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182-183] 미국 자이언트 스텝, 경제 파국으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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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82-183] 미국 자이언트 스텝, 경제 파국으로 가나
  •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07.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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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상황

미국의 인플레이션, 물가상승이 심각하다. 미국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아래 물가상승률)는 3월 8.5%, 4월 8.3%, 5월 8.6%로 3개월 연속 8% 이상을 기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전년 동월 대비) ⓒ연준경제데이터(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2008년 이후로 5%를 넘은 적이 없고 대부분 2.5%를 밑돌았다. 그러던 물가가 2021년 치솟기 시작해 현재 8.6%까지 뛰었다.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섰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해 3월 기준금리를 0.25% 인상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3월 8.5%에서 4월 8.3%로 다소 하락했다. 많은 전문가가 금리 인상으로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내림세로 돌아섰다고 생각했다. 연준도 자신감을 얻은 듯 물가를 분명하고 확실히 잡겠다며 5월 4일 금리를 0.5% 인상했다. 

금리를 올릴 때 통상 0.25% 단위로 올린다. 그래서 한 번에 0.5%를 올리는 걸 한 단계를 건너뛰었다고 해서 ‘빅 스텝’(큰 걸음)이라고 부른다. 미국이 빅 스텝을 한 건 200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6월 10일 발표된 5월 물가상승률은 8.6%였다. 잡히는 줄 알았던 물가상승률이 다시 올랐다.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수석 경제고문은 “지금은 완전히 통제력을 잃은 상태”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공포에 빠진 미국은 더 강한 대응책을 갈구했다. 연준은 6월 15일 빅 스텝을 넘어 한 번에 금리를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연준은 5월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었는데, 5월 물가상승률을 보고 태도를 바꿨다. 심지어 연준은 7월에도 연속으로 자이언트 스텝을 할 거라고 예고했다. 자이언트 스텝을 한 것도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 두 번 연속으로 자이언트 스텝을 한다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자이언트 스텝은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월 19일 미국 경제학자 5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이 44%로 집계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의 38%보다 높은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경기침체가 왔거나 그 직전에나 볼 수 있을 높은 수치”라고 우려했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5월에 전 세계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 750명을 조사한 결과 60%가 2023년 말이면 경기침체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0.75%라면 1%도 안 되는데 그 정도 금리를 인상한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걸까? 이에 대해선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던 1980년과 1994년의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80년 자이언트 스텝은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촉발됐다. 석유 가격이 폭등하며 1976년 5%를 밑돌던 물가상승률이 1979년 11%로 치솟았다. 한국도 타격을 받아 1973년 3.5%였던 물가상승률이 1974년 24.8%가 되었으며 1979년 18%를 지나 1980년 30% 가까이 올랐다.

이때 미국이 1979년 11%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981년까지 19%로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했다. 자이언트 스텝이 비상상황에서 이뤄지는 조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이언트 스텝의 여파는 컸다. 1982년이 되자 물가가 진정됐지만, 실업률이 10%대로 치솟고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등 급격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980년 -0.3%를 기록했다. 1981년 2.3%로 반등했지만 1982년 다시 -2.1%로 떨어졌다. 

미국은 1994년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1994년부터 1년 동안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빠르게 인상했다. 당시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도 충격을 주었지만, 더 주목해서 들여다볼 점은 세계적인 경제 파국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가 낮았을 때 미국 자본은 이자율이 높은 신흥국에 대거 들어갔다. 그런데 미국 금리가 급격하게 대폭 오르자 빠르게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1994년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돈을 돌려주어야 했는데 당장 가지고 있는 달러 보유량이 부족해 달러를 내어줄 수 없어 국가가 부도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 외환위기는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아시아까지 번져 한국의 IMF사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이언트 스텝을 할 정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다른 나라에 치명상을 입힐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6월 28일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세 차례 인상된 결과 1.5~1.75% 수준이 됐다. 연준은 최근 공개한 반기 통화정책보고서에서 기준금리를 올해 안에 4~7%까지는 올려야 물가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4%에 도달하려면 최소 자이언트 스텝을 1번, 빅 스텝을 3번 해야 한다. 7% 같은 경우엔 남은 6개월 동안 매월 자이언트 스텝을 한다 해도 도달할 수 없다. 기어이 기준금리를 7%까지 올려놓고자 한다면 기준금리를 1%씩 올리는 조치를 3번은 해야 한다. 그런데 기준금리 1% 인상은 시장에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연준이 공개한 반기 통화정책보고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조치를 해야 물가를 잡을까 말까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라고 선언한 상황이다.

