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 칼럼] 윤석열과 펠로시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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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 칼럼] 윤석열과 펠로시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자주시보 김민준 기자
  • 승인 2022.08.1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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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4일 한국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을 두고 외교가가 시끄럽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이 순방한 5개국(대만 포함) 가운데 그 나라 정상과 면담하지 않은 곳은 한국뿐이다. 또, 지금까지 미 하원의장이 한국에 왔다가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4일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서 펠로시를 안 만난다는 것은 속임수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만약 안 만나시면 저 정치 9단 자리 내놓겠습니다”라고 면담을 확신했다. 그만큼 윤석열-펠로시 면담 불발은 예상하기 힘든 이례적 상황이었다. 

이에 관해 대통령실 입장은 우왕좌왕했다. 처음에는 대통령이 지방 휴가를 가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었다가 지방 일정이 취소되고 집에 머물게 되자 미국의 양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안에서는 대통령이 하원의장을 만나는 게 적절치 않다,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 중국을 의식한 게 아니다는 등 여러 엇갈리는 설명이 튀어나왔다. 

한편 방송인 김어준 씨는 4일 자신의 TBS 방송에서 펠로시 측이 윤석열을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이 정보는 한국 측에서 나온 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제 경제 전문 매체 뉴스포터도 3일 “펠로시 입장에서는 그다지 윤 대통령과 만날 이유가 없기에 (지지율이 최저인 한국 대통령을 굳이? 북한 대화 카드에도 못 쓰는…) 만나는 걸 제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이번 일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여러 전문가와 언론이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6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펠로시 의장을 대통령이 만나지 않은 것은 ‘한미 관계에 대한 모욕’”이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힐도 9일 기고문을 통해 펠로시 방한 당시 윤 대통령이 “어떻게든 휴가를 보내려 애썼다”라고 비꼬았다. 또 더힐은 “공항에 마중 나온 한국 대표단은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윤석열-펠로시 전화 통화에 관해서도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말을 미리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뉴스포터는 5일 “약 12년간 외신을 모니터링”했는데 “이렇게 일제히 외신이 한국 정부 그리고 대통령의 행태를 집중(하여) 보도하고 의구심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쯤 되면 윤석열과 펠로시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대체 누가 만남을 거부한 것일까?

일단 한미 양측은 모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설명하게 마련이다. 

심지어 중국도 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명한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4일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윤석열이 아닌) 김진표 국회의장이 펠로시 의장을 만난 것은 예의 바르게 보이고(looks polite), 국익을 보존하는 조치였다”라고 보도했다. 윤석열이 예의 바르게도 중국 눈치를 봤다는 말이다. 

대통령실의 입장에 대해 펠로시 측이 반박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실관계를 인정했다고 볼 수도 없다. 미국이 한국의 대통령실 입장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 더 우스운 꼴이기 때문이다.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면 객관적,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단서로 펠로시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국의 영접이 없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주한 미대사관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면 미국 측 인사만 나와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펠로시를 맞이했다. 

▲오산기지에 도착한 펠로시.     [출처-주한 미대사관 트위터]
▲오산기지에 도착한 펠로시.     [출처-주한 미대사관 트위터]

영접은 자국을 방문한 외국 손님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의전 중 하나다. 

대통령실은 “영접 등 제반 의전은 우리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라며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고, 국회 사무처는 “펠로시 의장이 우리 국회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대해서만 의전을 부탁한다고 제의를 해왔다”라며 결례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대통령실은 미국 측이 늦은 시간이라서 영접을 사양했다고 밝혔다. 

집에 귀한 손님이 와서 마중 나가려는데 손님이 전화해서 ‘밤이 늦었으니 괜찮다’고 하니까 ‘그럼 집에 앉아서 기다려야지’라고 하는 게 정상일까? 영접 같은 의전은 상대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다. 또 해외 순방을 하면 여유롭게 낮에만 다닐 수 없다는 건 외교의 상식이다. 낮에만 영접하고 밤에는 영접 안 한다는 게 외부에 알려지면 국가 망신을 초래할 것이다. 

