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러시아가 추진하는 ‘다극적 성장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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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러시아가 추진하는 ‘다극적 성장 모델’
  • 이인선 자주시보 객원기자
  • 승인 2022.06.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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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특별 군사작전을 진행한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는 크게 흔들리지 않은 채 회복하고 있고 오히려 서방에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는 6월 15~18일 제25회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을 개최해 90개 넘는 국가의 정·재계 인사들과 세계 경제가 직면한 현안 및 해결책을 논의했다.

올해 포럼은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기회’라는 주제로 ▲러시아 경제 성장의 새로운 가능성 ▲브릭스(BRICS) 5개국과 무역 개선 ▲러시아 금융 제재의 미래 ▲국제 협력의 새로운 형태 ▲가짜뉴스 등 분과 회의로 구성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연설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 세계질서의 종식을 선언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의 규칙은 “강하고 주권적인 국가, 즉 누군가가 이미 설정한 궤적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 국가에 의해 설정될 것”이라며 ‘다극적 성장 모델’을 강조했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 경제 상황을 살펴보며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한 말을 중심으로 러시아가 말하는 ‘다극적 성장 모델’과 전망을 이야기한다.

 

회복 수준을 넘어선 러시아 경제

러시아는 서방의 대러 제재 공세에도 쓰러지지 않고 자력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며 단단해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오선근 재러한국경제인협회 사무국장이 “현재 모스크바는 전쟁 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전쟁 전과 같은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라고 전했다고 6월 13일 보도했다. 

오선근 사무국장은 “해외여행을 못 가는 불편함 정도만 있을 뿐, 아직까지 수입품 재고가 있는지 품귀나 사재기 현상은 없다”라며 “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생필품의 경우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고 있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의 옛 맥도날드 매장에 새로이 개장한 패스트푸드점 '브쿠스노 이 토치카'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전쟁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패스트푸드점이다.

지난 3월 8일 러시아에서 철수를 발표한 뒤 폐쇄됐던 맥도날드 매장들이 현지 브랜드인 ‘브쿠스노 이 토치카(두말할 필요 없이 맛있다, Вкусно - и точка)'로 이름을 바꿔 달고 6월 12일 재개장했다. 재개장 직후부터 매장에 긴 줄이 늘어서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오선근 사무국장은 또한 “KFC와 버거킹도 그대로 운영 중이고 전쟁 이후 일상에서 달라진 건 스타벅스가 사라졌다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의 개인이나 기관이 프랜차이즈 계약을 통해 매장 소유권을 가진 경우가 많고 특별 군사작전 이전부터 계속된 서방의 경제제재로 매장 운영에 필요한 식자재 등 대부분 품목을 현지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금융 시장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6월 10일 기준금리를 연 11%에서 9.5%로 1.5%포인트 인하했다. 5월 26일 3%P 낮춘 뒤 2주 만에 추가 인하한 것이다. 이로써 러시아의 기준금리는 특별 군사작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달러당 140루블까지 떨어졌던 루블화 가치도 6월 13일 기준 달러당 56루블이 되면서 특별 군사작전 직전 수준까지 되돌아왔다.

루블화 가치가 안정을 찾은 배경에는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에너지’가 있다. 서방의 대러 제재에 맞서 에너지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기로 한 데 이어 치솟는 유가에 러시아가 엄청난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가 6월 1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특별 군사작전 이후 100일(2월 24일~6월 3일)간 러시아는 원유와 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수출로 930억 유로(약 125조 원)를 벌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로 하루 평균 9억 3,000만 유로(약 1조 2,500억 원)를 벌었다.

국제금융협회(IIF) 역시 에너지 수출 호조로 올해 러시아의 무역 흑자(2,500억 달러·약 321조 원)가 지난해(1,200억 달러)의 배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에이머스 호크스타인 미국 국무부 에너지안보특사는 6월 9일 열린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원유와 가스 판매를 통해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부인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 보고서에 나온 특별 군사작전 중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국 순위
▲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 보고서에 나온 특별 군사작전 중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국 순위

특히 서방의 대러 제재로 러시아산 에너지 가격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보다 싸지자 중국, 인도, 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 미국마저 이를 사들이고 있다.

미국은 개전 초 러시아산 화석 연료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인도 등에서 정유 처리를 거친 물량이 이른바 ‘원산지 세탁’의 효과를 누리며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6월 9일 기업인들과 만나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수년간 스스로 끊지 못할 것”이라며 “그때에는(서방이 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내다봤다.