자이언트 스텝을 미국과 서방 경제가 전반적인 파국으로 가는 신호탄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경기침체가 촉발되면 세계적으로 수요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려 세계 경기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스리랑카는 이미 국가부도를 선언했고 잠비아와 레바논도 국가부도 직전이다.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파키스탄도 심상치 않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연 60%에 달했고 이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52%로 올렸다.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는 데 따라 이런 위기가 더 심해지고 더 많은 나라로 퍼질 수 있다.

2. 돈 문제

미국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1)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인플레이션이란 시중에 돈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돈이 늘어나는데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은 그대로면 물건 가격이 올라간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물건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사람들이 돈을 적게 쓰게 되어 경제 불황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급격한 물가상승은 물가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정권을 붕괴시켜 한 나라에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물가상승을 해소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양을 줄이거나 상품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유통되는 돈을 줄이는 것을 긴축이라고 한다. 자이언트 스텝 같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바로 긴축통화정책이다. 

금리는 쉽게 말하면 이자율이다. 금리가 높으면 은행에 돈을 예금했을 때 받는 이자 그리고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 내야 하는 이자가 늘어난다. 

예를 들어 2020년 6월 한국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2~4%대였다. 금리가 4%일 때 2억 원을 대출받았다면 이자는 1년에 8백만 원, 한 달에 67만 원이다. 

현재 미국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한국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8%를 돌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분석대로 대출 이자가 8%가 된다면 2억 원에 대한 대출 이자는 연 1,600만 원, 월 130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자 부담이 무거워지면 대출을 갚으려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한다. 돈이 줄면 물가상승률도 내려갈 것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에 따라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돈이 늘어난 이유

지금 물건 가격이 심각하게 오를 만큼 많은 돈이 풀린 건 무엇 때문인가.

돈이 늘어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제성장이 일어날 때다. 취직도 잘되고 월급도 오르고 기업들의 이윤도 늘어나면 나라에 돈이 많아진다. 이때 경기가 너무 과열되지 않도록 금리를 올리는 조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의 물가 상승이 이런 이유로 일어난 건 아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2020년 3월 보고서에서 18세에서 64세 사이의 미국인 중 44%가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위 20% 미국인의 임금은 2008년 4,351달러에서 2020년 4,001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좋은 일자리/나쁜 일자리’로 표현할 수 있는 고용의 질 지표(Job Quality Index)도 2008년 1월 87.29에서 2021년 7월 81.85로 악화했다.

이 자료들은 미국에서 일자리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인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미국에서 고용률이 높다고 하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든다. 최근에도 테슬라는 정규직의 3.5%, 약 6,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예고했고 인텔은 모든 고용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으며 미국 자동차회사 스텔란티스는 무기한 정리해고를 선언했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미국인은 건당 임금을 받는 배달노동 같은 불안정한 일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미국이 물건 가격이 심각하게 비싸질 정도로 경제 호황을 맞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고용의 질 지표(Job Quality Index, JQI) ⓒ미국 번영을 위한 연합 (Coalition for a Prosperous America)

그러면 미국의 통화량은 어떻게 늘어났을까? 경제성장을 하지 않고도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빚을 내는 것이다. 

부자나 유수의 기업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빚도 많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자산은 2012년 181조 원에서 2022년 3월 439조 원으로 늘어났는데, 부채도 60조 원에서 124조 원으로 늘었다. 미국 기업 애플은 총자산 457조 원 중 자기 자본은 86조 원뿐이고 나머지는 빚이다. 부채 비율이 431%가 넘는다. 

부자와 큰 기업들은 왜 빚을 낼까? 100억 원을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담보로 100억 원을 대출받으면 200억 원짜리 건물을 사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돈이 많으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대출은 특혜와도 같다. 그래서 빚도 자산이라는 말이 있고 실제로 자산으로 집계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사람들이 돈을 많이 써야 한다.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돈을 많이 쓰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대출을 권장했다. 기업이 대출을 받아 공장을 새로 짓는 등 투자를 늘리면 그만큼 일자리가 창출되어 국민의 소득이 늘어난다. 국민도 대출을 받아 소비하면 기업이 성장하고 그러면 일자리가 창출된다. 대출을 권장하는 건 이런 선순환을 끌어내겠다는 논리다.

