는 공부를 자연과학이라고 한다. 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필요한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하면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올라간다느니...하는 사회의 법칙성을 찾는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한다.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간의 본질,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인 철학은 왜 가르쳐주지 않을까? 지식만 많다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지혜 혹은 철학이란 “지식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추론”이다. 지식이 있다고, 혹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솔로몬의 재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법칙성을 자연과학이라고 하고 사회의 법칙성을 인문과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근원에 대한 법칙성을 무엇이라고 할까? 학자들은 세계에 대한 관점을 세계관 혹은 철학이라고 한다. 세계를 보는 관점 세계관에는 세계의 근원이 물질로 보는 세계관인 ’유물론‘도 있고 정신으로 보는 관념론도 있다. 관념론은 물질 또는 자연에 대하여 정신 또는 의식(意識)을 더욱 근원적인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유물론(唯物論)은 자연계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법칙성이 존재한다는 관찰방법에서 출발한다. 자연계는 ’양(量)의 점진적 변화는 질(質)의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법칙과 구체적 현실의 통일체는 대립물, 혹은 모순의 통일체임을 의미하는 ’대립물의 통일의 법칙‘ 그리고 ’대립물의 투쟁 속에서 하나의 대립물은 다른 대립물을 부정하며, 다시 그것은 어떤 양자가 다같이 부정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역사적 발전(正-反-合)에 의해 부정하는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라는 대 원칙이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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