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이스라엘은 왜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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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이스라엘은 왜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 이인선 자주시보 객원기자
  • 승인 2022.08.1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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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시작하자 미국과 서방은 대러 제재를 감행했다.

미국 말이라면 바로 접수하는 한국과 일본은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친미, 친서방 성향의 중동 국가들은 태도가 달랐다.

중동에서 유일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아랍에미리트는 2월 25일 유엔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의 표결에 기권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대러 제재 참여와 원유 증산 요구를 거절했고 이스라엘과 터키 역시 대러 제재에 나서지 않은 채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알려진 이스라엘마저 미국과 서방의 대러 제재 동참 요구를 거부하는 모습은 이례적이었다. 오히려 이스라엘 총리가 직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어 이스라엘 행보의 이유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이스라엘의 대러 제재 불참이 시사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 1958년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총리(왼쪽)와 미하일 보드로프 이스라엘 주재 소련 대사(오른쪽)가 만났다.
▲ 1958년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총리(왼쪽)와 미하일 보드로프 이스라엘 주재 소련 대사(오른쪽)가 만났다.

소련 시기부터 이어진 이스라엘과의 관계

유대인들의 국가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관계는 1948년 소련이 이스라엘 건국을 지원하면서 시작했다. 당시 중동에 있던 이란,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아랍국가들은 왕정인 데다 친미, 친서방 성향이 강했던 반면 이스라엘을 건국한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와 유대인 지도자들은 사회주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에 스탈린 서기장은 이스라엘 건국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 일부 아랍국가들에서 왕정이 무너지면서 아랍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이스라엘은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은 채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1차 중동전쟁(1948~1949), 2차 중동전쟁(1956)에 이어 3차 중동전쟁(1967)을 주도적으로 벌인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단교했다. 이스라엘은 1973년에도 이집트, 시리아와 4차 중동전쟁을 벌였다.

소련과 이스라엘의 갈등 속에서 숨통을 열어낸 것은 러시아계 유대인들이었다. 소련이 마련해준 유대인 자치주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러시아 문화를 이스라엘에 전파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차츰 복구됐고 비공식적으로 과학·기술 분야 협력과 의회·정당 대표단 간 상호 방문도 진행됐다.

이스라엘은 내무부와 할라카(유대종교법) 규정상으로 러시아계 유대인들을 유대인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나 시민권은 부여했다. 대표적 인물로 소련의 반체제 활동가이자 이스라엘 부총리까지 지낸 나탄 샤란스키, 시인 하임 나흐만 비알릭, 인공지능 데이터 과학자 키라 라딘스키 등이 있다.

실제 2022년 기준 이스라엘 인구의 약 15%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히브리어는 몰라도 러시아어는 쓸 줄 안다.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사는 동네에는 간판이 러시아어로 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러시아 정교회 신도 수는 4만여 명에 달하고 이스라엘 언론사들은 히브리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매일 방송을 제공하고 있다.

소련과 이스라엘이 1990년 1월 경제·교역 관계를, 1991년 10월 외교관계를 공식적으로 회복하면서 러시아와 이스라엘 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

▲ 2021년 10월 22일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베네트 이스라엘(왼쪽) 총리가 만났다.
▲ 2021년 10월 22일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베네트 이스라엘(왼쪽) 총리가 만났다.

이스라엘과 러시아는 어떤 관계인가

이스라엘과 러시아(소련) 간의 관계는 회복됐지만 중동 지역에서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행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이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을 공격하며 수년간 전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스라엘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이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을 공격하는 일에 비판도 서슴없이 하며 이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의 목소리를 국제 사회에 전달해왔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러시아에 중재를 요청하거나 러시아와 협력을 이야기하며 러시아와 관계를 발전하려고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국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대러 우호 입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르게 발전해 온 양국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련 시기부터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가 이스라엘에 대거 유입됐고 이후 푸틴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아리엘 샤론 총리(2001년 3월 7일 ~ 2006년 1월 4일 임기)의 친러시아 정책이 맞물리면서 양국 관계는 깊어졌다.

이츠하크 헤르조그 내각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이스라엘 대표단은 2001년 1월 3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정부에 중동 분쟁의 중재를 요청했다.

헤르조그 장관은 “알렉산드르 아브데예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중동사태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라며 팔레스타인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러시아가 중동 분쟁 해결에 영향력을 행사해 유혈사태 종식에 힘을 실어 주는 걸 요청했다고 밝혔다.