한국에서 빚을 내어 소비를 늘리게 하는 정책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1997년 IMF사태로 경기침체가 일어나자 1999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번 달 월급이 100만 원이면 원래대로라면 100만 원만큼만 소비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를 갖게 되면 미래에 받을 임금을 당겨와 150만 원, 200만 원도 지출할 수 있게 된다.

신용카드 규제가 풀리자 은행들은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발급했다. 번화가에 가판을 설치해 소득이나 신용을 따지지 않고 사은품이나 현금 지급, 연회비 대납을 해줘 가며 신용카드를 살포했다. 미성년자도 서명만 하면 신용카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며 소비를 조장하는 카드회사 TV광고가 쏟아지던 것도 바로 이때다. 그 결과 1998년에서 2002년까지 오는 동안 경제활동인구 1인당 보유 카드 수는 2.0장에서 4.6장으로 늘어났고 신용카드 사용액은 64조 원에서 623조 원으로 10배 급증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용액이 10배 증가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소득이 10배로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카드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카드빚을 다른 카드로 메우는 소위 ‘돌려막기’도 횡행했다. 결국 2002년부터 신용카드 연체율이 치솟았고 2004년 신용불량자가 361만 명에 이르렀다. 외환위기가 온 1997년 신용불량자가 143만 명 정도였으니, 엄청나게 폭증한 것이다.

미국도 경기부양을 위해 빚을 늘리는 걸 장려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달러를 대량으로 뿌리는 정책을 폈다. 미국은 이런 돈 뿌리기를 '양적완화'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그 결과 총 달러 통화량이 2008년 1월 3조 5,000억 달러에서 2022년 1월 7조 7,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14년 만에 달러 통화량이 2배로 껑충 뛰었다. 

달러를 뿌린다고 해서 재난지원금처럼 국민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 연준이 발행한 달러는 금융기관으로 들어가고 금융기관이 대출을 통해 기업과 국민에게 유통한다. 

미국은 2010년 4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기준금리를 0.75%로 유지했고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4월부터 최근까지는 금리를 0.25% 수준으로 더 낮췄다. 이 정도면 실질 이자율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해서 ‘제로금리’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유럽이나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기도 했다. 예금을 하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야 한다. 저축하지 말고 대출받아서 소비를 늘리라는 뜻이다. 

이런 정책에 따라 미국의 빚이 늘어났다. 미국의 가계+정부+기업 부채*는 2020년 1월 미국 GDP 대비 747%에서 2021년 3월 856%까지 상승했다. 1년 만에 미국 GDP만큼의 빚이 늘어난 것이다.

*연방 정부 및 주 정부 부채, 가계 및 비영리단체 부채, 비금융기업 및 일부 금융기업 부채

▲실질 시중 통화량 ⓒ연준경제데이터
▲미국 국가 총부채: 연방 정부 및 주 정부 부채, 가계 및 비영리단체 부채, 비금융기업 및 일부 금융기업 부채 ⓒCEIC

이렇게 빚으로 경기부양을 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급격하게 유입되어 필연적으로 물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러 전문가가 조만간 폭탄이 터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의 소득이 늘어서 돈이 많아지는 건 건강한 경제성장이지만, 소득은 줄어드는데 빚이 늘어나서 물건 가격이 오르면 거품이고 유해하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 집을 샀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5억 원이 있고 5억 원을 대출받아 10억 원짜리 집을 샀다. 그런데 금리가 대폭 인상되어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면 집을 파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집값이 떨어진다. 만약 집값이 10억 원에서 5억 원으로 하락하면 어떻게 되는가. 집을 판 돈으로 대출 원금을 갚고 나면 빈털터리가 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일본도 장기 불황을 겪으며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 1990년 3,600만 엔이던 아파트가 2010년 450만 엔으로 하락하는 식이었다. 절반도 아니고 거의 1/8 수준으로 낮아졌다. 

일본처럼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있었다.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이 한껏 과열된 상태에서 대대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에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여 사람들이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할 정도로 집값이 폭락한다면 대출을 내준 은행까지 무너질 수가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바로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 당시 금융위기의 신호탄을 쏜 리먼 브라더스는 부실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했다가 부동산 거품 붕괴로 부채 700조 원을 남기고 파산했다.

이래서 빚이 증가함으로써 유발되는 물가상승은 매우 위험하다. 물가상승이 워낙 가팔라서 이대로 둬도 경제가 파탄 나고,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한대도 파국을 맞을 수 있다.