또 대통령실은 “(미국 측이)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하는 점을 감안해 영접을 사양”했다고도 주장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 숙소 인근에 한국 측 관계자가 나가봤어야 한다. 사실 미국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오산 공군기지를 통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불과 3개월 전인 5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때 박진 외교부 장관이 나가 직접 영접했다. ‘공군기지’ 핑계는 말도 안 된다. 

만약 대통령실 주장처럼 윤석열이 휴가 중이라서, 또 국익을 고려해서 윤석열과 펠로시의 면담을 생략했다면 영접이라도 더 신경 써야 하는 게 정상이다. 미안한 마음에라도 더욱 예우를 갖추려 했을 것이다. 설사 펠로시 측이 영접을 사양했어도 어떻게든 측근을 보내서 잘 보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윤석열과 친한 친구라는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영접을 나가면 급으로 보나 명분으로 보나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정진석 부의장은 윤석열이 당선인 시절 성 김 미 대북 특별대표가 방한하자 도곡동 자택에 다 같이 모여 사적인 술자리를 가졌을 정도로 윤석열의 측근이면서 미국통이기도 하다. 아니면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나, 영접 나갈 사람은 많다. 

▲왼쪽부터 정진석 부의장, 윤석열 대통령, 성 김 특별대표, 조태용 의원.   © 정진석 의원실
▲왼쪽부터 정진석 부의장, 윤석열 대통령, 성 김 특별대표, 조태용 의원.   © 정진석 의원실

펠로시 측에서 영접을 사양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번 순방 기간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다들 화려한 영접을 받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영접을 거부했다? 펠로시가 윤석열과 만나고 싶었는데 윤석열 측에서 사정상 못 만난다고 하면서 영접이라도 잘하겠다는 걸 펠로시 측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처럼 펠로시가 윤석열 면담을 요청했는데 윤석열 측에서 부득이 거절했다고 한다면, 윤석열이 펠로시 영접까지 거절한 건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면담을 요청했는데 펠로시가 거절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열을 놓고 봐도 윤석열과 펠로시 가운데 면담 결정권은 펠로시에게 있다. 

한미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미국은 ‘승인’을 하고 한국은 미국의 ‘승인’을 추종하는 관계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이게 더 심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따라서 윤석열이 미국의 면담 요구를 거절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펠로시가 한국 대통령의 면담을 거절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만약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의전을 성대히 했을 것이다. 자기를 따돌리고 모욕하더라도 기본 예의는 갖추는 게 문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은 난폭한 기질에 속이 좁아서 의전을 못 하게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이 못마땅한 미국

펠로시는 일본에 가서 기자회견을 열고 각국 방문 성과를 설명하였는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일본을 이야기할 때는 정상 교류를 강조한 반면 한국에는 주한미군을 보러 갔다고 하였다. 윤석열과 40분간 통화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석열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미 하원의장이 방문했는데 대통령과 면담도 하지 않는 초유의 상황을 통해 미국이 윤석열 정권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다 한국 정부가 영접까지 하지 않은 건 더욱 이례적인 사건이다. 지금 한미 관계는 정상이 아니다. 

미국이 윤석열 정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미국 언론에서 윤석열 정권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해 탄압의 고삐를 조이는 것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월 22일 자 보도에서 윤석열 정권이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고 있으며 이런 탄압이 “북한의 위협을 막아야 하는 미국에 한국이 초당적 지원을 해야 하는 시기”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내 언론도 문 전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 전 대통령 임기 중 매일같이 비판적 논조로 보도하며 악마화했던 조·중·동 조차 요즘은 문 전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자주 다룬다. 윤석열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문 전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는 다들 알 정도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제주도로 휴가를 간 소식도 발 빠르게 다뤘다. 문 전 대통령 측에서 올린 사진들을 대거 보도하면서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 원숙하고 푸근한 모습, 화기애애한 부부의 모습을 화보처럼 아름답게 보도하였다. 