샤론 총리는 2001년 8월 17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며 중동 분쟁 해결을 논의했고 총리 임기 동안 매해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찾아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샤론 총리는 2003년 11월 3일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중동평화협상에서)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라면서 “아흐메드 쿠레이 팔레스타인 총리와도 만날 수 있다”라고 밝히는 등 러시아와 많은 논의를 진행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2009년 3월 31일 ~ 2021년 6월 13일 임기)는 푸틴 대통령과 이슬람 급진주의를 향한 적대감을 공유하며 안보 협력을 논의했었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체첸 반군,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모두 이슬람 급진주의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2020년 10월 7일 통화로 이란, 시리아 관련 논의를 진행했고 양국 간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정부 간 교류와 함께 민관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츠비 하이페츠 당시 러시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2016년 8월 이스라엘이 연해주(프리모르스키 변경주)에 의료 기술을 전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교류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하이페츠 대사는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농업, 생산, 조선업 분야 등 모든 분야의 협력에 관심이 있다. 특히 의료분야와 관련해 조만간 이스라엘 의료진들과 함께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고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것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미클루솁스키 당시 연해주 주지사는 “연해주에는 극동연방대학교 의학센터와 의과대학이 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의료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답하며 이스라엘과의 교류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결정한 이후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2021년 6월 13일 ~ 2022년 6월 30일 임기)는 2022년 2월 27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상황을 논의하며 “어느 때든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베네트 총리는 3월 5일 모스크바에 찾아와 푸틴 대통령을 만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스라엘은 또한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를 피해 이스라엘로 온 러시아 부호(올리가르히)들의 입국을 받아주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비자면제협정을 맺어 양국 국민이라면 무비자로 양국을 오갈 수 있기도 하지만 이들은 이스라엘 시민권도 가지고 있는 유대계 러시아 부호들이기 때문이다. 입국한 부호로는 대표적으로 영국 첼시 축구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서방의 계속되는 대러 제제 동참 압박에 마지못해 이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었다. 아브라모비치를 비롯한 유대계 러시아 부호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 기관에 막대한 기부를 해오며 이스라엘 경제에 큰 영향을 준 고액 투자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중요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 2021년 9월 9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현 이스라엘 총리, 오른쪽)이 만났다.
▲ 2021년 9월 9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현 이스라엘 총리, 오른쪽)이 만났다.

강경 태도였던 라피드 총리, 러시아와 협력을 도모하다

러시아에 강경 태도를 고수해 온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이 베네트 총리 사임 이후 7월 1일 이스라엘 총리로 되면서 양국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라피드 총리가 외무장관이었을 당시 베네트 총리는 러시아와 충돌하는 문제를 대화로 해결할 것을 강조했지만 라피드 장관은 별도의 성명을 내면서까지 러시아를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라피드 총리는 외무장관이었던 3월 14일 슬로바키아 방문 중 아브라모비치 등 유대인계 러시아 부호들이 이스라엘로 온 것을 두고 “이스라엘은 미국과 서방국들이 부과한 경제제재를 우회하는 통로가 되길 원치 않는다”라고 말하며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라피드 총리는 지난 5월 러시아 외무부와 ‘유대인과 나치’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앞서 자신이 나치 독일의 인종 청소 피해 민족인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았다며 “특별 군사작전의 목적이 우크라이나 신나치주의 세력을 없애는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5월 1일 이탈리아 언론사와의 대담에서 “젤렌스키가 유대인 혈통이라고 해서 우크라이나의 나치주의 성격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혈통이었다는 말도 있다. 즉 혈통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며 “어느 집이나 별종은 있다고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실제 일각에선 유대인과 흑인을 극도로 혐오했던 아돌프 히틀러가 실은 유대인과 아프리카인의 후손이라는 DNA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히틀러가 유대인 혈통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라피드 총리는 서방국에서 나온 입장과 같이 라브로프 장관이 히틀러를 유대인 혈통이라고 말해 유대인들을 모욕했다며 “유대인은 홀로코스트에서 스스로를 죽이지 않았다.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자 끔찍한 역사적 오류”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에 5월 4일 “라피드 장관이 반역사적 발언을 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정부가 우크라이나 신나치주의자들을 지원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라며 “불행히도 역사적으로 유대인과 나치의 협력 사례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대인 혈통이라고 해서 그 나라에 만연한 신나치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조프 부대를 비롯한 신나치주의 세력을 보호해주며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짚었다.