3) 늘어난 돈은 어디 쓰였나

미국이 공급한 돈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대부분 부동산, 가상화폐,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사람들이 빚을 낸 돈을 생산적인 분야에 썼으면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 버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제조업 기업에 투자했고 그 기업은 투자받은 돈으로 공장을 확장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설사 기업이 망하더라도 공장이라는 실물은 그대로 남는다. 그러면 누군가가 공장을 인수해서 생산설비를 가동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식이 하락할 수는 있어도 0이 되진 않는다. 물론 주식도 휴짓조각이 될 수 있지만 되살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주식투자를 해도 서비스업에 투자했으면 공장 같은 실물이 없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특히 가상화폐는 실체가 없다. 가상화폐의 가치를 떠받쳐줄 실물이 없다. 가상화폐에 아무리 많이 투자해봤자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상품이 생산되는 건 아니다. 가상화폐는 완전히 뜬구름, 신기루다. 길을 걷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를 사고파는 것보다도 못하다. 

가상화폐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나타난 게 루나 사태다. 가상화폐 중 하나인 루나는 5월 초까지만 해도 개당 14만 원대에 거래되었지만, 급격히 가치가 하락해서 한 달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28만 명이 투자했던 시가총액 30조 원의 가상화폐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상화폐 시장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1천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것도 2021년 11월에는 4천조 원 정도였던 게 가치가 절반 이상 증발한 상태인데도 아직 규모가 거대하다. 이 가상화폐 시장이 붕괴하면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부동산으로 들어간 돈은 어떨까? 부동산은 땅과 건물이라는 실체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다고 해서 가상화폐처럼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도 부동산 자체로는 생산성이 없다. 땅에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물건을 생산해야 비로소 부동산이 유의미한 기능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그 자체로 어떤 가치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졌을 때 리먼 브라더스는 속수무책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세계적인 경제 충격으로 이어졌다. 만약에 리먼 브라더스가 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지었으면, 설령 파산하더라도 공장 설비를 팔아 피해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은 2008년에도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할 만큼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2008년보다 더 많은 돈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 있다. 현재 미국 주택 가격은 거품이 최대로 끼었던 2007년 2월의 1.6배다. 

▲S&P/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 2000년 1월 주택가격을 100으로 삼은 지수이다 ⓒ연준경제데이터

2008년은 부동산만 터졌지만, 지금은 가상화폐와 주식시장도 부풀어 있어 같이 붕괴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2008년보다 훨씬 큰 충격이 올 수 있다.

거기다 지금은 거품 붕괴만이 아니라 물건이 부족한 현상도 같이 발생하고 있다. 물건 가격은 돈이 많아져도 오르고 물건이 부족해져도 오른다.

현재 물건 부족 현상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중·대러 제재로 원자재와 부품, 장비를 제대로 수급할 수가 없다는 점 등의 요인이 영향을 주었다. 

구체적으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리용품 대란을 보자. 텍사스에 가뭄이 나면서 면화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면화 생산에 필요한 비료가 공급되지 않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분유 품절률이 43%까지 오르는 바람에 사람들이 분유를 구하기 위해 몇 시간씩 운전하며 상점을 돌아다니는 일도 일어났다.

여러모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2008년보다 더욱 심각한 악성 경제 파국을 맞닥뜨릴 것이다.

 

3. 물건이 적다

현재 미국과 서방 경제권에서 물가가 대폭 오르고 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물건 가격이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서방에서는 물건이 부족한 현상도 같이 일어나고 있다. 돈이 늘어나면 그만큼 물건도 많아져야 물가가 오르지 않을 텐데 오히려 물건이 적어지고 있으니, 물건 가격이 더더욱 가파르게 오른다.

우리는 시장이나 대형상점에 가면 물건이 가득가득 쌓여 있는 걸 보고 살기 때문에 물건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선 상점 매대가 텅텅 비고 분유를 사기가 어려워 멕시코에 건너가 분유를 사 오는가 하면 달걀 12개를 1달러 싸게 사기 위해 30분 동안 운전해서 상점을 찾아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 미국 내 물건 만드는 공장들이 많이 없어졌다

세계 1위의 부자나라라는 미국에 대체 왜 물건이 부족한 걸까? 그 이유는 첫째로 미국 내에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만 해도 미국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제조업이 발달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17%밖에 만들지 못한다. 

미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하락했다. 미국 GDP에서 제조업의 비율은 2000년 15%에서 2020년 11%로 내려갔다. 2020년 기준 한국 25%, 중국 26%에 한참 못 미친다.

