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누리호와 한러 기술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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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누리호와 한러 기술협력
  • 이인선 자주시보 객원기자
  • 승인 2022.07.0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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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가 지난 6월 21일 지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일각에서는 누리호 발사 성공을 한러 기술협력의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중앙일보도 22일 ‘韓우주로켓 아이러니…정작 도움준 건 美 아닌 러시아였다’라며 러시아가 한국에 어떠한 도움을 줬는지 다루기도 했다.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이 수교한 이후 우주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와 수교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협력을 해왔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이번 글에서는 누리호 발사 성공을 축하하며 한국과 러시아가 우주기술 등 각종 기술 분야에서 어떠한 협력을 이어왔는지 이야기한다.

▲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9월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고 모스크바 흐루니체프 우주과학센터를 방문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9월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고 모스크바 흐루니체프 우주과학센터를 방문했다.

우주기술 협력을 러시아에 요청하다

한국이 우주를 목표로 발사체를 개발하기 시작한 건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발족 이후부터다.

그러나 1993년 발사된 첫 우주발사체인 KSR-1(Korean Sounding Rocket-1)은 관측용 장비를 탑재하고 최고 고도 39km와 190초간 77km 주행만 했을 뿐 우주로 올라가진 못했다. 1997년 발사된 KSR-2도 151km 고도까지 올라가 우주 X선을 관측한 것에 그쳤다.

두 우주발사체가 일회적인 관측 장비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체연료를 쓴 것과 연관이 있다. 당시 고체연료 발사체는 사거리를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 때문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만한 우주발사체로 발전할 수 없었다.

항우연은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 협력을 추진했지만 기술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기본이었고 주더라도 고액의 비용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미국은 1987년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를 창설한 이래 미사일 완성품은 물론 관련 기술과 부품의 국가 간 거래를 막아왔다. 이에 항우연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러시아와 우주기술 협력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1990년부터 러시아 중앙항공엔진연구소와 인력 교류 등 10여 분야의 협약서 체결과 협력 활동이 있었고, 1994년 6월에는 러시아 중앙항공엔진연구소, 항우연, 한국기업체가 공동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러 항공우주센터를 설립하여 2006년까지 운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한국은 2002년 액체연료 우주발사체 KSR-3을 개발하고 발사에 성공했다. 해당 발사체는 추력 13t의 가압식 액체엔진을 달고 고도 43km, 거리 80km를 비행했다.

조광래 항우연 전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액체로켓 엔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러시아 켈디시연구소를 찾아 액체로켓 설계 기술을 자문받고, 또 완성한 13t 엔진을 러시아 니히마시연구소까지 가지고 가서 연소실험도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2004년 9월 21일 모스크바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 간의 외기권의 탐색 및 평화적 목적의 이용 분야에서의 협력에 관한 협정’(이른바 우주기술협력협정, 2006년 9월 발효)을 맺었다.

 

해당 협정을 통해 협력하기로 한 형태는 다음과 같다.

가. 과학·산업 및 실험 역량을 이용하는 공동프로젝트의 기획 및 수행

나. 우주과학 기술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정보, 실험 결과, 연구개발 결과 및 소재·장비의 상호 제공

다.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및 이에 상응하는 지상기반수단을 위한 다양한 부품의 개발, 생산 및 공급

라. 원격측정 정보의 수집·교환을 포함하는 우주선의 발사·통제를 위한 지상기반시설 및 시스템의 이용

마. 인적교육·훈련 프로그램의 구성과 과학자, 기술자와 그 밖의 전문가 교류

바. 심포지움, 회의 및 학술대회의 개최

사. 전시회, 박람회 및 그 밖의 유사한 행사 참여

아. 우주 장비, 서비스 국제시장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참여 및 공동활동의 개발

자. 기술원조 및 지원의 제공

차. 우주 기술의 실제적 이용 및 우주기반시설의 개발과 관련한 국내 및 국제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에의 접근의 상호 촉진

본 계약 체결 후, 국내에서 18,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2명의 우주인(이소연, 고산)이 2007년 3월 러시아에서 우주인훈련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 훈련을 통해 국제우주정거장 이론 및 실습 교육, 소유즈 우주선 이론 및 시뮬레이터 교육, 생존훈련, 체력훈련, 무중력 적응훈련, 의학 점검 등 다양한 훈련 기술을 습득했다.