▲조선일보의 변신.     © 조선비즈
▲조선일보의 변신.     © 조선비즈

조·중·동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미국의 입김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승인’ 정책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언론에도 적용된다. 언론은 비공식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정치에 개입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 언론을 장악하고자 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이 송영길 대표를 선두로 언론개혁을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려고 한창 노력할 때의 일이다. 당시 민주당이 추진한 언론개혁은 미국이 한국 언론을 조종하는 데 방해가 되는 내용이었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난 문 전 대통령은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는 신중론이 힘을 얻었다. 문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언론개혁과 관련한 모종의 언질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인이 미국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는 점은 여러 계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KBS 고대영 해설위원, 민경욱 기자(훗날 자유한국당 의원이 된다)가 주한 미대사관에 정보를 제공했다가 들통이 나 논란이 되었다. 위키리크스는 고 씨를 ‘우수한 대사관 연락책’이라고 소개하였다. 

또 이명박 정권 시기 방송통신위원장을 맡았던 최시중도 주한 미대사와 종종 만나 정보를 제공했고 주한 미대사관은 그를 ‘우리의 오랜 정보원’이라고 불렀다. 

경인방송(OBS) 최대 주주인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은 미국에 정보를 넘겨주던 자신의 간첩 행위를 자세히 밝힌 육성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는 바람에 수사까지 받았다. 물론 한국 형법은 미국 간첩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에 백 회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국정원 비밀정보원으로 활동한 암호명 ‘흑금성’ 박채서 씨는 2018년 8월 31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이 한미합동공작대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증언했다.

증언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곳곳에 미국 정보원 노릇을 하는 한국인이 대거 포진해 있으며 특히 미국인 정보원은 한국 여성과 주로 결혼하는데 부인이 기자나 언론계 종사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국내 언론이 갑자기 문 전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윤석열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은 문 전 대통령을 악마화하느라 바쁜데 언론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제 역으로 자기가 정치보복을 일삼는 악마가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게 미국의 입김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윤석열은 미국에 상당한 불만이 쌓여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펠로시가 면담 요청마저 거절했으니 아마 미칠 지경일 것이다. 

 

미국은 왜 윤석열이 못마땅한가

여기서 중요한 건 미국이 왜 윤석열을 못마땅하게 여기는가 하는 이유다. 

지금 미국이 풀어야 할 가장 급한 난제는 북한이다.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도 있고 중국과 대만 문제도 미국이 풀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미국이 적절히 수위 조절을 할 수도 있고, 안 되겠다 싶으면 일정한 양보를 하고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 문제는 다르다. 자칫하면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날아올 수 있다. 미국에 있어 당장의 위협이 북한이다. 그리고 중국, 러시아도 북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원래 미국에 저자세를 보이며 타협과 양보에 익숙하던 나라들이었는데 북한과 가까이 지내더니 대미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 또 중러에 더 강경한 정책을 구사하려 해도 북한이 신경 쓰인다. 중러와 본격 대결을 했는데 북한이 갑자기 핵시험에 미사일 발사까지 하면서 미국을 위협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협공당하는 꼴이 된다. 