제조업 노동자도 줄어들었다. 농업 종사자를 제외한 전체 미국 노동자 중에 제조업 노동자의 비율은 1943년 38%를 기록해 정점을 찍은 이후 2020년까지 오면서 9%로 하락했다. 한국은 2021년 하반기 21%, 중국은 2020년 27%인 것에 비해 턱없이 낮다.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1947-2015)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2005-2022) ⓒ연준경제데이터
▲제조업 노동자 수 / 농업 분야 제외한 전체 노동자 수(%)(1940-2022) ⓒ연준경제데이터

2) 물건 만드는 공장들이 중국으로 많이 갔다

미국은 제조업을 발전시켜 부자나라가 된 후 점차 경제를 금융 위주로 재편했다. 그러면서 공장을 인건비 낮은 해외로 이전해 그곳에서 싼값에 물건을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왔다. 이게 더 많은 이익을 내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미국 제조업이 몰락하고 공장이 사라졌다.

그러면 미국에 있던 공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많은 수가 중국으로 갔다. 

미국 기업 애플을 보자.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애플 제품의 95.3%를 중국이 생산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자 애플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인도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그래서 달성한 2021년 인도에서의 생산량이 3.1%다.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

2019년 7월 12일 미국 투자전문매체 마켓리얼리스트에 따르면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 HP는 생산량의 40%를, 세계 3위 컴퓨터 회사 DELL은 생산량의 47%를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왔다. 

중국에서 만들었더라도 미국 기업 제품이면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미국 기업이 만들었더라도 중국에서 만들었으면 중국산이다. 따라서 미국 기업이 자기 제품을 미국으로 가져가려면 관세를 매겨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과 경제전쟁을 하면서 대중 관세를 대폭 높여놨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제품의 75%, 약 3,7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최대 25% 관세를 붙였다. 

미국이 중국에 던진 관세 폭탄은 미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중국은 미국이 가장 많은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인데 관세 때문에 중국 상품 가격이 높아져 미국의 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중국 수입액은 2020년 4,354억 달러에서 2021년 5,063억 달러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중 무역적자도 14.5% 증가했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2021년 5월 대중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분의 92.4%가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5월 11일 “미·중 무역전쟁 기간(2018~2020년) 동안 미국의 중국 수출은 2017년에 비해 지속해서 낮았고 미국 일자리는 24만 개 이상 사라졌으며 미국 기업은 1조 7,000억 달러의 손실을 봤고 무역적자를 줄이지도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대중 관세는 미국의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데이비드 아델만 전 주싱가포르 미국대사가 6월 20일 CNBC 방송에 출연해 “많은 경제학자가 대중 관세를 철폐하면 물가상승률이 1% 하락한다고 말하고 있다”라며 “1%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수치”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8%대인데, 대중 관세를 철폐하면 7%대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6월 8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대중 관세를 일부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중 관세로 인한) 높은 비용은 중국인이 아니라 결국 미국인이 부담하게 됐고,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피해를 준다”라는 것이다.



3) 러시아 제재

미국과 서방의 러시아 제재도 물가에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특수군사작전을 펴자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에 금융제재, 신규 투자 금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 등의 조치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러 제재는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과 서방의 경제를 파괴하고 있다. 

우선 러시아는 2022년 1분기 사상 최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경제성장률 3.5%를 기록했다. 원유 수출량이 줄었지만, 원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결과적으로 수출액이 8% 증가했다. 게다가 대러 제재로 수입액이 44% 감소하면서 무역 흑자가 대폭 커진 것이다. 반면 미국은 1분기 경제성장률 -1.6%, 유로존은 0.6%를 기록했다.

대러 제재는 미국과 서방의 물건 가격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석유, 식량, 비료 가격이 폭등했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6월 11일 기준 1갤런(3.8리터) 당 5달러를 넘겼다. 로스앤젤레스 등 일부 지역에서는 갤런 당 7달러도 넘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갤런 당 4달러를 넘긴 적이 있지만, 갤런 당 5달러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 휘발유 가격이 갤런 당 3.08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62% 정도 올랐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자동차 연료값은 물론이고 석유를 원료로 생산하는 섬유, 플라스틱, 에너지 등의 가격도 덩달아 올라 전반적인 물건 가격을 올린다.

