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비참하게 죽은 아베와 일본 극우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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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비참하게 죽은 아베와 일본 극우의 앞날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07.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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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당한 아베, 어떤 자였나? 

“한국에는 기생집이 많아 성매매가 일상적이고 ‘위안부’ 활동도 이런 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97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증명할 증인이나 증거는 없다.” (2007년)

“한국은 어리석은 나라이자 간신들이 있는 나라다.” (2013년)

“한국의 최대 급소는 경제다. 일본의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이나 경제에 대한 지원 협력을 끊으면 삼성도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다.” (2013년)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14년)

위는 모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생전에 우리 민족을 향해 늘어놓은 막말이다.

지난 7월 8일 일본 극우세력의 정점인 아베가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나라현 나라시의 한 역에서 자민당 소속 후보자의 참의원 선거 유세를 돕던 중 사제 산탄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전직 자위대 장교인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는 “아베가 특정 종교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노렸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아베가 거리에서 유세 발언을 하던 중 갑자기 화약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성 두 발째에 아베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오른쪽 목덜미와 왼쪽 가슴이 관통당한 아베는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고 6시간 만에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그야말로 비참한 죽음이다.

생전 아베는 자위대의 무력 행사·활동 반경을 확대하는 안보법 제정(2015년 9월 19일), 평화헌법 개정 공식화(2017년 5월 27일) 등에 나섰다. 일제 패망 이후 평화헌법 개정을 공식화한 총리는 아베가 처음이다. 평화헌법이란 일제 패망 뒤 1947년 새롭게 제정된 일본의 헌법으로 일본의 군대 보유, 교전권(무력을 동원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권한)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2019년 7월 아베 정권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수출을 중단하며 우리 경제를 고사시키려는 도발을 감행했다. ‘일본 전범기업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한국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자 이를 없던 일로 하라며 문재인 정부에 강짜를 부린 것이다.

아베 가계도
아베 신조 가계도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아베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다. 아베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아버지이자 총리를 지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는 생전에 평화헌법 재검토를 주장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한 아베는 암살당하기 전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다.

아베는 1993년 7월 아버지의 지역구(야마구치 1구)를 물려받아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이후 아베는 자민당 간사장(원내대표)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2인자인 관방장관을 거쳐 2006년 9월에 90대 일본 총리가 됐다. 당시 52살로 일제 패망 이후 등장한 최연소 총리였다. 

아베는 2007년 9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이후 2013년 12월에 또다시 총리가 됐고 약 7년 10개월 동안 아베 내각이 이어졌다. 아베가 집권한 기간은 두 차례의 집권 기간을 합치면 총 8년 9개월에 이른다. 

아베가 다시 집권한 일본에서는 극우화가 몰아치듯 급격하게 진행됐다. 아베 정권 시기 일본 초중고 교과서에는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반면 종군 ‘위안부’를 비롯한 일제가 벌인 식민침탈·전쟁범죄 관련 내용은 사라졌다. 이는 평화헌법 개정 여론을 다지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일본 극우화의 중심에는 늘 아베가 있었다.

아베는 생전 “개헌세력의 의석수가 중·참 양 의원에서 개헌안 발의 요건에 이르면 개헌에 도전해야만 한다”라고 말해왔다. 이런 아베가 평화헌법 개정의 분수령으로 평가되던 참의원 선거를 바로 앞두고 죽었다.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극적인 죽음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일본의 최장수 총리를 지낸 국가 요인의 목숨을 지켜야 할 경찰의 경호가 무척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아베 주변에 수십 명 넘게 늘어서 있던 나라현 경찰과 경호 전담 요원들은 범인인 야마가미가 아베의 등 쪽으로 7~8미터 뒤까지 다가가 첫 번째로 총을 쏠 때까지 멀뚱멀뚱 서 있었다. 

야마가미가 두 번째로 쏜 총탄이 아베의 가슴과 목을 꿰뚫을 때에도 경찰과 경호 요원들은 아베를 보호하지 않고 우두커니 있었다. ‘아베 암살’ 앞에서 30명이 넘는 경찰과 경호 인력이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런 근거리에서 (총을) 맞다니 SP(요인 경호를 전담하는 경찰·Security Police)는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나라현 경찰이 일을 했다면 야마가미가 살인범이 될 일도 없었다. 나라현 경찰이 살인범을 만든 거다” 같은 반응이 나왔다.

분명한 건 아베의 죽음에 따른 동정여론으로 일본 극우세력이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일본 극우세력 압승‥평화헌법 개정 가시권