 

다극적 성장 모델을 통해 국제질서의 변화로 나아갈 것

푸틴 대통령은 지난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다극적 성장 모델’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존 국제질서에서 ‘다극적 성장 모델’로의 전환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 탄생은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과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서방 국가들이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 동조하고 있다며 이들이 지난 수십 년 사이 세계에서 새로운 힘의 중심이 출현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규칙은 강하고 주권적인 국가가 설정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강력한 주권 국가로 새로운 세기에 진입하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주의 정책을 강력히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냉전에서 승리했을 때, 미국은 지구상에서 자신을 신의 대리인으로 선언했다. (이들은) 책임은 없고 이익만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이익을 신성시했고, 이제 일방통행으로 세상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라며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처럼 대우하는 일극주의 정책 때문에 스스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들은 망상 속에서 과거를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겼고 나머지는 모두 식민지, 뒷마당이며 그곳 사람들은 2등 시민이라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유럽연합(EU)을 향해서 “주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엘리트들이 남의 의견에 놀아나며 유럽과 유럽 기업의 진정한 이익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식량 가격 상승의 책임이 미 행정부와 유럽 관료주의에 있고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미친 짓’이자 ‘무모한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서방 국가들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러시아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경제는 점차 정상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른바 ‘푸틴 인플레이션’이란 말을 서방에서 만들어왔다”라면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에서 진행 중인 러시아의 ‘특별 군사작전’은 (인플레이션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의 배후 원인은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들에 있다”라며 “최근 2년 동안 미국의 통화량은 38%, 유럽연합(EU)의 통화량은 20% 늘었다. 서방은 진공청소기처럼 가난한 나라들의 상품들을 빨아들였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과 관련해서도 “러시아는 곡물 수출을 저지하지 않고 있다”라며 곡물 수출을 못 하는 원인은 우크라이나 측이 제공했고 우크라이나가 주요 항구에 스스로 설치한 기뢰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질서 내에서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 ‘개방성’과 ‘책임 있고 균형 잡힌 거시 경제 정책’을 갖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진정한 주권 국가는 항상 동등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국제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대로 약하고 의존적인 국가들은 적을 찾느라 바쁘고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 같은 외국 혐오증을 심거나 독창성과 자주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대군주를 따른다”라며 ‘다극적 성장 모델’의 주체는 주권 국가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러시아와 함께하고자 하는 나라들과 경제 협력을 구축하고 “평등과 존중의 원칙에 따라 과학, 기술, 문화, 인도주의, 스포츠 협력을 구축해나갈 것”이라며 모든 분야에서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책임 있고 균형 잡힌 거시 경제 정책’ 덕분에 전례 없는 제재 압력에서도 견딜 수 있었다며 “러시아는 인플레이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재정 불균형을 초래한 서방처럼 슬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그 자리에 있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이 찬동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다극적 성장 모델’에 대해 “단일 공동체에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라며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경제적으로 강력한 유라시아를 건설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개발과 국제적으로 포용력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시시 대통령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위기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공동행동과 각국의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라며 포럼에 참가한 이들에게 이집트 경제에 대한 투자를 비롯해 앞으로 열릴 엄청난 기회를 이용하라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은 진정한 다자주의를 통해 각국의 현실에 따라 발전 경로를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함께 개발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심화하고 인류 공동의 운명을 가진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시진핑 주석은 6월 15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로 이를 논의한 바 있다.

이날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은 양국 관계에 대해 “중국은 러시아와의 실무 협력이 안정되고 계속되기를 희망한다”라며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주권, 안전 등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계속 지지하고, 양국의 전략적 협력을 밀접하게 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고 세계 다극화를 추진해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질서를 세우기 위해 건설적인 노력을 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해, 미국의 일극체제에 맞서 현 국제질서의 변화를 중국과 함께 추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과 현 정세를 토대로 볼 때 푸틴 대통령의 말처럼 새로운 국제질서가 세워지고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 유라시아경제위원회(EEC), 브릭스(BRICS), 가스수출국포럼(GECF), 중앙아프리카경제공동체(ECCAS) 등을 통해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며 ‘다극적 성장 모델’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를 비롯해 주권 국가들이 변화시킨 국제질서가 어떠한 모습일지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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