5월 31일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땐 석유만 부족했지만, 지금은 석유, 가스, 전기 등 모든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올해 에너지 대란이 과거 석유파동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식량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과 보리의 3분의 1, 옥수수의 5분의 1을 공급하는 세계의 곡창지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곡물, 육류 등 55개 농식품 가격 변화를 나타내는 식량가격지수를 발표하는데, 2020년 98.1이었던 이 지수가 2021년에는 125.7, 올해 5월에는 157.4로 상승했다. 식료품 가격이 매년 25% 정도씩, 2년 동안 60% 올랐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달걀 한 판 가격은 두 달 전보다 54%, 우유는 4월 한 달 동안 38% 상승했다. 

비료 가격도 두 배가량 올랐다. 러시아는 전 세계 비료의 13%를 생산한다. 그런데 지난 4월 러시아 비료 수출이 40% 감소하면서 비료 가격이 오른 것이다. 비료 가격이 오르자 식량 생산 가격, 가축용 사료 생산 비용이 함께 오르고 있다. 그 여파로 각종 육류와 유제품 등의 가격이 오르는 건 물론이고 미국에서 생리대 품귀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생리대에 들어가는 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료의 가격이 높아지면서 면 생산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언론들은 이런 문제의 원인이 ‘전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확히는 전쟁이 아니라 대러 제재 때문이다. 러시아를 제재하지 않으면 석유, 식량, 비료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해 굴복시키려 대러 제재를 했겠지만, 실제 대러 제재는 미국과 서방의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다.

▲분유가 품절되어 텅 빈 미국 상점 매대 ⓒ위키피디아

 4) 물건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하다

현재 돈이 늘어나는 것보다 물건이 부족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돈이 많이 풀린 문제는 돈을 회수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핵심은 미국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돈만 줄인다고 물가 인상 사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경제전문가 애덤 헤일 샤피로는 6월 21일 공개한 발표문에서 현재 물건 가격이 상승한 원인 중에 돈이 늘어난 것이 30%, 물건이 줄어든 것이 50% 정도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자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물건 가격이 오르는 걸 다 막을 수가 없고 물건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셈이다.

물건 부족 현상은 미국이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도와줘야만 한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협조해 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러시아의 경우 도움을 받고자 하면 먼저 미국이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 26일 이탈리아 총리와의 통화에서 “제재를 해제하면 비료 수출 등 식량 위기 극복에 이바지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과 서방 입장에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대러 제재를 해제하긴 어렵다. 사실상 패배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고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5월 23일 세계경제포럼에서 “극복할 수 없는 격변과 긴장을 촉발하지 않으려면 협상을 두 달 안에 시작”해야 하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미 보여준 영웅적 행동을 지혜와 결합하길 바란다”라고 우크라이나에 결단을 촉구했다. 미국과 서방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 현실주의적인 주장이 대두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길 기도한다”라며 전쟁 종식을 촉구했다. 교황은 5월 19일 예수회 간행물 라치빌타카톨리카 편집자들에게 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어떤 국가 원수로부터 ‘나토가 전쟁이 일어나도록 러시아의 문 앞에서 짖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5월 3일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델라세라와의 인터뷰에서도 “러시아 문 앞에서 나토가 짖는 게 어쩌면 푸틴의 나쁜 행동과 분쟁을 촉발했을 수 있다”라고 나토 책임론을 언급한 바 있다. 교황이 나토 책임론을 거론한 것은 전쟁 종식을 위해 나토가 양보해야 함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빨리 끝내자는 주장을 내리눌렀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1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러 제재가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나는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최고사령관으로서 결정한 것”이라고 대꾸했다. 미국은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은 6월에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강경 태도를 고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모든 동맹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라며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영토를 완전히 되찾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런 바람을 갖는 것과 별개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상대로 이기겠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바이든 대통령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진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택했다. 

미국에서 대중 관세를 낮추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은 중국 봉쇄를 더욱 강화하려 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켰다. IPEF는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려는 기구다. 이는 관세를 좀 높이거나 낮추면서 갈등을 빚다가 균형을 맞춰가자는 정도가 아니라, 중국을 완전히 봉쇄하고 적대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마치 사생결단을 내자는 듯이 적대적인 태도를 강경하게 보인다. 미국이 이런 노선을 유지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받아 경제위기를 해결할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5) 미국의 물건 부족 해결 대책

그러면 미국은 물건 부족 사태를 대체 어떻게 해결하려는 걸까? 미국은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을 다시 불러들여 미국 내에 공장을 짓는 걸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게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에서는 효율이 중요하다. 더 싸게 물건을 생산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한다. 미국 기업이 인건비가 싼 중국을 떠나 인건비가 비싼 미국으로 공장을 옮긴다는 건 자본주의를 역행하는 것이다.