지난 7월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는 자민·공명 공동여당이 압승했다. 물론 아베가 암살당하기 이전부터 자민·공명당이 압승할 것이란 관측이 높기는 했다. 하지만 아베의 죽음으로 자민·공명당이 기존의 예상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요미우리신문과 민영방송 NNN이 7월 11일부터 12일까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이 이번 선거에 영향을 줬냐’는 물음에 일본 유권자 86%가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이번 선거 결과 일본 극우세력은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까지 모든 국회 상임위원회를 독자 운영, 평화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절대안정의석을 확보했다. 자민당뿐만 아니라 평화헌법 개정에 호응해온 일본유신회가 크게 의석을 늘린 것이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반면 이합집산, 사분오열을 반복해온 일본의 진보 야권은 참패했다. 진보 야권과 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던 지역구 상당수에서도 자민당 후보자가 승리했다. 인지도가 높은 렌호 전 입헌민주당 대표대행이 지역구에서 4위로 당선되는 장면도 있었다. 렌호 의원은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171만 표를 넘게 받아 압도적인 1위로 당선됐지만 이번에는 약 67만 표를 받아 4위에 그쳤다. 이 역시 아베의 죽음이 미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7월 10일 렌호 의원은 「선거의 날 2022 우리들의 내일」이라는 방송에 출연해 “제 선거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몸으로 느꼈다”라며 “특히 지난주 금요일(아베 전 총리가 암살당한 7월 8일) 이후에는 확 분위기가 바뀌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만간 일본에서 평화헌법이 개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7월 12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마음을 계승해 특히 정열을 기울여 온 납치문제와 헌법 개정 등 자신의 손으로 이룰 수 없던 난제에 진지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라며 “가능한 빨리 (평화헌법 개정안) 발의에 이르는 논의에 나서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평화헌법 개정을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국민투표에서 평화헌법 개정안이 반드시 가결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아베 정권 시기 치러진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정당의 의석이 3분의 2를 넘어섰다. 뒤이어 2014년, 2017년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투표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중·참 양의원 의석수 3분의 2를 넘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베 정권은 야권에 평화헌법 개정 논의를 위한 헌법심사위원회 동참을 촉구할 뿐 바로 국민투표에 나서려 하지는 않았다. 평화헌법 개정안 부결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기시다 정권에서 밀어붙인 평화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다면 집권 자민당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7월 10일 일본 매체 겐다이비즈니스(現代ビジネス)는 「아베 전 총리의 죽음으로 헌법 개정 논의는 어떻게 될까? 그 방향을 점친다」라는 분석 글에서 “헌법 개정의 발의를 실현해 국민투표에 들어가서 만일 부결될 경우 ‘유감이다’로는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내각(정권) 총사퇴 등이 닥치게 된다”라고 진단했다.

겐다이비즈니스는 “아베 신조라는 힘 있는 기관차가 자민당이라는 열차를 끌어왔기 때문에 헌법 개정의 분위기가 고조될 수 있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평화헌법 개정을 이끌어온 아베가 죽었기 때문에 평화헌법 개정의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베가 암살당하면서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베의 죽음이 겹친 참의원 선거 이후 자민당 의원들은 초선부터 중진에 이르기까지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수행하겠다”, “아베 전 총리를 계승하겠다”라며 평화헌법 개정에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7월 11일~12일 요미우리신문과 민영방송 N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회의 헌법심사회에서 헌법 개정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을 기대하냐’라는 물음에 ‘기대한다’는 응답이 58%로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머잖아 일본 극우세력은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마지막 관문, 국민투표를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빠르면 올가을부터 국회 헌법심사회 개최를 시작으로 국민투표 법안 발의, 의결과 관련한 움직임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으로 일본 극우세력은 아베의 죽음에 따른 동정여론을 전면에 걸고 국민투표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자민당은 새로운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와 역할을 규정하려 한다. 만약 국민투표를 통해 평화헌법이 개정된다면 자위대는 사실상 전쟁을 할 수 있는 정규군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아베 찬양한 윤석열…우리의 교훈과 대응 

“왜 이런 인물이 정치가가 되어 일본 정치의 정점에 군림하면서 전후 일본 사회가 부지런히 쌓아 올린 ‘이 나라의 모습’을 바꾸려 하는 것일까. 이 정도로 텅 비고 공허한 남자가 총리가 되어 버린 배후엔 전후 70년이 지난 이 나라의 정치체제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르포르타주 『아베 삼대 ‘도련님’은 어떻게 ‘우파’의 아이콘이 되었나』를 펴낸 저자 아오키 오사무가 내린 평가

위는 아베의 형과 아내, 아베의 어린 시절을 아는 친구와 지인, 아베를 가르쳤던 선생님 등을 면밀하게 취재한 일본인 기자 아오키 오사무가 내린 결론이다. 정리하자면 총리 자격도 없는 아베가 평화헌법 개정을 밀어붙이며 일본을 망쳐놓았다는 신랄한 평가다. ‘일본인’이 아베의 삶과 주변을 구석구석 취재하고 고민 끝에 내린 평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을 애도한다”라며 아베 측에 조전을 보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주한일본대사관에 있는 분향소를 직접 찾아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에 헌신하신 분”이라며 아베를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다.

아베를 두둔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관계와 전혀 맞지 않을뿐더러 국민감정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일제가 저지른 온갖 범죄에 눈을 감고,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꿈꾸며 한국에 경제공격을 감행한 아베한테 저런 평가가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다.

더구나 기시다 정권 역시 한일정상회담에 매달리는 윤 대통령을 향해 ‘한국 대법원이 내린 전범기업 배상 판결부터 철회하라’라고 윤석열 정권에 통보했다. 혹시라도 한일관계 정상화를 공언한 윤석열 정권이 일본 극우세력에 무릎을 꿇는다면 분노한 민심의 태풍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아베가 죽었지만 앞으로도 일본 극우세력의 준동은 이어질 듯하다. 우리는 일본 극우세력의 저열한 도발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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