유대인 사회와 나치가 협력한 대표적인 사례는 194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대인 위원회 지도자였던 레죄 카스트너 변호사가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 겸 홀로코스트 실무책임자와 협약을 맺은 사례다. 이 협약의 내용은 1인당 1,000달러를 대가로 1,684명의 ‘저명한’ 유대인을 살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카스트너는 저명하다고 판단되는 유대인 1,684명을 살리는 대가로 유대인 80만여 명에 대한 학살을 묵인했다. 카스트너는 이어 유대인들에게 수용소로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리지 않기로 아이히만과 약속도 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양국 외무부 간의 논쟁은 5월 5일 푸틴 대통령과 베네트 총리의 통화로 일단락되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통화에서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베네트 총리가 사과를 받아들였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과 유대인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해준 것에 푸틴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라고 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 역시 양국 정상이 5월 9일 2차 세계대전 승전일을 앞두고 러시아와 이스라엘 국민 모두에게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들과 모든 전몰자를 추도하는 날을 잘 기념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 법무부가 7월 초 비영리단체 유대인 기구(JA) 러시아 지부가 러시아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데 있어 법률을 위반했다면서 법원에 유대인 기구 러시아 지부 폐쇄 명령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면서 러시아와 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충돌했다.

유대인 기구는 이스라엘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전 세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이민시키는 국제 시민단체로 러시아에선 외국계 대리 기관으로 규정한다. 외국계 대리 기관은 2012년 러시아 정부가 외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외국계 대리인 법’에 따라 해외 기금 지원을 받는 비영리단체 및 언론 등을 칭한다.

라피드 총리는 러시아의 유대인 기구 러시아 지부 폐쇄 추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유대인 기구 러시아 지부는 1989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환이라는 본연의 업무 이외에도 러시아 고위 권력층과 통하는 중요 통로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피드 총리는 외무장관 시절과는 다르게 7월 21일 “러시아의 유대인 사회는 이스라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와 가능한 모든 외교적 논의를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유대인 기구의 활동이 금지되지 않도록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해서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모스크바에 대표단을 파견해 외교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강경하게 비난을 내뱉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에 “유대인 기구 문제는 러시아 사법 시스템에서 다뤄질 것”이라며 러시아 내 문제임을 이스라엘 정부에 설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 상황을 정치화하고 러시아·이스라엘 관계 전체에 투영할 필요는 없다”라며 “여기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이 러시아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라는 서방의 압박을 받아온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양국 관계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간츠 장관은 7월 26일 이스라엘 방송사 채널13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방의 편에 서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아주 광범위한 인도적 지원을 했고 방어용 장비들도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부상병의 치료목적 입국까지 정도만 허용한 이스라엘이 중립 노선을 깨고 우크라이나 편, 서방 편을 든다는 발언은 러시아에 분노를 불러왔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를 두고 러시아 국영 TV와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최근 몇 달간 (이스라엘의) 공식 성명에서 건설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은 수사들을 들어왔다”라며 “유대인 기구 폐쇄를 앞두고 양국 관계가 훼손됐다”라고 러시아·이스라엘 관계 악화를 시사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르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헤르조그 대통령은 2001년 러시아에 중재를 요청하러 온 이스라엘 내각 장관이었고 2021년까지 유대인 기구 의장을 맡았다.

이스라엘에선 총리가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있어 대통령은 상징적인 명예직에 가깝다. 하지만 총리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고 총리 선에서 외교적 갈등 봉합이 안 되면 총리와 논의해 대통령이 나서기도 한다.

헤르조그 대통령은 채널13 방송과 회견에서 유대인 기구 논란에 관한 공개적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라피드 총리와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고 (갈등을 풀기 위한)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헤르조그 대통령은 직접 8월 9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하기도 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에 따르면 두 정상은 다각적인 러시아·이스라엘 협력을 강화하고 유대인 기구에 대해 관련 부서를 통해 합의하기로 얘기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이처럼 의견 충돌을 종종 겪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스라엘은 아직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고,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라피드 총리마저 헤르조그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와의 관계를 이어 나가려 하는 것일까?

 

갈무리 : 이스라엘의 대러 제재 불참이 시사하는 점

최근 있던 양국의 의견 충돌에도, 러시아에 강경한 라피드 총리가 취임했음에도 이스라엘이 대러 제재를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친미, 친서방 국가지만 국익을 중심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맞설 방어무기인 아이언 돔 요격 무기를 제공해 달라는 우크라이나 요청을 거부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해킹 스파이웨어인 페가수스 판매 관련 우크라이나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스라엘은 코앞의 적대세력인 시리아와 이란의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의 맹방이자 중재역을 맡아온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을 중시해왔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런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을 ‘섬세한 균형 외교’라고 평가했다.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외교의 기술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최근 유대인 기구 폐쇄 명령과 관련해서도 아르카디 밀만 전 러시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러시아 안에서 운영되고 있던 서방 기관들은 이미 2012년부터 점차 추방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즉 지난 10년 동안 서방에서 지원을 받던 외국계 대리 기관들이 추방되었지만 이제까지 유대인 기구가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국익 중심의 외교적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맹목적으로 미국과 서방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고 국익을 고려해 러시아와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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