이와 동시에 2006년 1월부터 진행되었던 우주인 실험 공모를 통해 앞서 선발된 우주인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수행할 무중력환경에서의 실험들에 대한 최종 선정이 이루어졌고, 2007년부터 최종 선정된 실험들의 인증모델(QM : Qualification Model) 및 비행모델(FM : Flight Model) 개발이 러시아 전문가들과의 협력으로 시작됐다.

한국 최초 우주인의 우주 비행은 2008년 4월 8일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으로 향하면서 시작되어 9박 10일간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 끝에 무사히 귀환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를 통해 한국은 10여 가지의 무중력상태에서의 과학 및 교육 실험 결과를 확보했다.

한편, 항우연은 러시아 흐루니체프 우주과학센터와 한국형 우주발사시스템 개발에 관한 계약을 2004년 10월 체결해 우주발사체 개발 협력을 진행했다. 이에 더해 전략적으로 민감한 특정 품목에 대한 통제 및 관리를 규정하는 우주기술보호협정이 2006년 10월 한러 양국 정부 간에 체결되면서 본격적으로 전략물자에 속하는 장비, 부품 등과 관련된 협력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것이 나로호(KSLV-1)다. 당시 계획에 따르면 발사체의 전체적인 시스템 설계는 한러 기술진이 공동으로 설계하여 작업하고, 1단 하부시스템의 설계, 제작, 시험은 러시아에서 담당해 한국 기술진은 여기에 참관, 참여하는 형식으로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2단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기술지원 및 설계검토를 받아 한국에서 설계 및 제작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러시아는 우주기술보호협정을 토대로 1단 엔진인 RD-191 엔진 설계도와 실물을 한국에 주고 한국이 엔진까지 국산화해 나로호를 10회 이상 발사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가 ICBM 기술이전이라며 제동을 걸어 계약은 중도에 취소됐고 결국 나로호 사업은 조기에 종료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가 한국에 1단 엔진 완제품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조광래 전 원장은 2021년 10월 2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8월에 가장 먼저 러시아에서 (RD-191 엔진이 달린) 1단 지상검증용 발사체를 들여왔다”라며 “3차 발사까지 끝나고 대전으로 가져와서 분해해 보니 첨단 다단연소사이클의 앙가라 엔진이 완벽한 모습으로 달려있었다”라고 밝혔다.

조광래 전 원장은 나로호가 없었다면 누리호를 개발하지 못했다며 “러시아 앙가라 로켓은 추력 210t의 최신형 다단연소사이클엔진으로, 미국도 최근 수입하려고 했던 강력하고도 첨단의 엔진이다. 누리호 75t 엔진 개발에 이 앙가라 로켓이 큰 도움이 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누리호 75t 엔진은 연소시험 때 봤겠지만, 터보펌프에서 불완전 연소한 시커먼 배기가스가 나온다. 다단연소사이클은 이걸 엔진 내부에서 다시 한번 태워주는 방식이다. 엔진 효율이 높고 힘도 훨씬 뛰어나다. 이제 곧 시작해야 하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도 다단연소사이클엔진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2021년 열린 제19차 한러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회 회의
▲ 2021년 열린 제19차 한러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회 회의

넓어지는 한러 기술협력

한러혁신센터와 각종 언론은 한러 기술협력의 첫 사례로 냉장고 소형화를 꼽는다.

1990년대 한국은 러시아에 경제차관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군수 장비를 도입했다. 그렇게 한국군은 들여온 러시아제 탱크를 조종해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제 탱크를 조종하던 병사들은 덥고 답답해야 할 내부가 에어컨을 튼 듯 쾌적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 탱크에 전기로 냉각 효과가 발생하는 열전소재를 활용한 러시아의 무소음 냉각기술이 적용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냉장고 뒷부분에 있는 압축기는 큰 부피 때문에 냉장고 소형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러시아 탱크 냉방에 사용되던 ‘열전소재’를 찾아내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또한 정수기에서 찬물과 뜨거운 물을 만드는 곳에 이 소재가 쓰이기도 했다.