이런 이유로 미 외교협회(CFR) 산하 예방적 행동센터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북한을 1등급 위협으로 꼽았다. 중국, 러시아는 2등급 위협이었다. 또 지난 5월 23~24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미 전략사령부에서 국가정보국장실(ODNI)과 국방정보국(DIA)이 주최한 북핵 특별 토론회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위협할 경우 북한은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형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이 윤석열 정권에 요구하는 역할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이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3월 10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윤석열 당선인이 북한과 중국에 더 강경한 노선을 견지해왔다는 질문에 “윤 당선인의 접근법, 국방에 관한 관점이 매우 좋아 보인다”라고 하였다. 또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북한 억제에 도움이 된다면서 새로 들어설 윤석열 정권과 협력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이를 대북 강경 정책에 대한 지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둘째는 북한이 강하게 나오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 계속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북한이 더 강경한 군사 행동을 할까 봐 저자세를 보인 것이다. 또 올해 내내 북한이 핵시험을 할 것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역시 혹시라도 북한이 핵시험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강경한 군사 행동을 할 경우 맞대응해서 일을 키울 수도 없고, 그냥 넘어가서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에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이 북한을 억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는 중국이 북한의 군사 행동을 억제하도록 중국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움직일 방법은 중국을 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중국과 경제전쟁에 이어 대만을 둘러싼 군사·외교 대결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그러니 윤석열 정권이 나서서 중국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이 집권한 지 100일이 다 되어가지만 첫 번째 역할만 하지 다른 두 가지는 전혀 못 하고 있다. 미국이 볼 때 윤석열 정권은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무능하고 한심한 정권일 뿐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것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에 강경 정책을 폈는데 그 결과 북한의 초강경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고 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연설에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 기념 연설에서 윤석열 정권을 향해 “(선제공격하면)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며 ‘전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력히 경고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볼 때 첫 번째 역할과 두 번째 역할은 애초에 윤석열 정권에게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요구였다. ‘강대강 선대선’을 표방한 북한에 대고 강경 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북한은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할 방법은 없다. 미국도 못 하는 걸 윤석열 정권에게 하라니 윤석열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다. 

만약 문재인 정권이었다면 둘 다 해냈을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 시기에는 대북 적대 정책을 펴면서도 대화도 진행해 어느 정도 위기를 조절하기도 했다. 미국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아니다. 

세 번째 역할인 중국 견인도 미국 때문에 할 수 없다. 미국이 국제 반중 전선을 2중, 3중으로 치면서 윤석열 정권을 끌어들이는 데 급급하다 보니 한국과 중국이 대립하게 되었다. 윤석열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칩4 동맹 같은 노골적인 반중 전선에 합류하고 나토 정상회의에 가서 중국을 규탄하면서 중국을 설득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권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은 미국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윤석열 정권을 향해 ‘나 때문에 네가 곤란해졌구나’라고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태도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가 꼬인 것을 윤석열 책임으로 돌리고 괜히 윤석열에게 화풀이하고 있다. 윤석열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쏟아지는 국민의 손가락질 속에 사퇴했다. 그런데 5세 입학 논란이 박 장관 혼자의 책임일까? 애초에 이 문제는 윤석열이 박 장관에게 입학 연령 하향이 좋은 방향이다, 빨리 집행해볼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해보라고 지시해서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서 논란이 되니까 교육부 장관이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생긴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겼고 결국 사퇴까지 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요구를 하고서 윤석열 정권이 제대로 못 한다고 이러저러한 압박을 넣었다. 그런데 윤석열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괘씸죄까지 걸었다. 윤석열은 윤석열대로 자신에게 모순된 요구를 하면서 압박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미국이 불편하다.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윤석열

몇 가지 사례를 더 생각해보자. 