테슬라를 보자. 2021년 4월 19일 상하이 자동차 전시장에서 한 중국인이 테슬라 자동차 위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테슬라 차량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항의였다. 테슬라는 자동차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그런데 이런 테슬라의 입장이 순식간에 180도 달라졌다. 중국 공산당 정법위원회가 4월 20일 인터넷에 “중국인의 돈을 벌면서 중국인의 목숨을 저버린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라고 테슬라를 비판하자 테슬라는 한밤중에 즉시 공개 사과 성명을 내며 저자세를 보였다.

테슬라 최고경영자이자 안하무인의 기행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는 2021년 3월 중국 언론 CC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미래는 위대할 것”이라고 치켜세우거나 2021년 7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에 “중국이 이룬 경제적 번영은 정말 놀랍다”라고 칭찬하며 중국에 머리를 숙이기도 한다.

테슬라가 중국에 이렇게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중국 시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021년 테슬라의 세계 판매량은 94만 대인데 이중 중국에서 생산한 게 48만 대이며 이 중 32만 대를 중국에서 판매했다. 중국은 테슬라 자동차의 절반을 생산하는 생산지이자 3분의 1을 판매하는 중요 시장이다.

테슬라는 자동차를 중국에서 만들고 중국에 팔아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멀쩡한 중국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 비싼 인건비를 주고 생산하는 건 비효율의 극치다. 공장을 미국에 옮겼다가 미·중 갈등에 휩싸여 중국 시장을 잃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그러니 머스크가 머리 숙여 가며 중국에 잘 보이려 하는 것이다.

테슬라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은 단지 인건비가 저렴한 세계의 공장일뿐만 아니라 물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중국이 단지 인구가 많아서 싼 물건만 많이 사는 게 아니다. 좋은 물건, 비싼 사치품 소비도 많다. 크레디트 스위스가 2019년에 발간한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 소득자 가운데 중국인이 1억 명으로, 미국인 9,900만 명보다 더 많다.

이러니 미국 기업이 중국과 담을 쌓을 수가 없다. 중국 시장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남으란 것인가. 이들이 중국에서 철수해 미국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2021년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금액은 2020년보다 32%나 늘어난 407조 원 규모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가 2021년 중국에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 300여 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년보다 투자를 늘렸다고 대답한 기업이 60%에 이르렀다. 중국에 있는 미국 제조업체 중 72%가 향후 3년간 생산시설을 중국 밖으로 옮길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중국이 0(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도시를 봉쇄하며 기업 활동이 마비되는 일이 반복되는 와중에 나온 반응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언론은 중국의 방역 정책으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고 금방이라도 중국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나토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과 동행한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은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라며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다”라고 발언했다. 중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3일 KBS 일요진단 인터뷰에서 “유럽의 한 국가 인구가 (중국의 일개 도시 인구보다 작은) 500만∼700만 명인데 어떻게 중국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느냐. 중국 시장을 버리고 유럽으로 간다는 건 현명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은 미국 기업을 본토로 불러들이려 하지만 현실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국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돈을 빼앗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방한 때 삼성 평택공장을 찾아 삼성전자가 미국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틀 후 바이든 대통령은 현대자동차에서도 2025년까지 1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이 삼성과 현대의 투자를 받아낸 것은 제2의 플라자합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1985년 미국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과 독일을 만나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의 값어치를 대폭 상승시키는 합의를 맺었다. 이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는 1985년 1달러당 235엔에서 1년 뒤 1달러당 120엔으로 가치가 올랐다. 

일본이 1,000엔짜리 물건을 미국에 수출한다고 가정해보자. 1985년엔 약 4달러였는데 1986년엔 8달러로 가격이 확 뛰게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일본과 독일은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미국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일본은 플라자합의로 인해 이후 30년이나 경제 불황에 빠졌다.

플라자합의는 한마디로 미국이 일본과 독일의 돈을 강탈해간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아낸 것도 본질에서 플라자합의와 다를 게 없다. 미국은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재산을 약탈한 것이다.

사실 미국이 잡고 싶은 건 중국이다. 1985년 독일과 일본의 GDP를 합치면 미국 GDP의 67% 수준이었는데 2020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0% 수준이다. 플라자합의 당시 독일+일본 급의 경제규모를 가진 중국을 강탈하면 미국은 경제에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미·중 경제전쟁이 본격화되기 전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위안화 가치를 인상하라고 중국을 압박했다. 플라자합의와 같은 걸 중국에 요구한 것이다. 일본과 독일은 미국에 저항하지 못하고 플라자합의에 서명했지만, 중국은 맞서 싸웠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약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보단 체급이 낮지만 쥐어짤 수 있는 만만한 곳부터 건드리고 있다. 그게 바로 한국,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다.