또 다른 예는 김서림 방지와 관련된 협력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석근 박사팀은 러시아가 위성 기술에 사용하던 이온 주사 기술을 들여와 민수용으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이온을 물질의 표면에 쏘아 물질의 표면 성질을 바꾸는 기술로 우주공간에서 위성의 위치 제어용 단열 도료에 사용됐다.

LG는 이 기술을 이용해 시간이 지나도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고, 에어컨 개발에 착수했다. 김이 서리지 않는 스키용 고글도 이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 통화 잡음을 획기적으로 낮춘 휴대전화를 선보였는데, 이때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통신장비와 레이더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제거하는 기술을 활용했다.

한러 양국은 국방기술 분야에서도 협력을 진행하기 위해 2005년 ‘대한민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 간의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사업의 상호 협력에 관한 협정’을, 2021년 ‘대한민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 간의 국방협력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앞서 한국 국방과학연구소(ADD)가 2001년 러시아 방공미사일 시스템 제조사이자 연구기관인 ‘알마즈-안테이’와 중거리 대공 방어체제 개발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지만 정부 간 협정으로 국방기술협력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 지대공 요격 미사일 S-300 기술을 기반으로 트럭에 적재하는 소형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고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KM-SAM, 철매2)’도 러시아 S-400 미사일 9M96E를 토대로 개발됐다.

이후 2021년 체결한 국방협력협정은 1996년 체결된 군사협력양해각서를 발전시킨 협정이다. 군 교육 교류, 해양 수색 및 구조활동, 군함·군용기 상호 방문, 문화·체육 행사 교류, 긴급 의료 무상 지원 등 양국 간 국방협력의 일반원칙을 규정하는 포괄적 성격의 협정이다. 한국 국방부는 “협정 체결로 한러 간 국방교류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한러 양국은 연구도 공동으로 진행하며 기술협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5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제13차 한러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열어 양국 간 기초과학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정책·연구 기관 간 공동 연구를 다양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인공지능(AI)과 해상 및 공중 무인이동체, 암 치료용 면역세포치료제, 양자정보 기술에서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또 물리 분야 공동 연구와 인력 양성에 함께 나서고 차세대 우주망원경을 개발하며 북극의 환경 변화를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양국을 대표하는 국가 연구기구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사이의 협력도 강화키로 했다.

삼성전자 AI 센터는 2019년 러시아 스콜코보 과학기술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말하는 얼굴 동영상’ 변환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은 기존의 AI 영상합성 기술인 딥페이크와 달리 별도의 3차원 모형화 과정이 필요 없어 화상통화나 온라인 게임, 영상물 제작 등에서 폭넓게 이용될 전망이다.

현대모비스와 러시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얀덱스는 자율주행 택시의 주행 테스트를 완료해 2019년부터 시범 운영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미국에서도 시험 운행하고 있다. KT도 올해 1월 18일 얀덱스와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분야 사업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갈무리

한러 기술협력은 30여 년 동안 이뤄지면서 많은 성과를 낳고 지평을 넓히고 있지만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과 윤석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전망이 밝지 않다.

러시아 로켓을 이용해 올해 중 우주에 오를 예정인 차세대중형위성 2호와 아리랑 6호 등 국내 위성 발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항우연이 개발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6호는 올해 하반기 러시아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앙가라 로켓으로 발사될 예정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항우연이 국내 첫 양산형 위성으로 개발한 차세대중형위성 2호 역시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스 로켓을 타고 올 하반기 발사가 예정돼 있다.

또한 한러혁신센터 관계자는 6월 13일 러시아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보다 기술 이전료가 저렴해 국내 중소기업들의 호응도 크다면서 “우리나라가 러시아 금융 제재에 동참하면서 내년부터 기술협력사업 자체가 성사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올해 추진하는 사업 대부분은 지난해 이미 확정해 준비했던 것으로 차질이 없지만 당장 내년부터 기술 교류 등이 원활하게 이뤄질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재가 더 확대되면 러시아 현지에서 진행해왔던 각종 포럼이나 협의회 등 교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정책’을 기조로 러시아와 다각적 협력을 추진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외교 중심에 두면서 러시아와 각종 교류가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러관계가 당분간 부침을 겪겠지만 양국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어떠한 협력을 이어 나갈지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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