지난 5월 바이든 방한 당시 문재인-바이든 회동이 화제에 올랐다. 윤석열 입장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미국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만나는 건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모든 관심이 문재인-바이든 회동에 집중되고 한미정상회담은 뒷전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윤석열은 ‘미국 대통령에게 무시당한 윤석열’ 같은 머리기사가 신문에 도배되는 걸 상상하면서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음 직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문재인-바이든 회동을 막았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기어이 문 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해 기를 살려주고 갔다. 윤석열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윤석열은 문 전 대통령을 탄압하기 위해 서해 공무원 월북 사건, 탈북 살인마 추방 사건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꼬이는 바람에 문 전 대통령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예를 들어 탈북 살인마 추방 사건의 경우를 보자. 처음에는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살인마를 비호한다는 반론이 나오자 한기호 국힘당 의원이 “16명이 살해됐다는 문 정권의 발표는 허위”라며 살인사건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건의 쟁점이 살인사건 유무로 옮겨붙었고 태영호 국힘당 의원이나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살인을 한 건 맞는다며 자기들끼리 반박하고 한 의원이 결국 주장을 번복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처음에 흔들렸던 여론도 ‘살인마 추방이 옳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리얼미터가 7월 19~20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살인마 추방이 잘한 결정이라는 의견이 51.1%, 잘못한 결정이라는 의견이 42.1%로 나왔다. 또 응답자의 53.7%가 이 사건이 다시 쟁점이 된 이유가 윤석열 정권이 지지율 하락세를 전환하려고 의도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8.1%는 정권이 바뀌자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이 사건을 번복해서 발표한 것을 이유로 꼽았다. 결국 60%가 넘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현 정권의 의도적인 정치공세라고 인식한 것이다. 

윤석열이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이준석 국힘당 대표를 내치는 과정도 엉망이었다. 윤석열의 최측근 집단인 이른바 ‘윤핵관’이 모두 달라붙어서 이 대표 한 명을 강제로 몰아내면서 온갖 편법과 소동을 다 일으켰다.

거기다 윤석열이 이 대표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비난한 문자까지 공개되어 큰 파문이 일었다. 또 국힘당 안에서도 유승민, 하태경 같은 대표적 미국통들이 이 대표를 두둔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당내 대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일을 거치며 국힘당 지지율은 야당인 민주당 지지율과 역전되고 말았다. 

미국이 볼 때 윤석열 정권의 이런 모습은 굉장히 어설프고 한심해 보일 것이다. 거기다 매일같이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수준 낮은 언행으로 지지율이 역대 최악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미국의 보수 성향 안보 전문지 『국익』(The National Interest)도 7월 29일 보도한 기고문에서 윤석열 정권이 매우 위태롭다며 “군부 쿠데타의 위험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고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거만하게 굴지 않도록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 “미국의 안보 이익에 필수적인 한반도 상황 관리를 위한 비상 계획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펠로시가 만남을 거부했으니 윤석열은 미국이 자기를 모욕했다며 분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미 관계가 다시 돈독해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윤석열 지지율은 앞으로 다시 오르기 힘들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결국 경제와 안보에서 판가름 난다. 그런데 경제는 계속 나빠질 일만 남았으며, 안보도 갈수록 위태롭기만 하다. 지난 8월 10일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이라며 “강력한 보복성 대응”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7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 발언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연이은 북한의 강력한 경고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현재로선 적절하지 않습니다”라며 말을 아꼈고, 통일부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당국자를 통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라고 하였다.

강인선 국가안보실 대변인은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라면서도 “대화의 길로 나올 것을 촉구한다”라고 하였다. 늘 하던 유감 표명 외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이 볼 때는 북한과의 ‘치킨게임(차 2대가 마주 보고 달리다가 먼저 피하는 측이 지는 담력 시합)’에서 윤석열 정권이 도로 밖으로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윤석열을 선두로 한 정부·여당 인사들의 수준 미달 말실수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원래 이런 말실수는 그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으로 하루아침에 다듬을 수 없다. 말실수하지 않으려면 수십 년 정치권에서 갈고닦아 닳고 닳은 사기꾼이 되어야 하는데 윤석열은 그런 훈련이 안 돼 있다.

4선 중진 권성동 의원도 말실수를 하는데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윤석열이 능수능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거기다 윤석열은 각종 논란 속에서도 출근길 약식 문답을 고집할 정도로 준비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온갖 말실수는 계속될 것이다. 

윤석열 지지율이 추락하고 정권이 흔들릴수록 미국의 불만도 커질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불만은 윤석열 정권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한미 관계가 어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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