과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지으면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중국에서 만들면 상품 가격이 싸지는데 미국에서 만들면 상품 가격이 더 비싸진다. 미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만들어주니 고맙다며 비싸더라도 사주길 기대하는 것 말고는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과연 통할까?

똑같은 물건이면 싼 게 팔리게 되어 있다. 당연한 이치고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 러시아 원유를 봐도 그렇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원유를 제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일이 있다.

지금 인도는 러시아 석유를 어마어마하게 사들이고 있다. 인도는 2021년 한 해 동안 러시아산 원유를 1,600만 배럴 수입했다. 그런데 인도가 올해 5월 한 달 동안 산 러시아 원유가 2,400만 배럴이 넘는다. 러시아산 원유가 국제유가 시세보다 20~30% 싸기 때문에 많이 살수록 이익이다.

그러면 인도는 이 많은 석유를 다 자기들이 소비할까? 그렇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 6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산 정제유의 유럽 수출은 지난 분기 대비 33%, 미국 수출은 43% 증가했다. 이 석유는 다름 아닌 러시아산 석유로 추정된다. 핀란드의 정책연구소 에너지와청정공기연구소는 6월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인도에서 정제된 러시아산 석유제품이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세계에 수출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6월 26일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를 위안화로 거래하거나 이리저리 옮겨 싣는 방법으로 원산지를 감춰 사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기들이 제재를 해놓고 뒤로는 인도를 거쳐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인다. 미국과 유럽이 이럴 수밖에 없는 건 이렇게라도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지 않으면 기름값이 더욱 많이 폭등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은 괜히 중간 유통과정을 거쳐야 하는 바람에 더 싸게 살 수 있는 걸 비싸게 사는 꼴을 겪고 있다. 이런 바보짓이 또 있을까.

이 사례는 자본은 결국 이윤을 따라 흐르게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정치·군사적으로는 러시아와 싸우고 있지만, 이윤이 되니 결국엔 러시아산 석유를 산다. 

이게 현실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앞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공장을 지어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그 제품은 중국에서 만든 똑같은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다. 과연 이 제품이 팔리겠는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이익을 낼 수 없다. 앞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손해를 보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미국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미정상회담을 본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팔고 있다. 외국인들이 6월 한 달 동안 팔아치운 주식 규모가 3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주가도 5월 20일 6만 8,000원에서 7월 5일 현재 5만 7,200원으로 하락했다. 

관련 뉴스 댓글에는 “바이든이 평택공장 방문한 날, 외국인은 내다 팔고 개미는 반대 매매 당하고 기관이 간신히 받아줬지. 반도체, 전기자동차를 미국에 거저 퍼주고 쿼드, 사드 미국의 방향대로만 하니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는구나”, “바이든이 다 퍼가는데 뭔 환율이 진정되나?”, “‘삥’만 뜯긴 회담”, “이건 외교가 아니고 미국놈에게 쪽쪽 빨린 거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이 사실을 알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국가 정책 때문에 억지로 손해 보는 결정을 내린 상황이다. 여기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어쩔 수 없다며 고분고분 자신들이 피해를 다 감당하려고 할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투자하는 대신 윤석열 정부로부터 모종의 특혜를 받기로 했을 수 있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법인세를 25%에서 22%로 3%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총 1조 9,000억 원의 감세 혜택을 받는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식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피해를 메워 주려 할 것이다. 

정부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들이붓는 돈은 또 어디서 나겠는가. 윤석열 정부는 전기세와 가스비를 인상하려 하는데, 이런 식으로 마련될 것이다. 결국 미국은 한국 국민이 피땀으로 번 돈을 뽑아가는 셈이다.

이게 다 미국이 자기 경제위기를 넘겨보려는 수작이다. 그런데 미국의 이런 행동은 미국의 물가 상승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고 제재하는 이상 물건이 부족한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물가 인상에 따르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도 없다. 이게 현 상황이 정말 심각한 이유이다. 

미국과 서방이 북·중·러 반제세력과 적대하는 새로운 냉전으로 가려고 하는 이상 미국과 서방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살길은 공존, 공리, 공영 외에 없지만, 제국주의 속성상 이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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